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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의 마음(1/5)'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04 조회수1,046 추천수6 반대(0) 신고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1요한 4,11-18                마르 6,45-52

      2005. 1. 5. 홍제4동

주제 : 사람의 마음

찬미 예수님!!

많이 춥습니다.  이렇게 추운 것이 겨울이겠지요?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고는 합니다만, 삶의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추위는 없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며칠 전 한밤중에 서울시내 지하철이 다니는 지하 도로를 걷다가 이리저리 싸매고 잠을 청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옆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경제 상황이 달라진다고 저 사람들이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요? - 아마 힘들걸요.  자기 노력으로 살기를 포기했을 사람이니 저러고 있을 것이고 그 사람이 바뀌는 것은 기적에 가까울 걸요’하는 소리로 이야기를 맺었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사람이 현실을 변화시키려면 생각이 먼저 앞서야 할 것입니다.  그 생각이라는 것에는 올바른 판단과 행동할 수 있는 다짐도 들어있는 말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 들었던 5천명을 먹게 하신 기적의 후속편입니다.  같은 말씀을 공현대축일 후 주간을 지내는 우리가 받아들일 내용으로는 ‘사람의 자세’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5천명을 먹게 하신 기적을 베풀었을 때에 제자들이 참여한 구체적인 행동은 없었습니다.  단순한 심부름은 했겠지요.  그랬기에 그 사건이 일어난 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서 ‘유령’이라고 괴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마구간 탄생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가 오면서 ‘가현설’이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그 신학이론의 내용은 ‘예수님 탄생은 허구였고, 가짜였으며, 제자들이 만들어낸 설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신학이론에 귀가 솔깃하든지 따라가든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없습니다.  2005년을 지내는 우리 신앙인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은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을 이름으로만 받아들였지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데에는 한참 주판알을 튕겨보는 현상입니다.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는가... 말아야 하나... 어디 가서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복채는 얼마나 줘야 할까?  성당에 와서 기도해도 하느님은 내게 아무런 응답도 해주지 않으시고....’  이런 사람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유령’소리쳤던 것과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는 사도요한의 말을 수차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올바르게 바뀌지 않은 탓일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삶을 자신 있게 드러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그 결과를 달리 만들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이 우리 삶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할 일입니다.  우리도 훗날 언젠가는 후회하겠지만, 그보다 앞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갖는 마음자세를 보시고 더 먼저 실망하실 일일 것입니다.  올바른 자세를 다짐하는 이른 아침이 되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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