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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47) 모피 두 장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20 조회수1,10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5년1월20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 성 파비아노 교황 순교자, 또는 성 세바스티아노 순교자 기념 ㅡ히브리서7,25-8,6;마르코3,7-12ㅡ

 

               모피 두 장

                             이순의

 

 

오늘은 겨울의 정점에 이르는 대한이다. 대한이가 소한이네가 얼마나 추운지 보려고 가정방문을 했다가 기겁을 하고 돌아왔다고 하는데, 그것은 소한이가 대한이 보다 추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가을 볕이 따뜻했다가 겨울의 초입이라서 소한이를 더 춥게 느끼기 때문이고, 대한이는 모두들 옷도 잘 갖춰 입고 마음도 동장군을 이길 태세를 갖추기 때문에 당연히 느끼는 원인이라고 한다. 지나온 일기를 통계 해 보아도 소한이가 대한이 보다 추운 경우는 느물다고 한다.

 

나에게는 모피가 두 장 있다. 하나는 윗도리만 가려주는 무스탕이고, 하나는 종아리까지 가려주는 긴 코트형 무스탕이다. 나는 겨울에는 추위를 많이 타고, 여름에는 더위보다도 통증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을이면 내의를 입어야 하고, 초여름이 다 되어서야 내의를 벗는다. 그리고 곧 바로 더위와 함께 온 몸을 조이는 듯한 통증을 감당하며 평생을 살고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도 늘 한 가지의 통증은 느끼며 사는 줄 알았다. 모든 사람이 통증과 함께 일생을 사는 줄 알았다. 그렇게 당연히 이기며 사는 것이 통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살아보았더니 짝궁도 통증 없이 사는데 아들도 통증이 없이 사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저런 것은 아픈 것도 아닌데 벌벌 떠는 부자를 보며 아! 다른 사람들은 통증이 없이 사는 거구나! 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런 나에게 아주 오래 전에 무스탕 윗도리가 생겼다. 큰언니가 외국에서 살다가 오는 길에 동생의 추위를 생각해서 사다 주었다. 항상 엄마보다 더 막내동생에게 사랑을 쏟는 큰 언니가 귀국하는 길에 막내동생의 겨울 추위를 걱정해서 사 오셨다. 그런데 나는 그 무스탕 윗도리를 걸어놓고 겨울이 두 번을 가도록 입어보지 못 했다. 세 번째 겨울이 올 때까지 고민만 하고 있었다. 만지작 만지작 만저 볼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형편에 저걸 입고 나가면 분에 넘치는 옷을 입었다고 할거야. 사람은 격이 맞게 옷을 입어야해. 분명히 저 옷은 나 같이 천한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그리고 걸어 놓고 바라보면서 좋았다. 바라보면서 큰 언니께 감사했다. 그리고 삼 년째 되던 해에 그 무스탕 윗도리를 입기 시작했다. 얼마나 따뜻하든지?! 지난 두 해를 춥게 살은 내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겨울만 되면 큰언니께 은혜하는 마음으로 몸도 따뜻했고 가슴도 따뜻했다. 커다란 만족이었다. 죽는 날까지 그 무스탕 윗도리 하나면 겨울은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근자의 겨울에 허리만 가려지는 내 무스탕 윗도리 보다 긴 치마 같은 무스탕을 선물로 받았다. 아마 그 옷을 사실적에는 액수가 상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성당에서 친한 형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귀뜸을 하신 것이다. 헌 옷이라도 받아입겠느냐고.

 

반토막짜리 무스탕이 있는데 온전한 무스탕이라고 하니 언감생심 대뜸 주시라고 했다. 그래서 옷이 왔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다. 큰언니가 사 주신 반토막이라도 평생을 살거 같더니 온전한 전신용 무스탕이 생겨서 요새는 주로 그것을 입게 된다. 그 코트는 그형님의 친정어머니 옷이다. 근자에 어머니께서 유품으로 남기시고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형님께서 입으시자니 치수가 맞지를 않으시고, 돌아가신 분의 옷을 선뜻 누구를 주자니 조심스럽고, 태우자니 아깝고....

 

그러시다가 건강하지 못 한 나를 떠 올리셨고, 제노베파라면 어머니의 유품을 애지중지 입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큰언니가 사 주신 옷을 그렇게 잘 입었는데.....! 아랫도리꺼정 덮어주는 무스탕을 걸치다가 몇 일 대한의 한파에 반토막 무스탕을 걸치려면 아랫도리가 왜 그렇게 추운지? 다시 또 긴 무스탕을 입게된다. 더불어 그 할머니의 영원한 안식을 비는 화살을 쏘면서 옷을 입는다. 주일 미사에서 형님을 만나 "너무 따뜻하게 잘 입어요." 라고 간단한 답례인사만 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사치스러운 무스탕 옷이 두 장이나 있다. 장농에 걸어놓고 부끄러워서 겨울이 두 번 가고 세 번이 올 때까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걱정만 했었는데, 지금은 날씨에 따라서 골라 입을 수 있도록 두 장이나 된다. 요즘은 짧은 걸 입을까? 긴 걸 입을까? 고민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한 없는 관심을 쏟으시는 큰언니께도 감사하고, 나를 그렇게까지 신뢰하여주신 그 형님께도 감사가 절로 나온다.

 

오늘이 동장군의 기세가 제일 세다는 대한이다. 한 겨울에 두 분 덕택으로 따뜻하고 부티나는 겨울을 살고 맛들일 수 있게 해 주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얼마 전에는 나도 나눌 것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주신 겨울 코트가 있었는데 코트를 불에 태워 못 입게 되신 분께 골라서 마음에 드는 것을 가지라고 했다. 그분은 코트를 골라 들었고, 너무 잘 어울렸으며, 만족해 했다. 나눔이 서로에게 기쁨이 되었던 것이다.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는 선뜻 "헌 옷인데 입으시겠습니까?" 라고 권하지 못 한다. "죄송합니다."

 

ㅡ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따르려 이 몸이 대령했나이다. 시편39. 화답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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