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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54) 싫어하기 보다 어려운 좋아하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27 조회수1,041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5년1월27일 연중 제3주간 목요일 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 기념 ㅡ히브리서10,19-25;마르코4,21-25ㅡ

 

                     싫어하기 보다 어려운 좋아하기

                                                           이순의

 

 

어제는 문병을 다녀왔다. 농촌 생활이라는 것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노동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겨울이면 그 노동의 댓가는 육신을 수리하는데 여력을 총 동원해야만 한다. 일을 놓으라고, 일을 놓아야 산다고, 일을 놓지 않으면 당신은 죽지도 못하고 누워서 변을 볼 것이다고, 경고에 경고를 해도 눈 앞에 놓인 일을 외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섬 마을의 형님은 첫번째 수술을 하고도 일을 놓지 못 해서 또 두번째 척추 수술을 해야만 했다. 제주감귤 쥬스를 들고 다녀오기는 했지만 마음이 짠한데는 약이 없었다. 몇 번을 형님이 건강해서 육신이라도 어런하고 함께 섬에 계셔야 한다고 당부에 당부를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 애잔한데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이 깊어있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정이 깊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수 없이 많은 인연을 만난다. 그러나 그 인연의 고리를 항구히 유지하는데는 노력이 동원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잠짠 만난 인연이 아니라 10여년을 남과 인연한다는 것은 보통의 인연이 아니며, 또한 자주 만날 수 없는 인연에게 항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몇 년에 한 번 만나도 한결 같은 마음을 고스란히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만나 친하여 진다는 것은 더불어 허물이 깊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기준을 갖추고 그 선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친함과 어긋남의 관계를 결정한다. 사람이란 곧 자기와 맞지 않으면 쉽게 싫어하게 되고, 금방 등을 보여 무관심하므로써 영원한 타인이 되거나 악연이 되어 기억에서 조차 멀어지게 된다. 싫어하기는 참으로 쉬운 것이었다. 내가 살아 오면서 터득한 것은 싫어하기는 참으로 간단한 처분이었다.

 

그런데 싫은 것을 극복하며 누군가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인내력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었고, 자기 자신의 극기를 실험하는 것이었다. 더욱 난관에 봉착하는 것은 상대편의 마음은 그런 나의 사정과 전혀 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그분대로 자기 마음이 쓰이는 대로, 정신이 가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내 자신에게 누군가를 좋아하게 한다는 것은, 그것도 한결 같이 좋아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나는 가끔 수녀님이나 신부님들에 대한 연정으로 속 앓이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상대쪽에서 알아줘서 고민인 사람도 있고, 너무 몰라 줘서 고민인 사람도 있고, 때로는 도에 넘치는 행동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고, 또 때로는 너무 찬서리를 풀풀 날리는 경우도 보았다. 그런데 상대가 신부님이나 수녀님인 경우는 크게 실망을 하기 전에 발령을 가시기 때문에 불이 타 오르다가 닭 쫒던 개 신세가 되어 늘 한 가닥 로맨스로 장식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직이나 수도직이 누리는 쌍방의 특혜일 것이다.

 

그런데 가까이 근접한 인간관계는 그렇지가 않다. 실망을 하게되면 금방 싫어하기로 돌변한다. 그리고 간단하게 자신이 정한 바리케이트를 열지 않으면서 그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싫어하기는 그렇게 편리한 안전장치이다. 반면에 좋아하기는 인간의 굴레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극복하지 않고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관계적 굴레이다. 인간이란 자신의 본성이 지니는 흉허물을 떨구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흉허물인지를 인지하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 흉허물 자체가 그 사람의 기질로 타고난 성품인 것을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고쳐질리는 만무하다. 그런데 세월이, 사연이, 관계가 깊어질 수록 사람의 본성은 더 가까이 발견되는 것이고,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것들과 부대끼기가 싫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기술을 익히게 된다. 그것이 사회성이 뛰어난 능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사람의 사는 모습이 그러하니 싫어하기가 얼마나 쉬우며, 싫은 것을 차단하기는 또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런데 좋아하기 위해서는 싫은 모든 것을 극복한 결과의 승리여야만 한다. 그래서 내가 사귀는 좋은 사람에 대하여는 그 사람의 싫은 것도 좋아해야만 한다고 인식시켜 왔다. 내가 좋아서 좋아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사람 전체의 티끌만큼도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기로 했다면 그 사람이 나를 싫다고 하더라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인정하여야만 했다. 그러므로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곡한 마음을 하루를 넘겨 품어 본 적이 별로 없다. 

 

오랫동안 그것을 훈련해 온 탓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람을 싫어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수 년만에 만난 사람도 금방 본 사람처럼 반가울 수 있는 사람이 나고, 금방 만난 사람도 밋밋할 수도 있는 사람이 나다. 가까우면 얼마나 가깝고, 멀면 얼마나 멀겠는가?! 농사를 짓지 않는 섬마을에서 나는 크게 누구의 신세를 져야 할 만큼 분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섬 사람들은 단순한 사람들이고, 늘 노동에 지쳐있으며, 도시처럼 타인의 눈치를 살펴서 살아야 할 만큼 복잡하지도 않다. 그래서 늘 만남이 솔직하다.

 

사람을 좋아하는 방법! 내가 섬살이에서 배워 온 것이 그것이었다. 적당히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선에서 친절을 유지했다가 그 선을 넘게 되면 적당한 간격으로 냉담해버리는 이기심이 아니었다. 농번기에 도랑의 물을 한 방울이라도 더 자기의 논에 대려고 논둑에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싸운다. 생존의 싸움을 하던 아재 아짐들도 들녁이 풍요해지는 가을이 오시기 전에 정다웁다. 그들에게는 흉허물이 없다. 오늘 나의 허물이 내일은 너의 허물이 되고, 오늘 너의 성정이 내일은 나의 성정이 되어 살아야 하는 그렇고 그런 인생길을 서로 보담을 줄 알았던 것이다.

 

형님의 병문안을 다녀오는데 만감이 교차하였다. 원수가 되어 두 번 다시는 상종을 하지 않으실 것 같았던 어런의 골 깊은 주름을 보며, 농군이 일꾼욕심이 없었다면 그게 농군이겠는가? 라는 위안을 삼았다. 사람이 누군가를 싫어하고 험담하기는 쉬우나 그 사람을 기다리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더구나 좋아해야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거는 커다란 마술 같은 것이다. 그것이 살아오면서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싫어하기 보다 좋아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당신은 왜 이렇게 했습니까?"

"당신은 왜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ㅡ또 말씀 하셨다. "내 말을 마음에 새겨들어라. 너희가 남에게 달아 주면 달아 주는 만큼 받을 뿐만 아니라 덤까지 얹어 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ㄱ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 마져 빼앗길 것이다." 마르코4,21-25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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