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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52) 서울에 오신 어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25 조회수86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1월25일 화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 ㅡ사도행전22,3-16<또는 9,1-22>;마르코16,15-18ㅡ

 

             서울에 오신 어런

                              이순의

 

 

섬마을의 겨울은 완전한 휴면이다. 뱃길이 멀어서 겨울의 특수 농작물도 가꾸지 않는 허허벌판의 잿빛은 타고 남은 숯가루다. 그런 겨울이 없다면 농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섬마을의 겨울은 동면 그 자체이다. 집집마다 문고리에 형식적인 작은 쇠통하나 걸어 놓고 대처로 나간다. 싸고 담아서 자식들에게로 간다. 겨울 한 철은 며느리나 딸이 해 주는 밥에 따수운 국물이라도 대접을 받고 오실요량이다.

 

그래서 섬마을은 더욱 고적한 동면에 들고 만다. 그런데 어런이 서울에 오셨다는 전화가 왔다. 섬마을에서는 혼인을 하신 모든 남자를 어런(=어른)이라고 호칭을 부른다. 아저씨나 아재는 없다. 무조건 늙으나 젊으나 결혼한 사내는 무조건 <어런>이다. 내가 생면부지의 섬마을에 짝궁을 따라서 들어 갔을 때는 마음적으로 짝궁을 도와주시는 어런이 계셨다.

 

섬의 지형이며, 섬사람들의 기질이라든지, 기후에서 삶의 방식 등! 같은 말을 쓰는 이 나라 이 백성이 사는 땅인데 무엇이 그렇게도 다른게 많은지 모른다. 좁은 시골에서 어지간히 예의를 갖추지 않으며 서울 것들이 버릇이 없다고 할 것이고, 너무 싹싹거리면 요사스럽다고 할 것이고...... 어느 날은 이 아짐이 오셔서 저 아짐 흉을 보았는데 알고보니 둘은 친척 간이여서 말을 옮겼더라면 큰 사단이 날뻔한게 간이 떨린적도 있었고!

 

그런 모든 어려움을 뒤에서 다독여주신 분이 계셔서 우리 가족이 섬 생활을 잘 할 수 있었다. 벌써 12년이나 된 인연이다. 같은 교우이시고 심성이 곧으시며 고집이 황소이신 분이시다. 농사가 본업이며 성실하게 농사만 지어서 당신들이야 크게 쓸 것도 누릴 것도 없이 자식들에게 나누어주시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시다. 역시 겨울만 쉬시는 농부이시며, 겨울에만 서울에 오시는 아버지이시다.

 

십여년의 세월동안 우리부부와 전혀 고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내가 섬을 떠나올 무렵에 친정부치 실어증 일꾼을 어느 집에 맡겨놓고 와야만했다.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멀쩡한 사람을 바보취급을 한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고 간섭해 줄 교우집에 아저씨를 맡겨놓고 왔는데 그 일꾼을 주지 않았다고 강자를 부리신 것이다. 십자가도 부수고, 성모상도 부수고, 공소에는 발도 못 딛게 하고.....

 

그때 내가 한 마음고생은 이루 다 형언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나 한사람 믿고 사는 아저씨를 내가 없는 섬마을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농사도 짓고, 공장일도 있으며, 남의 일을 가지 않고도 한 집에만 머물 수 있는 집에 책임을 지워서 맡긴 것이었다. 마을의 아짐들은 내가 섬에 들릴 때마다 그 어런의 소식을 전했다. 시골이라는데가 워낙에 험한 사건이 없다보니 그 일이 두고두고 말이 되었다.

 

"너 때문에 원두 어런이 십자가를 다 뿌서부렀단다."

"너 때문에 죄 없는 성모상이 박살이 나부렀씨야"
"너 때문에 원두 아짐이 공소예절에도 못 나온단다."

"너 한테 허는 악담이 말로 다 앵길 수가 없이야."

"너는 그런소리 듣고도 가만히 있고 싶으냐?"

내가 섬에만 가면 물꼬를 튼 도랑 마냥 섬 마을의 아짐들이 입술에 바퀴를 달고 있었다. 그래도 나의 마음은 한결이었고, 대답도 하나였다.

 

"아짐! 그 어런이 역정이 나신 것은 당연하제라 잉. 생각을 해 보씨요. 농촌에 일손이 이렇게 딸리는디 일꾼을 다른데 줬으니 배신감이 안들면 어런이 아니제라 잉. 그래도 내 마음은 지금도 그 전에도 앞으로도 섬에 오면 그 어런이 큰 집이고 큰 시숙님인께 나 한테 그런 험담허지 말으시요. 그 어런이 나 한테 섭섭한 것은 당연하요. 그것을 알면서도 아저씨를 다른데 맡긴 이유는 말 안하는 아저씨를 다른 집에 품앗이 일을 보내기 때문이었소. 어른네 일 만 하믄 백번이라도 어런 한테 맡겼을 것인디, 어런은 말 안하는 아저씨를 다른 집에 품앗이 일을 보낸단 말이요. 그래서 어런 한테 아저씨를 맡기지 않은 이유를 어런도 다 알고 있소. 그랑께 나 한테는 큰 집이고, 큰 시숙님인께 그 어런 욕은 하지 말으시요. 듣기 싫으요. 나는 죽을 때 까지 그 어런이 내 큰 시숙님이라고 맹세 했으니께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시숙님 욕되는 소리는 듣기 싫으요. 그만들 허씨요. 잉!"

 

곧은 내 말이 매번 또 바퀴를 달고 그 어런의 귀에 들어 갔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어런의 마음도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맡겨두었던 집에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말을 하지 않는 아저씨는 그 집을 거부했고, 임금이 계산 되어서 통장에 들어 온 뒤로는 그 집에를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어런네 집에만 다녔다. 지금은 짝궁을 따라서 산에서 봄 여름 가을을 살고, 겨울만 섬에서 지내는 아저씨가 찾아가는 곳은 그 어런 집이다. 

 

아주 어려서 엿장수인 절름발이 아버지를 따라서 우리집에 엿을 팔러 들렸다가 밥만 먹여주라고 떨구고 간 엿장수 아들이 아저씨다. 꼬마머슴부터 살았으니 집도 사고,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성실하고 알찐 총각이였다. 그런데 장가를 잘 못 들어서 소년 머슴부터 벌어 놓은 모든 것을 탕진하고 실어증 걸려서 산신령 처럼 되어서 무의식으로 굴러 온 곳이 다시 친정 집이었다. 어머니는 거절 하지 않았고 받아 들였다. 다시 사람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약간의 돈이 모아지자 마누라의 권위로 아저씨를 데려갔고 어머니는 "내가 이제 늙고 가세가 기울고 있으니 너를 다시는 받아 줄 수가 없다." 라고 아저씨를 놓아 주었다. 그 여자는 아저씨를 또 버렸고, 아저씨는 산신령처럼 마을 밖의 움막에서 살았다. 내가 섬에를 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아저씨를 모셔왔을 때는 수염이 어찌나 길고 살빛이 말라서 없던지 우리 아들이 귀신이라고 도망을 다녔다. 거기다가 기침은 또 왜 그렇게 하든지.......

 

영양실조라고 판단 된 짝궁이 돼지고기를 사다가 계속 먹게 했다. 구워주고, 삶아주고, 찌게도 해 주고..... 지금은 기침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임금으로 꼬박꼬박 모아드린 돈이 많아져서 얼마 전에는 내가 아저씨께 약간의 돈을 빌려서 썼다. 아저씨는 내 말만 듣는다. 세상에서 나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신뢰하는 충신 같은 사람이다. 얼마 전에는 아저씨의 그 미친 마누라가 나를 따라서 갔다면 분명히 돈을 모았으리라는 돈 냄새를 맡고 고향마을에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누구네 막내딸이 우리 누구 아부지를 새우잡이 배에 팔아먹었어라우."

고향마을에서 그 여자의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저씨는 더운물 나오는 집을 독채로 차지하고 산다. 섬 집은 방이 여섯개다. 그 여자는 남편을 세 번 버렸고, 아저씨는 아저씨 일생에 가장 좋은 집에서 살고 있다. 하늘이 아저씨의 운명을 그냥 거두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를 다시 만나서 나를 따라서 살고 있다. 그것이 아저씨와 우리 친정의 인연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늙으셔서 다시는 너를 거두지 못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내가 아저씨를 거두고 있다. 아저씨가 말을 하지 않아도 어린시절에 지게의 바작에 태우고 다녔던 나를 따라서 산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갔습니다. 히~!>

어런이 서울에 오신 이유가 형님께서 척추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농촌의 이농현상은 고령의 농부들을 혹사 시키면서 대지를 일군다. 그 골병의 댓가는 겨울 한 철의 고통으로 보상한다. 그래도 농군은 천대 받고, 농산물은 제 값을 못 받는다.

 

내일은 우리 내외가 나들이를 해야 한다. 큰 시숙님께서 서울에 오셨으니 가 뵈어야 하고, 큰 형님께서 수술을 하신다고 하시니 꼭 가 뵈어야 한다. 섬 마을에 큰시숙님 내외가 계시지 않는다면 그 섬마을이 우리 내외에게 얼마나 적적할 지를 생각해 보았다. 사람이 떠돌더라도 다 역어지는 인연을 따라서 산다. 하늘은 세상의 단 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신다. 나쁜 사람은 교훈을 주고, 좋은 사람은 언덕이 되어 서로서로 연을 맺으며 살게 인도 하신다.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이다. 박해자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 사울 자신도 개종을 하게 될 줄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한 치 앞도 내 뜻이 없다. 불과 10여년의 일이지만 이렇듯이 아저씨를 살리기도 하고, 어런을 만나기도 하며, 새로운 인연들을 역고 있다. 또 내일 나의 모습을 나는 알지 못 한다. 그래도 주님을 믿을 뿐이다. 주님을 믿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걱정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아저씨도 늙어지시니 모아드린 돈을 합하여 노후를 편케 해 드려야 하고, 늙으신 어머니를 편케 해 드려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고, 자식이 진로 변경을 했으니 걱정이 많고, 이사를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고 걱정이 걱정을 하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맺음과 끊음이 모두 주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나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복잡한 인연의 사슬을 따를 수 있겠는가? 주님의 지휘봉에 열성분자가 된 성 바오로의 지혜를 구하고 싶은 날이다.

 

"형님! 꼭 건강해 지셔서 섬으로 돌아갑시다. 형님이 안 계시면 이 동상은 섬 집에 가기 싫을 것이요. 잉! 꼭 건강해 지씨요. 잉! 어런! 어런이 계시지 않는 섬은 생각도 하기 싫으요. 내외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서 그 터를 지켜야제라. 잉! 봄이 오시면 논 가운데에 어런이 계셔야 그 너른 들녁이 꽉 찰 것이 아니요?! 잉?"

 

ㅡ"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 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 마르코16,15-16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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