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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49) 아들의 책상 위에 놓인 술 한 병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22 조회수1,12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5년1월22일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성 빈첸시오 부제 순교자 기념 ㅡ히브리서9,2-3.11-14; 마르코3,20-21ㅡ

 

                     아들의 책상 위에 놓인 술 한 병

                                                       이순의

 

 

얼마 전에 친정가족들이 모였다. 이 모임은 상당히 오래 전에 예약되었다가 무기한 연기 되어버린 모임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보다 1년 전에 있었던 가족모임에서 다음 1년 후의 가족 모임이 예약 되었다. 가족모임이라는 것은 뿔뿔히 흩어져 사는 일가 친척들을 모이도록 한다. 오랜 반가움과 어린시절의 정서를 불러주고 그 향수들이 말하지 않아도 정다울 수 있기 때문에 늘 신선하고 좋은 마음이다.

 

그런데 예약된 가족모임은 대통령 선거 때문에 취소되었다고 들었다. 순수 우리 가족만의 모임이었지만 외부의 눈이 어떨지 모를 뿐만 아니라 누군가 사진이라도 찍어서 올린다면 그 사진의 인물이 우리 가족이라고 증명하기도 전에 여론은 확장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 가족이라고 외쳐보아야 대중이 그걸 받아들인다는 것은 보장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보다 1년 전에 예약을 해 둔 가족모임이지만 누가 보아도 선거를 겨냥한 활동이라고 볼 것이 빤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무기한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가족모임이 열렸다. <올 해는 선거가 가장 없는 해 여서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라고 신문기사는 알리고 있었다. 친정가족의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나는 선거가 없어서 가족모임을 하시나? 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었지만 어찌되었든지 장성한 아들녀석을 동행하기로 했다. 너무나 빈한한 친가쪽만 보다가 그래도 외가에 가면 삶의 규모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시킬 수 있어서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증조할아버지로 부터 뻗어 온 친가만 모였는데도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다복이라는 말은 그럴 때 하는 것 같았다. 그 중에는 나라님을 보필하시는 분도 계시고...... 아마도 그분은 대통령께서 대통령을 하시지 않고 다른분께서 대통령을 하셨다고 하더라도 나라님을 보필하는데 최선을 다 하셨을 것이다. 1년 전에 예약된 가족모임을 선거 때문에 취소했을 만큼 충실하시고자 했기 때문이다. 나는 감히 가족들의 대열에서 말을 올릴 위치는 아니나.....

 

내가 어렵다고 해서 가족들께 누가 되지는 말자! 는 신념을 가지고 산다. 나 같은 무지랭이 인생이야 세 끼 밥 굶지 않으면 되지만, 문중의 중추이며 가문의 영광이신 오빠들과 형부들께서 항상 무탈하시기를 기원할 뿐이다. 내가 오빠들과 언니들을 찾지 않고 살아가지만 그 울타리가 주는 마음의 힘이란 말로 부족하지 않겠는가?! 다만 정치라는 그늘에서 희생되는 공직은 살지 않으시기를 항상 기도드린다. 오빠들과 형부들을 위해 항상 기도 드릴 뿐이다. 

 

아들과 내가 도착했을 때는 조금 늦어서 들어 갔다. 왕큰어머니의 팔순을 기념하느라고 인사가 진행중이었고, 생존해 계시는 셋째 큰아버지와 나의 친정어머니께서 나란히 앉아 계셨으며, 큰어머니의 동기간들도 자리하고 계셨다. 바라만 보아도 대단히 자랑스러운 가족모임이었다. 맨날 쩔어서 사노라고만 급급한 인생이 친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면 모든 근심과 빈곤이 사라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만찬을 즐기느라고 바쁘고,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인사를 나누느라고 바쁜데...

 

우리 아들이 촌스런 행동을 하고 말았다. 식탁 위의 술 한 병을 가져오더니 그걸 빨랑 가방에 담으라는 것이다. 당혹스러워서 집에 갈 때 사주겠다고, 이런데 오면 그러면 안된다고 했지만 막무가네로 그 술 한 병을 가지고 가자는 것이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사촌언니들이 그러라고 그러라고 했지만 순간적으로 얼마나 품위가 원가하락을 하던지 몸둘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급기야 아들의 얼굴도 홍당무가 되어서 포기 할 줄 알았더니 

 

"엄마 이 술은 아무데서나 파는 술이 아니야.

 그러니까 꼭 아빠한테 갖다드려야 해요.

 아빠는 이런 술 못 먹어봤잖아요."

분위기가 우리 모자에게 집중되는 것이 너무 곤란해서 얼른 가방에 담고 관심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나중에 아들녀석이 내 귀에다 대고 그 술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고향에서 나는 고향의 특산품을 주문한 술이라는 것이다. 나는 건성으로 보았는데! 나는 술에 관심도 없었는데! 아들은 그 술의 모든 것을 읽어보고 참석하지 않은 아빠를 생각한 것이다. 그 가족중에 누구의 아들이 아빠를 생각하며 그 술 한 병을 가방에 담으려 하겠는가? 이모님들이 빙 둘러 앉은 테이블까지 엄마를 찾아와 얼굴이 붉어지는 부끄러움을 포기하지 않고 그 술 한 병에 마음을 걸겠는가?

 

식사를 하다가 말고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가난해서 아들놈의 마음을 너무 빈한하게 키운 것은 아닌지 몰라서 가슴이 미어지고 있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자꾸 슬퍼지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어둠이 짙어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그 술병은 아들의 책상 한 가운데 놓여졌다. 그리고 아빠를 기다렸다. 늘씬하고 세련된 외모의 술병도 아빠를 기다렸고, 가슴으로 뿌듯한 아들도 아빠를 기다렸다.

 

그리고 몇 일 후에 짝궁이 돌아왔다. 아들은 엄마에게 좁은 살림살이 구석에 싸둔 와인잔을 기어이 꺼내라고 명령을 했다. 드디어 먼지낀 상자가 나오고 클레오파트라의 유방을 닮은 허리 잘록하고 매혹적인 술잔이 나왔다. 맑은 물에 세척을 해서 물기를 닦고 셋이 앉아 잔을 앞에 놓았다. 아들이 아빠에게, 아빠가 아들에게, 남편이 각시에게 검붉은 색의 술을 잔에 따랐다. 그리고

"위하여!" 

"우리 아들의 고3을 위하여!"

"가족모임의 번창을 위하여!"

 

짝궁이 먼저 덕담을 했다.

"아들! 고맙네. 아빠를 생각해 줘서."

아들이 답을 했다.

"아빠! 이 술은 고향에서만 나는 술이래요."

각시도 한마디!

"하느님! Thankyou!"

 

ㅡ환호소리 높은 중에 하느님께서 오르시도다. 나팔 소리 나는 중에 주님 올라가시도다. 시편46. 화답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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