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눈내린 날에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08 조회수1,261 추천수15 반대(0) 신고
1월 9일 주님 세례축일-마태오 3장 13-17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눈내린 날에>

 

서울에 드디어 눈다운 눈이 오는 줄 알았습니다. 오후에 몇몇 아이들과 외출을 나가는데 눈에 띨 듯 말 듯한 눈발이 흩날리더군요. 돌아오는 길에는 꽤 눈발이 굵어져 오랜만에 눈 좀 보나 했지요.


눈이 내릴 때면 정확한 정서적인 나이(통상적인 나이와는 별개의)를 체크해 볼 수 있다고 하는군요. 저처럼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내일 아침 미사가려면 죽었군! 저 눈 치우려면 꽤 고생 되겠네”하는 마음이 들면 아무리 몸이 생생하더라도 한 물 간 사람이지요. 눈을 보자마자 “와! 눈이다”, “어머, 어머!” 하시는 분들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아직 청춘입니다.


잠시뿐이었지만 꽃잎처럼 바람에 날려 떨어지던 눈꽃송이들을 바라보며 온 누리를 정화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춤을 추며 떨어지는 하얀 눈가루를 바라보며 만발한 이 세상의 죄를 덮으시기 위해 육화강생하신 하느님의 크신 자비가 떠오르며 제 마음이 다 설레었습니다. 볼에 와 닿는 눈의 감촉을 느끼며 금요일이면 자주 읊게 되는 시편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오시니 내 죄를 없애 주소서. 내 잘못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내 허물을 깨끗이 없애주소서. 히솝의 채로써 내게 뿌려주소서. 나는 곧 깨끗하여 지리이다. 나를 씻어주소서. 눈에서 더 희어지리다.”(시편 50)


오늘 주님 세례 대축일입니다. 깨끗함의 원천이신 분, 그 깨끗함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러 오신 분, 아무런 죄도 없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왜 한 나약한 인간에게 세례를 받으셨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당신이 그 물을 통해서 성화되기 위함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통해서 그 물을 축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의 몸이 정화되기 위함이 아니라 당신이 접촉하시는 그 물을 정화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물에 들어가셔서 세례 받으심을 통해 요르단 강물 전체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 온 인류가 정화된 것입니다.


전혀 죄가 없으셨기에 회개할 필요가 없으신 분께서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시기 위해서, 우리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세례가 필요 없으신 분께서 한 부족한 인간의 손에 의해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잠시 되살려 세례예식 때를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사제 앞에서 '세례받기를 원합니다'하고 청했습니다. '세례받기를 원합니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성인(聖人)이 되기를 청합니다'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성인은 또 어떤 사람입니까? 성화(聖化)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성화의 길은 걷는 사람은 더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완전한 사람 가운데 가장 완전한 사람이 예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를 받겠다는 것은 또 다른 예수님이 되겠다는 의사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먼저 극심한 고통을 체험한 인간, 가장 깊은 슬픔을 체험한 인간, 십자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고통과 십자가의 인간이셨습니다.


결국 세례를 받겠다는 것은 세례식 이후의 파티, 금으로 된 묵주반지, 세례와 동시에 주어지는 그럴듯한 세례명 등 잿밥과는 거리가 먼 행위입니다. 또 세례는 건강이나 성공, 만사형통의 보증수표가 절대 아닙니다.


세례식의 기쁨은 잠시입니다. 즉시 다가오는 것이 고통이요 십자가입니다. 결국 그리스도 신자가 되겠다는 말은 이 세상에서 손해 보겠다는 것, 세상과 거꾸로 살겠다는 의사표명입니다. 세례를 받겠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바보 같은 인생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이 세상에 전부를 걸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완전히 깨끗해졌다는 말도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지속적 회개의 여정을 충실히 걷겠다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 험난한 구원의 여정을 출발한다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세례식 때 설렘이나 좋은 느낌, 많은 사람들의 축하인사, 꽃다발, 축하선물, 축하행사, 감격스런 미사와 첫영성체…. 이런 것들은 사실 잠시뿐입니다. 곧 이어 다가오는 부담들은 만만치 않습니다. 주일미사 참례에 대한 막중한 부담감, 복음을 선택함으로써 감수해야할 손해들, 회의감, 무의미….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십자가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고뇌의 쓴잔을 받아 마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십자가의 길을 걷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삶의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예수님 그분을 지속적으로 선택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