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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선택과 편애!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24 조회수1,414 추천수9 반대(0) 신고

 

 

 

 

송봉모 토마스 신부님 <야뽁강을 넘어서> 中에서


 

야훼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태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두 부족으로 갈라졌는데,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억누를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창세기 25,23>

 

 

하느님이 리브가에게 들려준 신탁 내용을 보노라면 운명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민족의 운명이 하느님에 의해서 이미 영원으로부터 결정되어 버린다면 그 민족은 도대체 무슨 노력을 할 수 있겠는가? 인간 개개인의 구원과 멸망이 하느님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었다면 그 인간이 무슨 노력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어려움을 풀기라도 하듯 한 유다 랍비는 야곱이 본시 에사오의 형이라 주장하는데 그 논리는 이러하다. 가방 안에 두 개의 물건을 넣는다면 먼저 들어간 물건이 나중에 꺼내지기 마련이다. 마찬가지 원리에서 야곱은 에사오보다 먼저 엄마 자궁 안에서 임신되었기에 나중에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다.

 

 

정태현 신부는 하느님의 선택을 예정론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힘써 강조한다. 예정론이란 인간 개개인의 구원과 멸망이 하느님에 의해서 이미 영원으로부터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과 세상을 돌보시는 하느님이 처음부터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할 사람을 구분지을 리 없다. 하느님의 선택은 근본적으로 인간 구원을 목표로 한다.

 

 

그 선택은 어느 하나는 생명의 길로 인도하고, 다른 하나는 멸망의 길로 이끄는 식이 아니다. 하느님이 야곱을 선택했다 해서 에사오를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야곱을 돌보듯이 에사오도 돌보신다. 야곱처럼 에사오도 하느님께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고 한 민족의 창시자가 된다. 같은 논리가 이사악과 이스마엘 사이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선택받지 못한 이스마엘도 선택받은 이사악처럼 한 민족의 창시자가 된다. 하느님의 자비는 한계가 없고 구원 의지는 보편적이기에 선택 여부에 관계없이 축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예정론에 따르면 멸망할 자로 선정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받을 수 없는 반면, 구원받을 자로 선정된 사람은 아무리 못되게 살아도 구원받는다는 논리이다.

 

 

하느님이 어느 사람을 선택하시는 것은 배타적으로 그 사람만을 축복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선택은 편애와 다르다. 예수께서 여러 제자들 중에서 열둘을 선택한 것은 열둘을 편애해서가 아니며, 베드로를 수제자로 삼은 것 역시 베드로를 편애해서가 아니다. 선택과 편애는 다르다.

 

 

"하느님의 선택은 인간 역사 안에서 당신의 구원 계획을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알리기 위하여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하나의 표본으로 뽑는 것이다." 하느님이 누군가를 선택하면 그 선택된 자는 구원의 도구가 되듯이, 하느님이 야곱을 선택하신 것은 그를 구원의 도구로 삼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신 이유가 야곱의 도덕성이나 인품과는 아무 관계없음을 분명히 한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사악과의 사이에서 한번에 두 아들을 잉태했을 떄... 아들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따라서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느님께서는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로마서 9,10-12>

 

        † 찬미 예수님,

 

 

주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선하게 살라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선한 의지보다는 악한 의지를 남용해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기아, 환경 파괴, 빈부 격차등의 비참한 결과들에 대해 저는 가끔씩 주님은 불공평하다, 주님은 편애하신다 생각한 적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도 서울역 노숙자 사망과 관련해 노숙자들과 경찰들의 몸싸움을 지켜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 하느님께서는 선택의 원리에 의해 사람을 불러주시고 당신의 계획을 이루신다는 말씀인데(로마서 9, 10-18), 머리로는 이 말씀이 이해가 되지만 생활안에서 그리고 신앙생활안에서 불공평한(?) 모습들을 보면 주님은 사람을 차별하시나? 혹은 편애하시나? 그런 생각들이 자주 들고 주님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야곱처럼 약점과 결함, 그리고 상처가 많은 사람들마저 모두 하느님의 심오한 구원계획안에 불리우져 구원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묵상하며 제 자신의부족한 면들마저 선하게 사용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돌려주어야 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심오한 선택의 원리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분들이 구원의 도구로 잘 사용되어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도록 각자가 속한 공동체에서 서로 좋은 작용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서 8, 28 새번역 성서>

 

 

"하느님의 선택은 편애와 다르다! 하느님은 결코 편애하시거나 차별하시지 않는다!" 가끔씩 주님께 뾰루퉁해지고 툴~툴 거리는 제가 오늘은 꼭 이 말씀안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습니다.^^

 

 

밝고 건강한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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