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46) 분홍색 봉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19 조회수1,192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5년1월19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ㅡ히브리서7,1-3.15-17;마르코3,1-6ㅡ

 

                  분홍색 봉헌

                                    이순의

 

 

일요일 아침에 다녀올 곳이 있어서 짝궁더러 혼자 미사에 가라고 했다. 좀 늦을지도 모르니까 자리잡아 놓기를 부탁했다. 살포시 쬐끔 내린 눈을 밟으며 서둘러 미사에 가느라고 아침이 바빴다. 조금 늦었지만 성체를 영하지 못 할 만큼 늦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짝궁은 항상 앉는 자리에 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미사에 열중하고, 본당에 심려를 끼쳤으니 죄송한 마음까지 보태서 바늘방석처럼 앉아서 강론도 적고, 여느 때와 마음가짐이 다른 것만은 사실이었다.

 

봉헌준비를 하는데 짝궁은 나의 봉헌주머니는 준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누런지폐 한 장만 건네 준다. 주머니 없이 그냥 손으로 들고 갈 참이었다. 그런데 짝궁의 봉헌주머니에 누런지폐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소처럼 푸른지폐도 아니고 꼬깃꼬깃한 분홍색 지폐를 억지로 펴서 담고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았어도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알수 있었다.

 

짝궁은 몹시 단순한 사람이다. 뭐든지 쉽고 좋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헌금도 특별한 개념을 두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우는 사람한테 비교하기도 하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술값에 비교하기도 하며, 푸른지폐 한 장에 부담을 갖지 않는다. 커피 한 잔 대접하려면 금방 푸른지폐 한 장인데 하느님 한테 내는 헌금을 부담스러워 하면 그게 하느님 믿는 사람이냐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짝궁이 정해놓고 따로하는 기도가 없기 때문에 헌금이라도 아까운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지며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돈을 잘 벌을 때는 두둑한 헌금에 인심을 쓰기도 한다. 지방성당을 가든지, 공소에 가든지, 본당에 오든지, 전국 어디에서나 달리 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짝궁이 주일에 하는 봉헌은 그의 기도이자 신앙생활이며 믿음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그가 푸른지폐는 커녕 누른지폐도 아닌 분홍지폐를, 그것도 지갑을 여는 것도 아니고 주머니 속에 구겨진 종이를 억지로 펴서 봉헌주머니에 담고 있었다. 내심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돌이켜보려고 귓속말을 했다.

"당신 왜 봉헌을 그렇게 해?"

짝궁은 불편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천원짜리는 돈 아닌가? 살림도 어려운디 아껴서 살아야 쓰것네."

 

아무말도 못했다. 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가방도 챙기기도 전에 핑 하고 가버렸다. 부부를 산다는 것은 말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안다는데 축복이 있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해 보니 현관은 열려 있는데 짝궁의 신발이 없다. 다시 밖으로 나와봐도 짝궁이 없다. 아이들도 아니고 어른인데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으로 들어 갔더니 누워서 자는 척이다. 구두는 구두상자에 담아버린 것이었다.

 

눈치만 살피다가 점심을 먹은 후였다. 장난기가 발동한 아들이 누워있는 아빠의 턱에 주먹을 슬쩍슬쩍 들이 대고 있었다. 그 장난을 외면할 아빠가 아니지를 않는가?! 또 한바탕 레스링이 펼쳐지고 힘으로 하는 아들이 꾀로 하는 아빠에게 패배를 선언하고 학원에 간다고 나갔다.

"아빠 갔다와서 다시하자. 아들이 갔다 올 동안 질 준비하고 있어? 두고보자 잉?"

"어이! 내아들이나 질 준비하고 돌아오시소. 아직은 이 아빠도 힘이 있다네. 차나 조심하고 잘 댕겨 오시소."

 

분위기가 열을 받아서 방안의 공기마저 훈훈했다. 그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본디 하이소프라노(?) 목소리인데 힘을 실어 말을 건넸다.

"당신은 왜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그래요?"

"............."

다 아는 마음이라 대꾸가 있을 줄 알았더니 묵비권이다.

"왜 봉헌금을 접어 먹느냐구 하느님이 당신 마음을 꼬집지 않았어요?"

나의 추궁에 곧 바로 대답이 나왔다.

"헌금 많이하면 성당에서 자네한테 이쁘다고 허든가?"

 

섭섭한 마음을 풀어줘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단순하디 단순한 사람의 마음을 풀어 줘야한다. 언제나 그렇게 접히는 사람을 그렇게 풀어 놓았듯이 또 다시 그렇게 그 사람의 마음을 풀어 주어야 한다. 원인이 교회가 아닌 나였듯이 해결도 교회가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 늘 그것을 이해 시켜줘야 하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 여자를 데리고 사는지를 이해시켜 줘야 하고, 그렇게 문제가 많은 여자를 데리고 사는 당신이 천사이며, 주님께서는 그런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복습해야만 했다.

 

늘 그랬었다. 생활에서 건, 신앙에서 건, 고비가 올 때는 짝궁의 헌금종이가 변했다. 그렇게라도 하느님께 반항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느님께 당신의 졸은 마음을 봉헌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죄 많은 각시의 편에 서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답답한 심정을 털고 싶었을 것이다. 그 사람인들 입이 없었겠는가? 그 사람인들 해 보고 싶은 말이 없었겠는가? 그 사람인들 처량한 마음이 없었겠는가? 그래도 언제나 항상 한결같이 지켜봐 주는 그 사람에게 죄만 짓고 사는 사람은 나였다.

 

"미안해.

맨날 사고만 치는 각시랑 살아서 당신한테 말할 자격도 없는데 그래도 하느님한테 화풀이는 하지 말어.

당신은 나 한테는 잘 참아주고, 잘 지켜봐주고, 잘 인내해 주는데 그 화풀이는 하느님한테 하드라?!

그러지 말어!

기도도 할 줄 모르는 당신의 변함없는 헌금 때문에 아들도 잘 크고, 당신도 건강하고, 마누라도 바람 안나고 가출 안하고 잘 사는데 왜 그래?

원망보다 감사한 것을 더 많이 생각해 봐!

뭐든지 미안하고 뭐든지 잘 못 했어.

맨날 속만 썩혀서 미안해.

용서해 줘!

당신이 봉헌금을 쪼개 먹어서 하느님이 당신 마누라의 죄를 반만 삭감해 주면 당신 혼자서 천당 갈거야?

나는 당신의 마음이 언제나 변함이 없기를 바래.

하느님은 죄가 많은 것은 금방 용서해 주시는데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는 것은 못 참으시거든!

그러니까 마음 풀기다.

우리가 누리며 사는 것이 우리가 지은 죄 보다 많잖아!

그러니까 언제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살자.

다음에도 분홍색이면 각시 화낸다."

 

또 늘 들었던 말을 들었으니 또 늘 했던 말을 했다.

"내가 못났으면 자네도 나같은 바보맹키로 바보가 되야 허는디......

 바보하고 살면 바보가 되야 하는 것이여.

 아들이 복사하고 싶다고 해도 못난 애비의 분수를 먼저 가르쳤어야지.......

 수녀님들은 사람 아니당가?

 신부님들은 사람 아니당가?

 그 날 수를 성당에 댕김시러 아직도 그것을 모르는가?

 모두가 내 탓이네! 

 말 안하는 나도 알 것은 다 알고 사네."

 

짝궁의 말이 옳다. 세상이치가 그렇다. 교회라고 별천지는 아니질 않는가? 그래도 신을 향한 인간의 마음이 변해서는 안된다. 넘보지 말 것을 넘 본 죄가 있다해도, 넘보지 말 것을 넘 보아서 내친 죄가 있다해도, 주님을 향하는 마음이 변하여서는 안된다. 짝궁의 가슴을 매번 한스럽게 하는 장 본인이 나이지만 그렇게 단순한 신앙을 사는 그 사람의 은덕을 모르지 않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거짓없이 순수하게 교무금보다 헌금을 더 많이 내는 사람의 마음이 접히지 않고 회복 되기를 빈다. 주님께서 그 마음을 다 알고 계실 것이다. 오그라든 짝궁의 마음을 펴주시리라고 믿는다.

 

ㅡ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펴라."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펴자 그 손은 이전처럼 성하게 되었다. 마르코3,5ㄴ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