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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53) 말 안하는 아저씨가 말 하던 날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26 조회수1,164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5년1월26일 수요일 성 디모테오와 성 디도 주교 기념일 ㅡ디모테오2서1,1-8;루가10,1-9ㅡ

 

          말 안하는 아저씨가 말 하던 날

                                                 이순의

 

 

내가 섬에서 살을적 겨울 어느 날에 아저씨가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가끔 아저씨와 둘이 앉아 심각하게 면담을 한다. 아저씨가 말을 하시지 않은지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하고, 말을 하시면 답답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 간혹은 의도적으로 면담을 한다. 멀쩡한 사람도 10년 동안 말을 하지 않으면 성대가 굳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저씨! 목에서 소리가 나는지 안나는지는 아저씨만 알지요?"

".........."

멀뚱하게 바라보고만 앉아 계신다.

"아저씨가 변소에 앉아서든지 들녁에 서서든지 혼자는 소리를 해 보실 것이 아니요?

아저씨께서 너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서 목구멍이 굳었으면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합디다.

그러니까 소리가 나는지 아니 나는지를 말 해 보세요."

수술이라는 말에 눈이 둥그렇게 변하신 아저씨가 역시 말은 하지 않고 고래를 절래절래 저어서 그렇지 않다고 표현을 하셨다.

 

"그럼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혼자서는 소리가 난다는 말이지요?"

또 고개만 끄덕이신다.

"아저씨 혼자서는 유행가 노래도 부를 수 있것네요? 히~!"

웃더니 일어나서 자리를 떠 버리셨다.

 

그렇게도 말을 하시기가 싫으신 아저씨가 20여년 동안 딱 두 번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중에 한 번이 내가 섬에서 함께 살을 때의 일이다. 농사를 지으러 섬에를 갔는데 일확천금을 눈 앞에 두고 장마도 아닌 가을비에 새벽 짧은 시간에 150미리의 폭우가 쏟아져 잠기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다. 하늘의 뜻은 때 아닌 가을폭우로 우리 내외가 부자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짝궁은 떠났고 나와 내 아들과 아저씨 셋이서 섬마을에 남아야 했다.

 

별다르게 할 일이 없었던 우리에게 원두 어런이 아저씨를 보내주시라고 했고 아저씨는 어런을 따라 일을 다니며 푼돈을 벌어 오셨다. 작지만 꼬박꼬박 모아 저축을 해 드렸다. 그런데 농촌의 겨울에는 일이 없었다. 어런이 아저씨랑 같이 노느니 샘이라도 판다고 기계를 들여오셨다.(예전의 섬마을은 물이 귀했다고 한다.) 경운기에 몇가지를 장착하여 샘을 파느라고 겨울 한 철을 놀지 않고 바빴다. 아침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신 아저씨는 저녁에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을 했다.

 

말을 하시지 않는 아저씨를 잘도 구슬러 부리시는 어런을 믿고 보내드린 것이다. 그렇게 일이라도 가시면 술이라도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고, 농담도 들을 수 있고, 정상인 사람만큼은 못 받아도 약간의 돈도 모아드릴 수 있어서 어런네 집으로 보내곤 했다. 그런데 추운 겨울 어느 날 저녁에 오토바이 소리가 한 대만 들려야 하는데 겹쳐서 부릉부릉 소리가 났다. 어런이 함께 오신 날은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날이었다.

 

아저씨가 고집을 부리고 말썽이 났거나, 아니면 일 하다가 남의 일을 그르쳐서 망가뜨렸거나, 말을 안하시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나는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야한다. 급하게 "비켜" 라든지, "조심해" 라든지, 기계를 "멈춰"라든지, 이런 말을 해 주지 않기 때문에 그르치는 말썽도 비일비재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건비도 정상인 만큼을 요구 할 수가 없었다. 그 날 밤에도 오토바이 소리가 두 대여서 얼른 미닫이 마루문을 열고 마루에 서서 어른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데 아저씨의 손가락 하나가 붕데로 감아져 있는데 어런의 표정은 입술이 귀에 걸려 있을 만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분명히 아저씨가 다친 것 같은데 웃음이 함박이라니 구색이 잘 맞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객지에서 흘러들어와서 사는 사람이므로 쉽게 먼저 말을 건네지 않는 것이 내 신조가 되었다. 섬마을에서 살려면 내가 먼저 무슨 말을 하기보다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먼저 들어 두어야 흉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런은 아저씨를 두고 돌아가시지 않고 마루에 올라서 안으로 들었다.

 

"재수씨. 오늘 뭔 일이 있었는지 알으시요? 오늘 나는 겁나게 기분이 좋소.야!"

그래도 나는 아저씨와 어런을 번 갈아 볼 뿐 차를 끓이느라고 분주했다.

"재수씨. 오늘 ##이가 말을 했어라우.

 하하하하하하하!

 ##이가 말 한 소리 재수씨는 한 번도 못 들어 봤지라우?!

 그란디 나는 오늘 들었어라우."

차를 마시겠다고 나란히 앉아 있던 아저씨도 소리없이 삐긋이 웃고 계셨다.

 

언젠가 큰언니가 오랜 외국생활을 접고 귀국 했을 때 아저씨가 말을 했다고 한다. 어려서 부터 함께 자란 한 살 터울의 큰언니라서 너무 반가웠는지 큰형부의 공부가 끝나고 돌아왔을 때 아저씨는 큰언니의 뒤에서 "@@야! 왔냐?" 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말을 하지 않은지 몇 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큰언니가 돌아서서 보았더니 아저씨였다. 단아한 성품의 큰언니가 "어? 말을 안한다더니 말만 잘 하네. 잘 살았어? 말도 하고 그래야지 말 안하고 그러면 안되지. 그래도 않던 말을 해야 할 만큼 내가 반가웠든가 보네. 고마워. 반가워 해 주어서." 라고 답례를 했다고 한다.

 

그 후로 아저씨의 말을 들었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손가락 하나에 붕대를 감고 앉은 아저씨 앞에서 어런의 기분이 최상급이었다. 그날의 이야기는 이렇다. 샘 파는 기계는 경운기를 이용해서 쇠 파이프를 땅 속에 박아야 한다. 쇠 파이프 하나가 다 들어 가고 나면 다음 파이프를 잽싸게 연결시켜 줘야 한다. 망치질 하는 추가 위로 올라간 순간에 파이프와 파이프를 연결하고, 추가 올라 갈 때마다 연장을 이용해서 서로 맞물려 잠기도록 돌려서 잠궈주어야한다.

 

말을 하시지 않는 아저씨의 집중력이 뛰어나시다보니 그 일이 아저씨가 해야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에 정신을 팔으셨는지? 누군가의 농담에 팔려서 실수를 하셨는지? 그 타임을 지키지 못 해서 추가 내려 오기 전에 손을 떼지 못하신 것이다. 아저씨가 들고 있던 연장에 여지없이 추가 내리쳤고 연장은 튀었으며 아저씨의 손가락 하나에 일격을 가한 것이다. 아픔은 본능이었을까? 아저씨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오매 죽것네~~~." 

 

하하하하하하! 아저씨는 아파서 손가락을 쥐고 앞으로 고꾸라졌는데 어런이랑 샘 파는데서 웅성거리던 농한기의 한가한 농부들이 일시에 부동자세를 취했다고 한다. 어런도 사고라는 판단이 상실되고 ##이가 말을 했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모든 생각들이 정지 되어버렸다고 한다. 아픈 아저씨가 숙였던 몸을 일으켜 세웠을 때는 모두들 배꼽을 단단히 잡고 웃느라고 정신을 놓았다고 한다. 그 웃음을 멈출 수가 없어서 아픈 아저씨는 혼자였다고 한다.

 

기계를 멈추고 진료소에 갔더니 연장에 다쳐서 멍만 들었을 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런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고, 아저씨의 말 소리를 들은 자랑거리를 나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저녁에 차를 드시고 가시면서 손가락이 다쳤으므로 내일 아침에 샘 파러 가기 싫다고 하면 보내지 말라는 당부를 남기시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 하고 가셨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저씨는 샘을 파려고 일찍 어런네 집으로 줄행랑을 치시고 없었다. 거기서 형님이 해 주시는 아침을 어런이랑 같이 먹고 샘을 파러 가셨을 것이다.

 

나하고 집에서 하루종일 있어보아야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말을 안하시니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겠는가? 내가 술을 안마시니 안주를 마련하라고 시키겠는가? 그래도 그곳에 가면 사람 냄새도 있고, 술도 있고, 안주도 있으며, 말은 하지 않아도 들을 말이 많아서 하루 해가 얼마나 정다웠겠는가?! 나는 가끔 망치를 들고 장난을 친다.

"아저씨. 손가락 여기다 대봐요.  때려서 소리가 나나보게. 히히히히히히~"

아저씨는 그냥 소리도 안내고 자지러지게 웃는다.

 

ㅡ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루가10,5-6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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