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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풍에 돛 단듯이...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05 조회수1,025 추천수4 반대(0) 신고
주님 공현 후 수요일(1/5)





    독서 : 요한 1서 4,11-18 복음 : 마르 6,45-52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후,] 일어난 기적이다.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셨다는 이 신비한 기적도 못믿기지만 이야기 말미에 이상한 글귀는 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마음이 무디어서 군중에게 빵을 먹이신 기적도 아직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그러니까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셨다는 이야기에 우리도 당황하고 의심을 품는다면 우리 역시 빵의 기적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 마음도 무디다는 말이 된다.
    뭔가 두 기적을 연결하는 단서같은데 꼭 콜롬보 형사가 있어야 풀릴 것 같다. . . . 어제 빵의 기적의 핵심은 무엇보다 예수님이 '참된 목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이 기적도 그분의 정체성을 밝혀주는 또 하나의 기적이라는 것이다. 어제 빵의 기적을 보여주신 대상은 오천명이 넘는 군중이었는데 오늘 물위를 걷는 기적을 보여주는 대상은 제자들에만 국한된다. 즉 제자들에게만 하는 좀 더 심도있는 특수교육인 것이다.
    '물위를 밟으시는 분’은 말할 것도 없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욥9,8;시편18,15-17;하바3,8-15) 이 대목에서 또 하나의 의문점이 드는 표현! 역풍에 시달리는 제자들을 도와주시려하셨으면 곧바로 그들에게 와야지, 왜 "그들 곁을 지나쳐 가시려고" 하였을까? "새벽 네 시쯤"이라 캄캄해서 주님이 못보고 실수했다는 이야긴가? 복음사가가 '지나쳐 가시는’이란 표현을 쓴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다. 즉,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간청하는 모세와 엘리야에게 그분이 나타나셨을 때 (출애 33,21-23; 1열왕 19,11-12) 주님이 취하신 행동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없다. 다만 '지나쳐 가시는' 그분의 영광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제자들에게 "나다!" 하고 당신을 밝히시는 것도 모세에게 하느님 자신을 처음 알려주실 때 쓰던 똑같은 표현으로써, 성서에서 하느님이 자신을 계시하실 때만 쓰는 전형적인 문구이다. 자, 그러니 이 기적은 예수, 그분이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심을 핵심제자들에게만은 좀 더 명확하게 가르치려는 특수교육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분이 계시지 않은 동안, 배가 역풍(맞바람)에 꼼짝 못하고 있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풍랑에 배가 가라앉을 뻔했다는 다른 기적이야기와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그 때는 그분이 배에 계셨어도 그분의 능력을 믿지 못한 제자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고, 이제는 그분이 배에 안 계신 상황이다. 배는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에 그분이 계시지 않을 때는 일보도 전진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아무리 노를 죽어라 저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 교회가 어디 있으랴? 있다. 아니 많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탄 배가 교회라면, 한명이 타도 두명이 타도, 가정도, 구역의 모임도, 신자들이 있는 곳이면 모두 교회가 된다.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초대 교회 때는 이렇게 광범위하게 썼다.) 그렇다면 그 교회들이 '항상’주님을 모시고 살고 있을까? 우리 마음 한편에 밀어놓다 못해, 잠시 주님께 외출증을 끊어준 경우는 얼마나 자주일까? 우리 가정이, 구역모임이, 공동체가 항상 주님을 모신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는가? 나의 뜻, 나의 단체의 이익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님을 외박시키고 있는 경우는 혹시 없는가? 주님은 하늘의 거처에나 계셔야 한다며 장기 휴가를 보내 놓고 있는 경우는 아닌가? 갑자기 신앙 생활이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의 나의 모습이나 쌈박질하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자주 자주, 오랜 기간 떨어져 있다보면, 주님이 기다리다 못해 찾아오셔도, 반갑기는 커녕 유령으로 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비명을 질렀다." 그분이 나의 중심에, 우리 가정과 공동체의 중심에 항상 자리잡고 계실 때, 역풍은 끝나고 순풍에 돛단 듯이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게 됨을 잊어선 안된다는 말씀이다.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
                (ps. 2002년에 올렸던 글을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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