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격리 수용 체험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07 조회수945 추천수5 반대(0) 신고

 
♣ 격리 수용 체험 ♣

주님 공현 후 금요일 말씀(루가 5,12-16) 

나병환자 이야기만 나오면 꼭 몇년 전 겪었던 격리 수용 체험이 떠오른다. 

하도 특이한 체험이고 강한 인상을 남겨서인지 늘 그때의 일만 생각나기에

할 수 없이 또 같은 이야길 쓰고있다. (읽어보아 알고 계신분에겐 죄송^^)

 

수술 후에 실시되는 항암요법 중에 방사능 동위원소 한 알을 먹고

사방이 두꺼운 철로 둘러쌓인 독방에 갇혀 삼일간 있어야했다.

 

누구도 면회도 안되고 심지어는 의사, 간호사도 없이 미리 교육받은 대로

오로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격리치료이다.

내게서 방사능이 방출되기 때문이다. 

입원하기 위해 짐을 꾸리면서 내 특유의 성격대로 이것도 새로운 놀이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아무도 방해않는 침묵 피정을 떠나듯이 한편 마음이 들뜨기도 하였다.

삼일동안 읽을 책을 잔뜩 꾸려가지고 갔는데, 정작 삼일간 한 장도 읽지 못했다.

 

한 장기에 방사능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장기가 손상되므로 하루종일 몸을 움직여야 했고,

침샘의 피폭을 막기 위해서 신 것을 계속 먹어가며 침을 배출해야했고,

내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하루 1.5 리터 짜리 페트병으로 두 세개씩 물을 마셔대야 했으니...

 

게다가 들어간 것을 빼내는 배설 작업은 어찌나 고되었는지...

몇 시간 간격으로 일부러 화장실을 드나들어야했다.

그런 고욕이 없었다.

물로 배가 잔뜩 차서 배불러 죽겠는데, 끼니마다 소금 간이 하나도 안된 음식을 먹어야했다 .

또 음식을 주는 사람과 구토약과 변비약을 갖다주는 간호사의 노크 소리만 들리면

재빨리 입구에 있는 두꺼운 철판 뒤로 몸을 숨기고 절대로 내다보면 안되었다.

다 알아서 하는데도 매 끼니 때마다 그들은 문을 열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쳐다보지 말아요! 나오지 말아요!"

팔만 간신히 들여보내 식사 쟁반을 디미느라고 음식을 엎지르기 일쑤였다.

가뜩이나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아프고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느라 고통이 말이 아닌데...

도무지 환자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만 생각하는 지나친 태도였다.

처음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다가 점점 화가 나더니 나중엔 서럽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철저히 격리되어 지내며 혼자 고통과 싸우면서

바로 예수님과 만났던 나병환자가 생각나 눈물이 났다.

 

삼일간도 그러한데 일생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격리된 채로

마을 밖, 거치른 광야의 토굴같은 곳에서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나가야 했던 그들.

 

어쩌다 사람이 멀찌감치 지나가면 자신의 상태를  "더럽다! 더럽다!" 하며 크게 외치지 않으면

율법의 저촉을 받게 되어있었다.

 

육신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나병이라지만 문드러져 버린 흉측한 몰골에

피고름이 범벅된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어헤쳐야했던(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게) 

그들의 내면적인 상실감과 슬픔은 오죽했을까?

그들은 그저 삶을 포기하고 죽지 못해 살고 있을 뿐 어떤 희망도 없었다.

어쩌다 병이 낫는 수도 가끔은 있어서(당시엔 악성 피부병도 종종 문둥병으로 오인했다.)

이때는 사제에게 보여 깨끗하게 되었음을 공식으로 확인받아야 했다.

그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길고 번거로운 정화예식이 남아있었는데,

그 절차가 어찌나 까다로운지, 그 예식의 순서와 제물을 어떻게 바쳐야 하는지에 대해

레위기 14장 전체에 걸쳐 쓰여져 있다.(한번 읽어보라-얼마나 복잡한지)

 

도대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그들의 삶에서 그 예물을 바칠 능력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쩜 그만큼 도로 낫는 사람이 거의 없는 유명무실한 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보라!

예수님의 놀라운 치유능력과 그분의 치유행위를....
한마디 말씀으로 그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면서도

굳이 상한 몸을 어루만지시는 그분의 자애로움을....

예수님은 이렇게 간단한데, 이렇게 자애로운데, 이렇게 자유로운데, 오로지 그만을 사랑할 뿐인데...
소위 깨끗한 줄 알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은,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까다롭고, 그렇게 야박하고, 그렇게 자기만을 보호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니 주님, 당신께 의지하지 않고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당신을 믿지 않고 누구를 믿고 살아가겠습니까?

당신께 나의 상처를 보이지 않고 누구에게 보이겠나이까?

그 더러운 상처에도 불구하고 나를 인간 대접해 주실 분이 당신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당신만이 나의 치유자이시고 나의 사랑이십니다.

이 사랑 누구에게 설명해도 부족하기에 당신은 그만 함구하라고 하시나봅니다.

겪어보기 전에는 정말 파악할 수 없는 당신 사랑이시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셨나 봅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라서 암말말구 그냥 네 몸이나 추수리라 하셨나봅니다.

 

주님, 그래서 저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립니다.

주님, 저도 주님만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도 주님만을 사랑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