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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33)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분에게 그렇게 말하지마.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05 조회수922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5년1월5일 주님 공현후 수요일ㅡ요한 1서4,11-18;마르코6,45-52ㅡ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분에게 그렇게 말하지마.

                                                                이순의

 

 

지난 년말에 뜻하지 않은 공연티켓 두 장을 선물로 받았다. 짝궁이 집에 있었으므로 흔쾌히 받았다. 집에만 오면 등짝을 구들에 붙이고 두문불출하는 짝궁을 일으켜 세우는데는 엄청난 나의 노고를 동원해야만 했다. 장돌뱅이 근성이 집에만 오면 두더지 근성으로 탈바꿈을 해버린다. 그래도 따라 나서기는 나섰다.

 

뮤지컬"마리아 마리아"였다.

친분이 두터운 교우에게서 받은 선물이었으므로 성모마리아 쪽을 연상하며 공연장에 갔다. 그러나 벽에 붙은 포스터며 안내지들이 성모마리아와는 전혀 상반된 내용을 알리고 있었다. 더구나 가톨릭 냄새 보다는 개신교 냄새가 짙었으며 전체적인 경향이 개신교라고 알리고 있었다.

 

동정녀 마리아가 아니고 창녀 마리아였다. 순결한 마리아가 아니고 더러운 마리아였다. 성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니라 죄 많은 계집의 여식 마리아였다.

성서 내용의 주된 메세지는 구원자 예수의 행적이며 인간의 구원을 이루신 성부 아버지의 계시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구약과 신약을 통 털어서 인간 구원에 그 촛점이 맞추어진다. 곧 부활 영광이 성서의 결과이며 목적인 것이다.

 

그러나 뮤지컬"마리아 마리아"의 내용은 성서의 모든 관점을 창녀 마리아의 관점에 놓았다. 그래서 예수마저도 조연이 된 뮤지컬이었다. 신약성서를 공부하다 보면 7~8명의 마리아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창녀 마리아와 마르타의 불평을 산 마리아, 또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와 야고버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빈 무덤에 든 마리아등 대충 이 정도로 집약 시킬 수 있다.

 

학자들에 따라서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나누어 보는 학자도 있고, 달리 보는 인물도 있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제외한 다른 마리아들에 대하여는 각기 다른 견해와 의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마리아를 굳이 단정짓자면 창녀 마리아였다. 그러나 작가는 창녀라고 국한짓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람의 내면에 품은 광기에 가까운 인간의 악성을 성서에 비추어 풀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회개하는 자의 구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줄거리가 어두웠다는 점이다. 그렇게 진행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는 죄라는 촛점에 맞추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떤면으로는 보편종교의 그리스도론이라기 보다는 죄인의 관점에서 통성기도가 이루어지는 개신교적 관점이 농루하게 배어났다고 볼 수 있었다.

 

외소한 체형의 배우를 골라 예수를 삼은 것도 이 뮤지컬이 주는 특징이었다. 주인공 마리아에 비해 다소 연기력과 가창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이 뮤지컬이 안내하는 의미를 전달 받을 수 있었다. 반면에 주연배우의 역할은 감히 부족한 나의 소견을 겸하기에 송구할 만큼 대단했다. 그만큼 이 뮤지컬의 작가는 회개하는자의 구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타락한 누구든지 회개하는 자는 반드시 주님께 불려진다는 강한 메세지를 창녀마리아를 통해 전달하고 있었다.

 

예수를 주연에서 제외 시킴으로 해서, 성서의 내용을 알고 있는 관객들이 범죄한 인간이 예수 수난의 공로로 구원 받는다는 기억의 뒤쪽에서 나름대로 각색을 하도록 유도한 작품이었다. 뮤지컬을 보면서 내내 죄인 마리아의 관점에서 성서의 내용들을 찾아 가야했다. 끝 마무리조차 그렇게 흔한 예수의 마지막 행적을 삭제시킴으로 인간의 회개를 철저하게 부각시킨 작품이었다.

 

그 뮤지컬을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관점이 그리스도를 주연배우 자리에 놓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가 인간의 조연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조연의 생각만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생각은 곧 꼬리를 물었다. 뮤지컬처럼 죄인이 주연이 되는 그리스도 종교라면 이단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 이상 종교라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뮤지컬이었기에 다행이었다. 라는 생각에 안도를 했다. 

 

죄인의 회개만으로 구원이 보장되는 그리스도 종교라면 인류의 구원은 희망이 없을 것 같았다. 주님께서 친히 목숨을 담보하셔서 죄인을 구하고, 병든자를 고치시며, 굶주린자를 배불리시는..... 그리스도는 회개라는 조건조차도 능가하시는 참 구원자이시다. 내가 믿는 그리스도는 내가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수 없이 많은 잘못들 조차도 너그러이 사랑하시는 완전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뮤지컬을 보면서 그리스도 종교를 깊이 묵상하였다. 내 스스로 나의 범죄에 대하여 끊임없이 통회하고 회개하여야 한다. 그 참회의 결과로 내 영혼이 주님의 대전에 함께 기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믿지 못 해서가 아니라 나의 인간성이 얼마나 자주 넘어지며 사는가에 용기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도와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께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칠 것이다. 

 

자정이 가까워진 깊은 심야에 감동이라는 털실을 한 올 한 올 짜며 걸었다. 유난히도 먼 밤길이 짝궁의 팔짱이 있어서 포근하고 좋았다. 그래서 그 감사를 나누고 싶었다. " 당신이 와 줘서 고마워!

 오늘밤에 나는 너무 행복해.

 멋진 공연에, 든든한 짝궁에.

 이렇게 깊은 밤에 혼자 왔다가 가려면 얼마나 고독했을까?"

그런데 짝궁은 동문서답을 했다.

"윤복희는 복잡헌 사람인디?"

 

공연의 끝에 마리아의 어머니로 가수 윤복희씨가 높으신 연세에도 기립박수를 받으며 등장한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소리를 질러버렸다.

"당신은 그 공연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한거야?

 당신은 공연의 내용을 이해나 하고 본거야? 

 삶의 여정이 고단했을 뿐,

 윤복희씨는 우리나라 가요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적인 인물이야.

 제발 그렇게 무식하게 말 좀 하지 말아.

 당신이 내 남편 맞아? 정말 내 남편 맞냐구? 

 이렇게 아름다운 밤에 그분들이 그런 내용의 뮤지컬을 왜 해야만 하는지를 당신이 지금 말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내 남편인 당신은 제발 그러지 말아. 

 존경스럽지도 않아?

 그렇게 조그만 체격에도, 그렇게 높으신 연세에도, 

 젊고 싱싱한 후배들 속에서 성량을 들려주기 위해 참여했다는 그 모습은!

 스승이라는 덕을 갖춘자의 미덕이었어!

 너무 존경스러웠어!

 인간이 늙어 간다는 것은 젊음의 모든 오류는 회한으로 물리고 너그러운 스승의 모습을 갖추는 거야.

 윤복희씨는 스승으로 그 자리를 빛내주신거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스승의 자질은 커녕 어른다운 덕도 없이 무의미하게 늙고 병들고 죽는지 알아?

 그분은 역사에 기록될 예술인이셔.

 예술인은 예술로만 평가하는거야........."

 

끝없이 이어지는 구박에 더 듣기가 싫었는지 짝궁은 한 마디로 입을 막았다.

"그래!

 무식한 남편을 뭐할라고 데려왔는가?"

 

그래도 끝까지 아녀자의 앙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분은 세상에 수 없이 많은 마리아 중에 한 사람일 뿐이야.

 당신 마누라도 그중의 한 마리아 이고!

 그렇지만 그분의 제자들에게는 그분이 얼마나 큰 빛이 되는지 당신도 알거야!"

 

ㅡ"나다. 겁내지 말고 안심하여라." 마르코6,50ㄴㅡ 

 

<티켓을 주신 벗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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