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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50) 타락이 준 교훈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23 조회수88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1월23일 연중 제3주일 (이민의 날) ㅡ이사야8,23ㄴ-9,3;고린도1서1,10-13.17;마태오4,12-23ㅡ

 

                타락이 준 교훈

                                  이순의

 

 

형제가 여럿이 있다는 것은 아웅다웅 하다가도 서로가 기대어 힘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갈 수록 깊어지는 것 같다. 그냥 마음으로 소중하고, 그냥 마음으로 든든한 것이 혈육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벗들을 만나고 이별하며 또 만나기를 반복하는가?! 초등하교 시절에 친했던 친구들의 소식은 고향사람들을 만나야 한참은 지나버린 안부를 바람결에라도 들을 수 있다.

 

중학교때 단짝이었던 인숙이랑 정희는 또 어떻게 사는지 알 길이 없다. 인숙이는 양동시장에서 <두발로 신발>이라는 간판을 달고 신발집을 한다고 들었던 적이 20년 전이었고, 정희는 어머니가 계모였다는 사실을 그렇게 단짝이었던 단발머리 때도 몰랐는데 어른이 되어서야 우연히 만난 다른친구를 통해서 알았을 때는 허탈하기 까지 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수 없이 많은 친구와 정담을 나누었고, 또 멀어졌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과 한 집에 살고 멀어지기를 반복했는가?!

 

사노라고 바쁜 인생은 멀어진 사람들을 일부러 찾아 나선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그냥 가끔 기억이 날 때면 이 땅의 어디에서 산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때로는 너무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해버린 안타까운 소식도 바람을 타고 내 귀에 까지 흘러든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고, 나 또한 누군가의 귀에 그렇게 바람이 되어 흘러들 것이다. 그러나 혈육은 바람이 아니었다. 때가 되면 집착을 하여서 찾고, 때가 되면 의도적으로 멀리도 하지만, 혈육은 바람결의 소식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라보면서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며 다독여주고 격려하는 것이 혈육이었다. 나의 큰언니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이며 맏딸이다. 그래서 두루두루 마음 쓸 곳이 많은 사람이며, 고루고루 정성을 쏟아야하는 곳이 많은 심성을 가지신 분이다. 반면에 큰형부는 요즘말로 간큰 남자다. 항상 형부의 사정거리 안에 언니가 있지 않으면 안되는 분이시다. 뿐만 아니라 마누라가 고분고분도 해야한다. 

 

그러니 세다 못해 독재력이 만만치 않으신 형부랑 살려면 큰언니가 <나는 죽은 사람입니다.> 하고 사는 것이 옳았었고, 실제로 큰언니는 그렇게 살고있다. 그런데 나이가 벼슬이라던가? 형부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는 큰언니가 나이가 들었다고 동생들 앞에서는 간혹 불평을 하신다. <내가 이 나이 먹어서도......> 히히히히! 그래도 가족들이 볼 적에는 너무 잘 어울려서 잘 산다. 그런 큰언니의 불평에 브레이크를 달은 사람이 등장을 했다.

 

성실도의 만점인생 큰언니에게 성실도의 빵점인생 작은 오빠가 할 말이 있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성실도의 만점인생이 성실도의 빵점인생에게 훈화 할 것이 많을 것 같았지만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이른 나이에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병마와 싸우고 있는 불쌍한 인생이 지금도 모범생인 큰누나에게 훈화를 늘어 놓았다.

 

<누나. 내가 매형처럼 안사람을 단속하는 일에 충실 했다면 지금 나는 모든 것을 가졌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못 했습니다. 안사람은 그냥 언제나 제 자리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따로 내가 간섭하지 않아도 어머니 처럼 누나들 처럼 그 자리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안사람을 단속하려고 노력해보지 않았습니다. 밖으로만 밖으로만 돌아다니면서도 안 사람을 단속해야 할 줄을 몰랐습니다.

 

매형처럼 모든 것을 안사람에게 의존하고, 안되면 혼내고, 없으면 벌어다가 쥐어 줄줄 알고, 돌아다니면 간섭하고, 즐거움은 같이 나누고, 걱정은 덜어주며, 작은 것이 행복이라고..... 그리했더라면 내 가정이 부서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내것을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렇게 큰 댓가를 치르게 되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습니다. 매형이 누나만 간섭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매형자신을 너무나 잘 지키며 살으신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제가 안사람을 간섭하지 못 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간섭하지 못 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여자 한 사람에게 나를 가두며 정착하는 길이 내 모든 것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정말로 알지 못했습니다. 가정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가정은 내가 가정안에 갖히려고 하지 않으면 가정이 나를 버린다는 것을 진짜로 몰랐습니다. 가정은 내 스스로 그 안에 소속되려고 노력할 때만이, 그 가정을 가꾸려고 열심히 최선을 다 할 때만이, 가정도 최선을 다해 나를 담아주는 그릇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누나는 매형이 죽으라고 하면 죽으면서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으세요. 매형이 나처럼 다른 사람이나 간섭하고 다니면서 누나가 어떻게 살든지 꾸리든지 간섭이 없다면 누나의 인생이 자유롭고 행복 할 것 같아요? 그것은 가정이라는 성을 스스로 허물어버리는 파괴행위였습니다. 매형이 누나 한 사람을 간섭할 줄 알았기 때문에 누나네 가정에 행복이 보장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으세요.

 

지금 내가 다 커버린 자식들을 간섭한다고 아이들이 나를 찾아오겠습니까? 내 말을 듣겠습니까? 가정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쉬지 않고 함께 역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쉬지 않고 가꾸며 그들에게 필요한 가장의 자리를 지켰을 때 제 자리가 보장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누나! 매형한테 누나만 간섭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살으세요.>

 

남이었다면 손가락질이나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하고 누나였기에 행복의 지수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작은 오빠가 큰언니에게 들려 준 이야기들을 전해들으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자기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큰언니는 큰언니 대로 학자인 남편의 곧은 성정이 힘들다 하고, 작은 언니는 작은언니 대로 낭만에 초를 치시는 작은형부 때문에 힘들다 하고, 나는 나 대로 진흙탕 인생인 짝궁이 너무 무겁다고 불평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 자매는 가정을 지키며 살고있다. 그것이 작은 오빠의 말 처럼 여자 한 사람만 간섭하고 모든 것을 보장 받을 줄 아는 남편들의 현명한 선택 때문일까? 어쨌든 작은 오빠의 <타락이 준 교훈>은 다시 한 번 내가 몸 담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생각하게 했고, 혈육이라는 정이 서로에게 허심탄회한 나눔이 되어서 감사할 수 있었다. 그렇다. 혈육의 정은 바람결에 들렸다 가는 소식이 아니었다.

 

작은 오빠야! 엄마의 소원 알제?! 작은 오빠가 엄마 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아야 한다는 것! 엄마 앞에서만 쓰러지지 말고 하루만이라도 엄마보다는 나중이어야 한다고 맨날 엄마가 그렇게 빌잖어?! 너무 불쌍해서 뭐라고 해 줄 말은 없지만 엄마보다는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하는 것이 분명해. 그러니까 힘내고 용기도 내기를 바래. 엄마한테 너무 불효만 했으니까 그거라도 엄마한테 꼭 효도하기를 바래. 후회만 하다가 고독이 사무칠 작은 오빠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빌께! 건강조심해야혀! 불쌍한 작은 오빠야!

 

ㅡ이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 하고 말씀 하셨다. 마태오4,17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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