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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44) 발레리나 최태지님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17 조회수1,26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1월17일 월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ㅡ히브리서5,1-10;마르코2,18-22ㅡ

 

       발레리나 최태지님

                               이순의

 

 

내가 개인적으로 대면해 본적이 없는 인물 중에 존경하는 사람이 몇 분이 계시다. 그 중에 발레리나 최태지님이 포함된다. 물론 그 분의 춤은 여러번 뵌적이 있다. 나는 그분을 알지만, 그분은 나를 전혀 모르는 발레리나였을 뿐이다. 내가 수집한 수 없이 많은 사인 중에 그분의 사인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 또 안타따움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 중에 최태지님을 자주 생각한다.

 

내가 섬에서 돌아와 서울에 터를 잡고 신문의 문화면을 펼쳤을 때 믿어지지 않는 기사가 있었다. <해설이있는 금요 발레>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입장료3000원! 믿어지지 않는 기사였다. 발레라는 것이 서민들에게는 얼마나 먼 강 건너 불구경인데 국립무용단 수준의 국립극장에서 3000원짜리 발레라니????? 수화기를 들고 확인해 보았다.

 

모든 것은 사실이었고, 더구나 입장권 예약이 폭주를 하여 매진일 경우에는 입석도 판매하며, 입석요금은 1000원이었다. 단 공연시작 1시간 전에 오신 분에 한하여 선착순 몇 분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급하게 근처 백화점으로 가서 표를 알아 보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파는 분량의 표는 1년치가 이미 매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공연 시작 1시간 전 보다 더 전에 도착하여서 줄을 서야 입석표를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해 여름부터 12월 호도까기인형 공연까지 나는 매월 한 번은 고생을 하기로 했다. 물론 아들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저녁 7시 공연이면 6시 까지 가야하고 더구나 몰리는 입장객에게 밀려나지 않으려면 5시 30분까지는 가서 줄을 서야했다. 여기서 국립극장까지는 장충동의 언덕을 오르는 시간에 내 어린 아이의 장난스런 헛눈질까지 합하면 족히 두시간은 넉넉 잡아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미의 급한 마음대로 움직여 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다고 야단을 하면 안간다고 해 버릴 것이고, 문화란 어른이 되어 돈이 넉넉해져서 익힌다고 익혀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므로 어떻게든지 인내심을 동원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첫째로 가서 맨 앞에 앉아있거나 서 있었다. 지루함에 못 견디는 아이는 한 달에 한 번은 국립극장 터가 놀이터가 되었다. 

 

1000원짜리 입석표를 구해서 가운데 통로에 앉아서 수준 높은 발레감상을 하고, 또한 해설을 공부했다. 이듬 해에는 백화점 예매창구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1년치 예매를 해 두었다. 1년치 라고 해 보아야 정식 공연티켓 한 장 값도 되지 않았다. 서서히 아주 조금씩 입장료가 올랐고, 입석표는 없어졌으며, 내용의 질도 더욱 상승되었다. 꼬박 3년을 그 발레공연을 보러 다녔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최태지라는 발레리나에게 존경의 마음을 심고 있었다.

 

최태지님은 일본교토에서 태어나 9세때 발레를 시작한 동포이시다. 16세때에 <코르넬리아>를 주역으로 데뷔, 국립발레단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3년 <세헤라자데>의 객원주역으로 초청되면서이다. 1987년 국립발레단 프리마 발레리나로 특채되면서 고국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는 물론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인물로 변신을 거듭, 1993년 국립발레단 지도위원으로 위촉되었고, 1996년 국립극장 사상 최연소 예술감독에 임명된다. 취임 1년동안 '고전발레 다지기'에 주력, 97년에는 <해설이 있는 금요발레>라는 기획공연을 통해 국립발레단을 '발레 대중화'의 선두주자로 내세웠다.

 

그것이었다. 산업화의 발전에 부강해진 나라에서 문화 예술분야에는 고른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끼리끼리 편중된 수준 모으기 현상은 이 사회의 예술에 대한 또 다른 소외를 자청하고 있었다. 부의 축적을 위한 도구인 예술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어느 특권층들의 사치쯤으로 과시 행사되는 예술세계는 그들이 서민들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민중의 관심을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발레가 보편적 예술로 누구나 즐감하는 문화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젋은 국립발레 단장은 맑은 피의 수혈을 과감히 시행한 것이다. 좀 시간이 걸리고, 좀 더디며, 좀 맞지 않은 사람들일지라도 교육이 없이는 발레인구의 증가를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로 반지하방의 단칸 셋방사는 아이도 3년 동안이나 양질의 발레교육 뿐만 아니라 고전 음악의 발전과정과 고전 이야기들의 아름다운 순애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분들은 자기 분야를 전하기 위해 최선의 땀을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 가족의 문화적 가치를 바꾸게 될 줄은 몰랐었다. 음악과 미술, 오페라와 뮤지컬, 영화와 연극, 국악과 대중가요........ 까지! 참으로 시행착오도 많았다. 금기사항들을 지키지 못 해서 공연 도중에 배우에게 지적을 받은 경우도 있었고, 훈련되지 않은 문화 즐기기를 역시 돈이 많다는 티를 내시는 분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으며, 싸고 저변적 공연만 쫓아 다니다가 큰 맘 먹고 완전한 작품의 공연티켓을 거금을 주고 샀는데, 시간 예측을 못 해서 통째로 날리고 여러 날을 잠을 못 자고 속이 쓰린 경우도 있었고.... 

 

지금까지의 시간을 보내며 그 무엇보다 확실하게 달라진 것이 있다. 그것은 화장실 문화와 박수 문화이다. 화장실 안에서 과연 이 사람들이 문화인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진 풍경들이 비일비재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그런 풍경들을 목격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 입구에 줄서기는 그 혼란들을 차단해 주는데 확실하게 기여를 했다. 문화의 발전은 화장실에서도 상승효과를 증명하고 있었다.

 

박수는 공연에 따라서 모두 다르다. 우리 것과 수입된 것이 다르고, 음악과 춤이 다르며, 마당극과 무대극이 다르고......! 그런데 관객들이 그것을 몰라서 치지 말아야 할 때 치고, 쳐야 할 때는 치지 않는다. 그래서 공연 전에 박수치는 요령을 설명하는 것이 당연시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박수치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들의 수준에 배우들이 부응해야 할만큼 탁월한 메너를 보여주고 있다. 관객들의 품위 향상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굳이 가톨릭의 묵상방에 개인의 존경하는 인사를 올리는 이유는 과감하게 낮추려고 했던 수용적 태도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의 인품이나 사생활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때 당시 그분이 국립발레단의 최고 책임자로서 발레공연의 관객들을 왜 기존의 수준에서만 흡수하지 않았는가? 이다. 좀 더 비싸게 티켓을 판매하고, 좀 더 많은 이익을 선호하지 않았는가? 이다.

 

물론 당시에는 거의 많은 예술 분야에서 그런 개혁을 시행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의 싹들이 자라서 지금 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 요즘은 불경기라서 문화 예술분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맛이 든 내 아이가 용돈을 쪼개서 공연을 보려고 했을 때는 그분의 "대중화"작업은 연속선 상에서 미래를 보장하고 있다는 믿음이 들었다. 다만 조금은 아쉬움이 있다면 그런 공연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간혹 상설공연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듯이 종교의 저변에도 과감한 인식의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피 흘리며 순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랑스럽고 당연시 된 사회를 살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신앙을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성직자는 성직자 대로, 수도자는 수도자 대로, 평신도는 평신도 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목소리들이 "이대로는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청년, 청소년 사목에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고민을 선택 해야 할 것이다. 아니 이미 고민하고 있다. 하느님 나라의 연속적 미래에 대하여......

또한 이루심은 주님의 뜻대로 인도 될 것이라고 믿으며.....!

내 자신은 교회와 그리스도 신앙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다.

아멘!

 

최태지님께 나에게 문화와 예술의 안목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셔서 한국의 발레가 더욱 발전하도록 기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십시요.

 

ㅡ어느 날,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을 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요한2,18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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