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늘 하시던 대로 ♣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06 조회수609 추천수6 반대(0) 신고



처음 목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성서를 가르치던 두 곳에서 같은 주일에 동시에 마이크가 고장이 나서 생 목소리로 두 시간씩 강의를 하게 되면서였다. 평소에 목소리가 작은 나는 정말 힘들게 소리를 지르며 강의를 마쳤는데 그 후로 계속 목이 부어있는 것이었다. 삼 주가 되도록 가라앉지 않는 목을 가리키며 장난으로 암이 아닌가 모르겠다고 했는데...

 

 검사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의사는 촤트만 뒤적이고 있었다. 함께 온 사람 없냐고 물었어도 무심히 지나갈 정도로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다.


암 덩어리가 세 개가 있다는 것.

수술을 하고 경과가 좋으면 앞으로 5년 이상 살 확률이 90%라 했다. 5년 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다시 90%는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다. 외과의사를 소개받고 날짜를 잡은 후, 인사하는 나에게 "담담하시네요"라고 말하였다. 담담한 게 아니라 멍한 거였다.

돌아오는 택시 속에서 "5년이라면... 우리 아이들이 몇 살일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다른 곳에 전이(轉移)되지는 않았을까 물었지만 그건 외과에 가서 알아보라는 이야기가 더욱 불안하게 했다.


마치 처음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처럼,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 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성서 구절 "늘 하던 대로".


 

지난 주에 강의록을 쓰려고 루가복음 수난사를 펼쳤을 때 이상하게 눈에 쏙 들어왔던 말.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 주님은 "늘 하시던 대로" 겟세마니 동산으로 올라가셨다.


죽음을 앞에 두고 그 초조하고 불안한 밤에, 나의 님은 "늘 하시던 대로"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라면 어떠했을까."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의 평상심(平常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등등의 묵상을 했던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래, "늘 하던 대로"다.

집에 돌아와 다시 성서를 펴들고 그 말부터 찾아보았다.

 

그런데 루가복음에서, 예수께서 맨 처음 본격적으로 가르치시기 위해 택한 장소인 나자렛 회당으로 막 들어가시려고 할 때도 역시 '늘 하시던 대로'(10절)-공동번역-이다. 루가복음사가는 무얼 말하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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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에서 보여진 그분의 모습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늘 하시던 대로' 사신 예수였다.


생의 급박한 시간이나 평온한 순간이나,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고 따라오던 성공적인 시절이나, 모두가 떠나버린 허탈한 시절이나, 언제나 처음 마음먹은 대로 변함 없이 사신 분이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닐지....

오빠가 먼저 세상을 떠나 가슴에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가시는 친정부모님께 또다시 충격을 드릴 수가 없었다. 경제적으로 오랜동안 힘들었다가 이제 겨우 다시 일어서려고 애를 쓰고 있는 남편을 또 다시 실의에 빠지게 할 수는 없었다.


성적이 안 올라 애를 태우는 고 3인 딸에게 엄마 걱정까지 부가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아직 철부지 아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싶지도 않았다.

<늘 하던 대로 하셔야 했던, 그러하실 수 밖에 없는> 예수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것은 사랑 아니고 다른 무엇이랴?


다른 사람 앞에서는 '늘 하던 대로' 하시면서도 하느님 아버지 앞에 홀로 남았을 때는 피땀이 흐르도록 번민에 시달리는 예수, 졸고 있는 부실한 제자들이라도 붙잡아 함께 하시려고 왔다갔다 안절부절하셨던 초라하리만큼 초조한 예수.

나도 식구들 앞에서는 초연하고 태연한 듯 생활을 했지만, 한 밤중엔 갑자기 식은땀이 흘러 잠을 깼었으며 (몸은 훨씬 정직했다.-예수님의 피땀은 정직한 그분의 마음이다.)


모두들 나가고 기도하려고 주님 앞에 앉으면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어 울었다. 그리고 바로 당신 앞에서만 울게 해달라고 빌었다.


다행히 주님보다 내가 여건이 좋은 것은 주님은 세 명의 제자들에게서 아무런 위로도 힘도 받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그동안 성서를 통해 친밀하게 된 세 명의 봉사자 친구들이 늘 함께 해주었다.

이제 의료파업으로 기약도 없이 기다려야 했던 그 지리한(정말 기약없는 그 기다림의 시간이 더 힘들었다)시간도, 수술도 다 끝이 났다.


아직 가슴에 전이되어 있다는 남아있는 암조각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지만 이만큼의 고통과 시련 가운데서도, 이만큼의 평상심을 잃지 않는 것은 역시 주님의 말씀의 힘, 그것이었음을 고백한다.(평상심을 잃었을 때의 모습을 목격한 그 친구들이 들으면 웃겠다.)

아참, 유능하다는 외과 의사 선생님을 만났던 첫 대면 때. 음식이라거나 특별히 조심해야할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늘 하던 대로...평상시 습관대로...하시면 된다"는 충격적인(?) 말을 하셨다.


아, 이 말씀...'늘 하던 대로' 

의료파업 때문에 기약도 없이 목이 바작 바작 타 들어가던 그 긴 기다림의 세월을 '늘 하던 대로'의 화두를 붙잡고 살아왔던 나.

 

의사 선생님의 말은 바로 주님께서 내 마음의 화두를 들어주셨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반증으로 들렸다. 일순간 소름이 온 몸에 좌악 퍼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 주님은 '늘 하시던 대로' 나자렛 회당에 들어가시어 성서의 한 대목을 펼쳐 읽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그분은 늘 하시던 대로 오늘도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그런데 늘상 듣는 그 말씀이 그것을 <듣는>-이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오늘><이 자리>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위력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해방의 소식, 희년(禧年)의 선포는 예수님이 우리 곁에 있음으로해서 어떤 시련이나 고통에도 불구하고 매순간 살아있는 해방으로, 기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내일이 불확실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다.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초지 일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큰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인생의 커다란 시련을 맞이할 때마다, 성서와 함께 한 여정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그것을 피부로 느끼게 하시는 하느님께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2001/01/21에 작성하여 수원교구 홈페이지에 게시했던 묵상글입니다 

이제 다시 보니 옛 생각이 나서...그때의 고3딸이 올해 대학 졸업반이 되었으니... 딱 오년이 되었네요...아직 안죽고 살아있으니...90% 안에 든 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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