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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리더이신 예수님 (연중 제 1주간 화요일)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10 조회수1,035 추천수6 반대(0) 신고
 

                     참 리더이신 예수님 (연중 제 1주간 화요일)


  십자가를 안테나로!

  얼마 전 일간지에서 한국 직장인들이 자신의 직장과 직장 상사를 세계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한국 직장인들의 직장에 대한 소속감이 세계 주요 국가 중 꼴찌이며, 직장 상사에 대해 싫어하는 감정도 일본 다음으로 나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만약 교회나 교회기관에서도 이런 설문조사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좀 걱정이 됩니다.


  오늘 복음(마르 1, 21-28)에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율법학자와는 달리 권위있는 가르침을 펼치시고 또 악령까지 제압을 하십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것은 권위있는 새 교훈이다. 그의 명령에는 더러운 악령들도 굴복하는구나”하며 감탄합니다. 왜 공부도 많이하고 권력도 있는 율법학자들보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 출신의 예수님이 더 권위가 있고 또 더러운 악령까지도 그 권위에 굴복을 할까요? 아마 그것은 참 리더이신 예수님의 ‘사랑과 언행일치’라는 권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참고로 권위에 관한 글들을 퍼드립니다. 가브리엘통신

 

            <당신은 상관입니까, 리더입니까? >

 

1. 상관은 공포심을 심어주고, 리더는 신념을 심어준다.

2. 상관은 '내가'라고 말하고, 리더는 우리들이라고 말한다.

3. 상관은 방법을 알고만 있고, 리더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4. 상관은 원망을 낳게하고, 리더는 신바람을 불러일으킨다.

5. 상관은 잘못을 꾸짖기만 하고, 리더는 잘못을 고쳐준다.

6. 상관은 권위에 의존하고, 리더는 팀웍에 의존한다.

7. 상관은 부하를 부리려고만 하고, 리더는 앞장서서 솔선수범한다.

8. 상관은 일을 고역스럽게 만들고, 리더는 일을 재미있게 만든다.

                

                  - 미공군사관학교의 권위지침-


                                   <권위에 대하여...>


   권위의식과 권위는 차이가 있다. 유교 사회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가족 혹은 직장에서 수직적 일방적 의사소통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사회가 점점 민주화 될수록 수평적, 쌍방적 의사소통을 더 선호하게 된다. 즉, 우리는 대부분 수직적 의사소통이 알게 모르게 내면화 되어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환경은 점점 더 민주적인 사회와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띄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 사회가 보다 더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리라고 예견하고, 또 그런 사회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요즈음 우리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너나없이 점점 더 민주적인 목소리와, 민주적인 의사결정방식, 그리고 민주적인 절차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민주성은 어떤가? 2,000년 전이지만 예수님은 여성과 약자와 소외 받은 자들을 동등하게, 혹은 더 우선하는 가치관을 보여 주셨다. 이같이 진정한 권위는 민주적인 리더쉽에서 나온다고 본다. 실제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그 인권 존중의 정신과 가치를 가지셨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저 멀리 있는 공포의 대상인 절대자로, 절대신적 존재로만 하느님을 인식하지 않으시고 인격적인 아버지로 하느님을 자리매김 하셨다. 이같이 신적 존재이시고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인격적인 아버지로 부른 그 사실은 하느님에 대한 엄청난 인식의 변화를 알리는 것이고 (덕분에 우리가 쉽게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느님을 수직적 관계로 파악하던 그 시대의 인식에서 바로 사랑과 자비의 인격적인 존재로 말씀하신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신적 관계에서 인격적인 관계로, 그리고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뀌는 대단한 변화라 하겠다. 

  인간이 진정으로 다른 인간을 사랑하고, 그 이웃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다면, 즉, 이웃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이웃을 진정으로 소중한 하느님의 자녀로 인식하고, 나와 같은 수평적인 형제자매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참으로,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관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리더쉽도 이러한 새로운 차원의 관계에 토대를 둘 때, 이는 참으로 민주적인 리더쉽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이러한 리더쉽은 모든 이를 벗이라고 부르신 예수님의 리더쉽이고, 이 때 참된 권위가 나온다고 하겠다. 이는 일방적인 복종에 따라서 나오는 리더쉽이 아니라 참으로 평등한 관계(형제자매, 벗)에서 상호 존경의 정신에서 자발적으로, 영혼에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리더쉽이라 하겠다.(영성적 리더쉽) 권위는 이럴 때 나오는 것이다.

  사회적인 능력이 있어서 출세를 하고, 그래서 세속적인 권위를 가지는 관계는 그 지위가 없어지는 순간에 그 권위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토대가 되어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느님의 자녀, 하느님 안에서 형제자매로 인식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영원히 지속되는 참된 관계, 참된 권위라 하겠다. 예수님의 이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토대가 된 권위는 한 인간의 영혼을 강타하는 사랑의 파워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사랑이 토대가 된 권위로 이웃을 만나야 할 것이다. 이럴 때 우리의 영혼도 정화되고, 나아가 이웃의 영혼도 정화되는데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랑이 있는 권위는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따르게 하지만, 사랑이 없는 세속적인 권위는 껍데기뿐인 권위가 되어 사람들의 영혼을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이 사랑을 가지고 접근해오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지 않는가? 이웃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있는 곳에 참된 권위가 있고, 참된 권위가 있는 곳에 감동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동으로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현상들을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종종 볼 수 있지 않은가? 우리도 사랑에 뿌리를 둔 참된 권위를 가지고 이웃을 존중하면서 살 때, 나의 영혼이 더 살찌지 않겠는가?  혹시라도 이를 통해서 이웃의 영혼에도 조금씩 좋은 영향을 주게 되지 않겠는가?

  참으로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 저의 생각과 말과 행위들이 사랑에 뿌리를 박은 당신의 참된 권위로 가득차게 하사,저의 영혼이 참으로 섬기는 권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권위로 인하여 정화되게 하시고, 나아가 당신의 권위로 이웃의 영혼도 정화되는 은총을 허락 하소서!

  주님! 권위와 능력없는 저희에게 당신의 권위와 당신의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당신처럼 모든 이를 존중하고, 모든 이를 주인으로 여기는, 그래서 모든 이를 영혼의 벗으로 여기는 그 아름다운 민주성을 우리도 가질 수 있도록 은총을 허락하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벗으로 사랑하시는 당신께서 당신 사랑의 권위로, 우리 영혼의 어두움을 몰아내어 주소서! 그리하여 당신께서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우리 옆에, 그리고, 우리 안에  정말 살아계시다는 것을 당신의 권위로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에게도 생생하게 보여 주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아멘!

 

                          -임성호님의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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