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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45) 시주 (施主)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18 조회수901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5년1월18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일치주간)ㅡ히브리서6,10-20;마르코2,23-28ㅡ

 

               시주 (施主)

                                    이순의

 

 

얼마전에 책을 선물로 받았다. 한 권은 먼저 받았고, 다 읽은 후에 한 권은 나중에 받았다. 아들녀석이 용돈을 아껴서 사다 주느라고 한 번에 두권을 사주지 못 하고 읽는거 봐서 한 권씩 사다 주었다. 마음이 어지러운 순간에 무척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불교의 스님께서 강원생활을 들려주시는 그리 어렵지 않은 재미있는 책이었다.

 

억센 사내들만 살면서 수도의 길을 가는 장소가 있는데 한 곳은 절집의 강원이요. 한 곳은 개신교의 총신대이며, 또 한 곳은 가톨릭의 대신학교이다. 각각이 공통점도 있고 상이한 점도 있지만, 굳이 내가 따지고 싶은 부분은 술과 담배이다. 스님들께서 공부하시는 강원과 목사님들께서 공부하시는 총신대는 술과 담배를 완전히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신부님들이 공부하시는 대신학교는 술과 담배를 일정부분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 금주금연의 구역에서도 사내 대장부들의 기운은 넘쳐나다 못해 지글지글 끓기가 일수인데 술과 담배가 일정부분 허용되는 대신학교의 기운은 가히 뭇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그 교육을 담당하시는 스승님들의 고초는 짐작하기 조차 어려울 것이다.

 

몇 해 전에 비구니 한 분과 나와 아들이 겨울여행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차가 없으므로 기차로 겨울여행이 시작되었고, 수도정진 중이신 비구니(이하 스님)와 동행한 이유는 평소에 절친할 뿐만 아니라 방안에만 갖혀있는 나 보다 지리적 여건에 밝으셨기 때문에 큰 힘이 되어주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스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속인의 모자(母子)인 우리에게 든든한 본이 되어주시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린 자식을 동행한 아녀자가 홀연히 한겨울의 여행을 감행한다는 것은 무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하지 않는다면 안될 것 같은, 평생하지 못 할 것 같은 예감에 짝궁을 졸랐다. 물론 반대로 무산되었고 허락되기까지 1년이 걸려서 겨우 걱정과 염려를 깔고 허락을 받았다. 엄동의 설한에 오직 스님의 안내와 내가 믿는 천주님의 가호를 빌며 겨울여행은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루밤을 산사에서 신세를 져야만했다. 작은 암자가 아닌 대중들이 늘상 드나드는 큰 절에는 하루밤 묵어 갈 수 있는 대방이 있다고 한다. 남녀가 구분 된 방에는 백일치성을 드리러 오신 보살님들이나 하루 불공을 드리러오신 신도들이 머물다 가셔도 되고, 뜨네기 나그네들이 하루밤 얼지 않고 편안히 묵어 갈 수 있도록 배려한 곳이다. 그런데 여승이 끼워진 우리일행은 어찌되는지 걱정이 되었다.

 

나와 내 아들은 아무렇게나 자도 되는 속인이지만 수도정진 하시는 스님의 안거를 내심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절집의 강원에서 공부하시는 스님의 방 하나를 통째로 비워주시지를 않는가? 수도정진의 계를 받으신 스님께 일정한 예우를 해 주신 것이었다. 어쨌든 절친한 친구의 덕택으로 여행에 고단한 어린 아들을 편안히 누이고 나도 편안히 잤다.

 

잠만 잔 것이 아니었다. 스님께서는 새벽의 절집 풍경을 언제 보아 두겠느냐고 하시며, 절집의 기상시간 보다 더 일찍 우리 모자를 깨우셨다. 그래서 우리 모자는 바람만이 밤을 지켜주는 강원의 기상은 풍경소리와 함께 목탁소리가 새벽을 깨운다는 것을 알았다. 줄을 지어 법당에 드는 도반들의 정갈함도 보았고, 먼지 한 점도 머문이가 없을 것 같았던 정적 속에 그 밤을 산사에서 함께 보낸 사람들이 대웅전 법당에 가득 차고도 넘쳤다는 사실도 절을 하시는 스님들의 곁에 앉아서야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스님께서는 대법당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우리 모자를 범종각으로 인도 하셨다. 새벽의 겨울은 뼈를 갈구는 것처럼 매서운 추위가 있었다. 아직 햇님의 기척은 꿈을 꾸는 깊은 밤이었다. 썰렁한 범종각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차디찬 쇠덩어리 범종과 편종, 뭉툭한 나무를 깍은 법고와 어고만이 종각의 주인이었다. 매서운 찬 바람과 동행하여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스님 네 분께서 줄을 지어 오셔서 준비를 하셨다. 그런데 범종각의 주인들께서는 그냥 두드린다고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스님들께서는 수 없이 손을 움직여 손끝의 모든 기를 풀어 내셨다. 손가락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빠른 손질을 하시는가 하면 너무 느려서 저렇게 쳐서 소리가 날까 싶은 손짓을 하시기도 했다. 고요속에서 요동치는 것은 여덟 개의 손 뿐이었다. 시간이 되었을까? 맨 먼저 스님 한분이 물고기의 내장 속으로 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두 개의 막대를 움직였다. 닥닥닥닥 다다다다다 따따따따 딱딱 딱딱드드드드드 닥닥닥......... 묵직한 나무의 결음이 스님의 심장을 관통하여 소리를 냈다. 새벽잠이 깊은 만물에게 놀라지 말고 일어나라는 깨움의 첫소리가 어고의 소리라고 한다.

 

갑자기 쇠종을 울려 <꽝> 하고 대지를 깨우지 않고, 물고기의 잔잔한 입질 같은 수면(水面)의 소리를 보내주어서 일어날 것을 다독이는 소리가 어고의 소리인 것이었다. 대지를 다독이느라고 물고기 한 마리의 뱃속이 바쁜 중에도 세 분 스님들의 손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첫 새벽의 만상을 깨우는데는 숙련된 손놀림의 봉헌이 필요한 것 같았다. 다음은 법고! 엄청나게 큰 북이었다. 스님보다도 더 크고 우리 일행과 스님의 일행을 가두고도 남을 만큼 큰 북의 앞에 작은 막대기 같은 스님이 섰다. 저렇게 큰 북이 저렇게 작은 스님의 호령에 순응하실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또도도도 드드 둥~~! 둥~~! 두두두 도도도 덩~ 둥~ 디디디디 둥당~ 동덩~~! 둥~~! 둥~~! 킹콩이 미녀에게 순응하는 소리였다. 북의 가장자리 편자에서 시작되어 둥근 가죽판의 넓은 마당에서 두 개의 손이 발레 춤을 추었다. 그 손의 핏줄에 걸린 장삼자락은 선녀가 입고 온 치마자락이었다. 그토록 커다란 북이 스님의 북체에 한없이 순종하는 깨달음이었다. 칠흙 같은 어둠속에서 그토록 화려하게 장삼자락은 춤을 추었다. 그토록 장엄하게 장단을 맞추었다.

 

세 번째는 범종이었다. 소리를 위해 아가의 울음소리가 보시로 쇳물에 녹아 한을 품었다는 산사의 범종들은 익히 알려진 위엄이었다. 그냥 커다란 덩치를 밀어서 소리를 얻는 범종이었다. 굳이 스님의 손을 다스리셔야 할 필요가 있으실까 싶었지만 스님은 차례가 오실 때까지 쉬지 않고 손을 다스리셨다. 그리고 원통의 나무에 매어진 끈을 잡고 스삭스샥 맛을 들이다가 한 번에 힘껏 밀어 재꼈다. 

광앙~앙~앙~아~아~아~ㅇ~ㅏ~~~~~~~~.....................!

광앙~앙~앙~아~아~아~ㅇ~ㅏ~~~~~~~~.....................!

광앙~앙~앙~아~아~아~ㅇ~ㅏ~~~~~~~~.....................!

 

범종의 소리는 천하를 호령하는 소리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꾸물거리는 모든 대중들에게 부지런한 하루를 중생들에게 잘 다스리도록 엄명하시는 장중한 소리였다.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멀리 가시는 소리의 여행객은 범종이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끝으로는 편종이신데 절집에 따라 편종의 모양은 다르기도 하단다. 구름모양의 철판을 쓰기도 하고 아주 작은 종을 사용하기도 하며, 때로는 징이나 꾕과리 같은 작은 악기를 쓴다고도 한다. 편종의 소리는 지금까지의 소리보다는 우람하지도 장엄하지도 않다. 듬직하지도 않으며 점쟎은 대장부의 소리는 더욱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위엄과 장엄함을 한꺼번에 품어서 가슴에 안아버리는 여인의 소리이며, 어머니의 재촉이었다. 잦은 반복과 쟁쟁거리는 소리는 다정한 어머니의 아침 잔소리가 분명했다.

 

우리는 그 절에서 잠도 잘 잤지만 불공(?)도 잘 드리고 아침 공양을 공으로 봉양까지 하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죄송한 마음이 드는 이유가 있다. 비구니 스님께서 딱히 무슨 말씀도 없었지만, 나는 내 스스로 주님 대전이 아닌 다른 대전에는 봉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두었다. 그래서 불쌍한 사람에게는 잘 주는 노자돈도 절집의 시주함에는 절대로 봉양하지 않는다. 그냥 공경의 마음으로 다녀오기는 하지만 시주하는 것은 꺼려했었다. 그런데 공이로 자고(그것도 독방꺼정 차지하고), 공이로 보고, 공이로 먹고, 공이로 얻고..... 그냥 돌아 서려니 워째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동행하신 스님께서 귀뜸도 없으시니 마음은 껄적지근 한데 보시를 하려니 영 내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다. 그냥 나오려는데 보살님께서 대웅전 마당에서 건축 기와 시주를 신청 받고 계셨다. 기와장을 몇 장 사드릴까 하다가 나는 하느님을 믿는데 절집의 지붕에 내 이름의 기와장이 올려질 일을 생각하니 <흥!> 마음이 돌아서 버렸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마음이 불편하던지! 그래도 스님께 내색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절을 빠져 나와 택시를 탔다. 

 

절 입구를 벗어나 고적한 산사의 계곡을 한참 동안 내려 오는데 매서운 바람에 달구어진 스님 한분이 손을 들었다. 기사님은 그냥 스치려 했으나 스님께서 같이 가자고 차를 세웠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스님은 머리는 깍았으나 고단한 세파의 냄새가 짙은 인상을 풍겼다. 나는 질문을 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추운 겨울에 어찌하여 새벽 행차를 하셨는지요?"
"저는 큰 스님께서 떠나라고 해서 길을 나섰습니다. 겨울 한 철을 안거하려고 찾아왔는데 큰 스님께서 받아주시지 않겠다고 하시니 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중입니다."

그 스님의 안색은 나빴고 이는 몇 개 없었으며 평온한 스님으로는 아니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아하! 만물의 주관자이신 나의 주님께서 껄적지근한 마음을 안고도 시주하지 못 하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그리고 푸른 지폐 세 장을 접어 그 스님의 손에 놓아 드렸다. 동행을 하시던 친구스님의 마음이 어떠신지를 몰라서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과감한 답례(?)를 하기로 한 것이다. 강원에서 나와 세상을 떠돌며 고뇌해 본 경험이 나에게도 있었지를 않는가?! 여기저기 나를 받아 줄 만한 강원을 찾아 피정도 해 보고, 상담도 해 보고, 문의도 해 보고..... 그건 고뇌였다. 만약에 지금 이 스님의 입장이 그렇다면 그토록 외로운 방황과 사무치는 고독감을 누가 알겠는가? 찬 겨울 바람에 산사를 찾아 정처없이 떠돌아야 할 그 스님의 업을 생각하니 지나간 나의 세월이 스치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경비 중에서 푸른지폐 세 장이 아깝기는 했지만 미련없이 털아 낼 수 있었다. 아들이 선물한 책을 마저 읽으며 그때 그 스님을 생각했다.

 

구도의 길!

참선의 길!

수행의 길!

인간이 존재하는 한 신은 존재하며, 그 선행의 가르침을 찾아 깨달음을 구하려 할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정의가 없고, 진리가 없으며, 옳고 그름이 없다. 오늘은 <일치 주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강원에서 든, 총신대서 든, 대신학교 든! 인간의 영적 성화를 위해 스스로의 영성을 닦아가는 분들이 있는 한 인류의 혼은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술을 처 먹고 구분도 없이 스승 신부님 방에 토악질을 하는 신학생이 있는 한, 혼인의 길이 허락되어서 여인을 번갈아 보는 목사 지망생이 있는 한, 속세의 업을 묻고 산사에 숨어 경지를 헤매는 도반이 있는 한,

 

그들에게는 그들을 믿어 주시는 스승이 있다.

 

< 참! 그때 동행 하여준 비구니께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건강하시기를.....>

 

ㅡ예수께서 이어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르코2,27-2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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