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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56) 밥상교육 때문에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28 조회수971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5년1월28일 금요일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사제 학자 기념일 ㅡ히브리서10,32-39;마르코4,26-34ㅡ

 

             밥상교육 때문에

                                이순의

 

 

1년 중에 짝궁이 집에서 정답게 식사를 하는 날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래서 어떻게 든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은 쪽은 아녀자이며, 가정의 마님인 나의 간절함일 것이다. 사내들이란 여자들 처럼 도란거릴 줄을 몰라서 금방 좋다가도 또 돌아서면 툴툴 대는 기질을 갖고 태어나는 것 같다. 그럴때는 아들에게 가서 아빠가 집에 몇 일도 머물지 않으시니까 좀 곰살스럽게 굴으라고 코치를 하고, 어떨때는 짝궁에게 가서 당신이 아빠인데 아빠가 자식을 다독이지 않으면 세상천지에 누가 당신자식을 다독이느냐고 쑤석거린다.

 

나의 노력덕택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생겼는지 잘 지내고 있었다. 권투도 했다가, 레스링도 했다가, 씨름도 했다가, 소싸움도 했다가, 한 겨울이 잘 가고 있었다. 너무 잘 지내서 평온에 질투가 났을까? 사건이 발생을 했다. 그리고 아빠가 아빠보다 큰 아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하는 엄청난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솔직히 자식이 아빠만큼 커지면 보고있는 어미의 마음은 졸아지다 못해 다 타버리게 된다. 자식이 몽둥이를 든 아빠에게 맞아주면 다행이지만 아빠보다도 더 크고, 몸무게도 더 나가고, 기운도 쎈 아들이 거부할 때는 상황 예측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벌벌벌 떨린다.

 

사건은 그렇다.

짝궁이랑 외출을 하고 돌아오던 골목에서 생선을 파는 단골 리어카를 만났다. 여자들 배짱이야 자반 고등어 한 손이나 오징어 몇 마리, 아니면 동태 한마리, 뭐 이런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생선을 산다. 고작 3~4천원어치를 사는게 일상이다. 그런데 짝궁이 옆에 있었으니 경우가 달랐다. 대뜸 7000원씩이나 주고 두 마리도 아니고 한 마리인 대구를 사버린 것이다. 크기는 크다. 알까지 배서 배야지가 툭 불거진 게 진짜로 크다. 검정비닐 봉지에 담겨진 무게가 축 처져 늘어졌다. 반을 나누어서 찌게를 하려고 했더니 냉동시키면 맛이 없다고 한꺼번에 하라는 짝궁의 지시가 떨어졌다.

 

몇 끼니를 먹더라도 퍽퍽한 고기는 먹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중간크기의 냄비로 하나 가득찼다. 대가리가 반은 되었고, 알이 또 그 반은 되었다. 그러니 막상 익혀서 상에 떠 놓을 때는 골라서 떠 놓아야했다. 다음 끼니에 살과 알집을 반으로 갈라 떠 놓기로 하고 당장은 큰 대구의 대가리와 나머지 반의 알을 떠 놓았다. 내 생각 같아서는 청향고추를 좀 넣어서 좀 얼큰하게 먹고 싶었지만 맵고 짠 것을 싫어하는 짝궁과 아들 덕택에 슴슴하니 대구탕을 끓인 것이다. 아들이 볼적에는 흔한 자반 조림도 아니고, 얼큰한 동태 찌게도 아니고, 엄청나게 큰 생선대가리 하나가 달랑 탕그릇 가득 들어있었으니 싫었던 것이다.

 

어미노릇이라는 것이 눈치 빼면 또 시체다. 좁쌀 크기의 알이 꽉꽉 차 있는 알 주머니를 얼른 가위로 도막을 내서 아들에게 먹이려고 손이 빨랐다. 그런데 못마땅한 아들의 젓가락이 제대로 꽂히지 않은 것이다. 짝궁은 아주 어려서부터 아들의 젓가락질에 예민했었다. 포크세대인 요즘 아이들이 젓가락 잡는 법과 연필 잡는 법이 엉망이라고 늘 신경을 써서 훈육을 했었다.

"네가 다음에 신부님이 되어서 교우님들과 술이라도 한 잔을 하게 될텐데 젓가락질이 바르지 못 하면 부모에게 밥상교육부터 받지 못한 신부님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젓가락을 제대로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아야한다." 

 

그것이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아주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짝궁의 신조였다. 부모로 부터 밥상에서 한마디씩 듣는 훈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의 젓가락질은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다. 그래도 아빠의 마음은 늘 탐탁치가 않으시다. 그런데....! 알집 부스러기 하나를 집으려는 순간에 아빠가 발라드시던 엄청나게 큰 대구 대가리가 지탱을 못 하고 갈라져 내려 앉았다. 부슬부슬한 알집을 놓치고 말았다. 그다지 다를 것도 없이 특별하지도 않게 아빠의 훈육이 있었다. 아무래도 네 젓가락질은 더는 진척이 안될성 싶으다고. 신경을 써서 연습을 했더라면 그렇게 힘없이 반찬을 놓치겠느냐고. 젓가락을 눕히지 말고 세워서 하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아직도 완전히 세우려면 멀었다고. 네가 신학교는 안간다고 했지만 사회생활을 할 때도 집었던 반찬을 놓쳤다 들었다 할 것이냐고?

 

이쯤 되면 나는 입을 봉하고 정수리의 신경줄을 고무줄로 단단히 칭칭 동여매고 있어야한다. 아들을 다독이든가 아니면 짝궁의 훈육을 차단하던가 선택을 해야한다. 그러나 어느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짝궁이 산에서 오래있다가 온 죄로 아들에게 너무 잘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의 훈육이 잘 먹혀들지를 않았다. 아들이 어미보다 세졌을 때는 아빠가 감당해야 한다. 지금쯤은 아빠 차례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들이 고분고분 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 번의 제동장치가 걸려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이 되었다. 그것이 자식을 키우는 어미의 감각이었다. 그래서 부자를 말리지 않고 신경줄만 땡기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이 아빠에게 대항을 했다. 먹을 때는 개도 건들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이미 대구탕에 불만인 아들의 속을 꿰차고 있을 아빠가 물러설 리가 없다.

"아빠는 거금주고 대구를 샀다. 아끼느라고 고등어나 삼치 같은 싼 생선만 사는 엄마랑 탕을 끓여서 맛있게 먹고 싶어서 아빠가 샀는데 너는 밥상 앞에서 인상을 펴지 않았다. 그것은 배고픈 사람이 아니다. 지금 경제가 어려워서 얼마나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에게 이 대구 한 마리를 가져다 주면 아빠한테 고맙다고 극진히 인사를 할 것이다. 그런데 자식놈은 좋은 걸 사다주고도 험한 꼴을 봐야하는 게 부모야. 너 밥 먹기 싫으면 네 방으로 가라."

 

나는 아들이 그대로 앉아서 밥을 먹기를 바랬다. 아들이 일어 선다는 것은 짝궁도 나도 밥을 못 먹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분위기를 바꾸지 않고 침묵을 하며 모래 같은 밥을 달게 달게 꾸역꾸역 털어 넣었다. 아들이 반항을 했다.

"아빠는 젓가락 이야기 좀 그만 하세요. 학교에서 보면 젓가락질 못 하는 아이들이 한 둘 인줄 아세요? 그래도 다른 아빠들은 아무 말 안한데요."

그리고 밥그릇에 젓가락을 꼭꼭 찍더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가 버렸다. 자식이 내 말을 거역하는 것을 나는 잘 참는다. 그러나 짝궁의 말을 거역하는 것은 내가 못 참는다. 그것은 가정의 기강이 서지 못하는 일이므로, 또 아무리 못났어도 아빠는 아빠여야 하므로 아들이 어려서 부터 나는 그것을 참지 못 했다.

 

나는 단호하게 말을 했다. 나와서 밥을 먹고 잠긴 문을 열라고. 이제는 컸다고 자식도 호락호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만한 일에 부모가 물러선다는 것은 안될 일이다. 나는 문을 발로 차겠다고 경고를 했고, 내가 2차전을 하는 동안 짝궁은 쓸쓸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오늘 밤에 아빠가 너에게 잘 못한 것이 없으니 문을 열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것은 어미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악착이었다. 방안에서 아들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아빠가 잘 못 했다고 사과하세요. 그럼 문 열을 거예요."

나는 더 열이 올랐고, 소리소리 지르는 나 때문에도, 사과를 하라고 소리지르는 아들 때문에도, 온순한 숫소인 짝궁이 흥분을 해버렸다. 밖으로 나가더니 여름에 비둘기를 쫒을 때 쓰려고 주워다 놓은 각목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방문에 대고 쳤다.

"뻑!"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진 아들이 방문을 열었고, 어미인 내가 선수를 쳤다. 무슨 기력이 얼마나 있다고 "이놈아 이놈아" 하면서 닥치는 대로 두둘겨 주었지만 덩치 큰 아들이 어디 간에 기별이나 느껴지겠는가? 엄마는 그러든지 말든지 아빠의 손에 든 각목을 딱 잡더니 "에이 씨!" 를 뱉으며 비틀어서 뺏으려고 했다. 그대로 아빠는 손을 놓는 대신에 주먹으로 머리통을 후려 갈겨 버렸다. 나의 힘없는 주먹이 도리깨질을 했다.

"뭐야? 에이 씨야? 아빠한테 너가 지금 에이 씨라고 했냐? 아나 에이 씨다 이놈아"

나의 반격에 순간의 판단이 섰는지 아들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잘 못 했습니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다시 각목은 짝궁의 손에 들려졌다. 짝궁은 각목을 들고만 있을 뿐, 꿇어 앉은 아들에게 질문을 했다.

"너 19년 인생에 아빠한테 몇 번째 맞느냐?"
아들이 대답했다.

 

"세 번째요."

그리고 짝궁은 나를 밖으로 밀어내고 아들과 독대를 했다. 한참 후에 각목으로 엉덩이 찜질이 시작 되었다. 딱 다섯 번 소리가 났고 아들의 비명도 딱 다섯 번 났다. 그리고 조용해 졌다. 나는 작은 내 방으로 와서 잠이 들어버렸다. 기운이 탈진이 되어 온 힘이 다 꺼져버린 것이다. 일어나 보니 짝궁은 옆에 앉아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고, 아들은 제 방 책상에서 공부중이었다. 늘어진 밥상의 밥그릇은 비어 있고 반찬 뚜껑들은 그대로 열려진 채로 널부러져 있다. 내가 마저 밥을 먹지 않아서 그대로 둔 것 같았다. 밥을 먹고 정리를 하고 방에 드니 짝궁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을 한다.

 

"자식새끼 때리고 속이 안좋아 죽것네. 저렇게 억세진 놈을 혼자서 키우니라고 고생했네. 대학가기 전에 아빠한테 한 번 더 맞아야 어른이 된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허네. 이런고비 없이 자식이 큰당가?! 남들도 다 이런 고비 격으며 자식 키운다네."

밤이 깊어서 잠자리에 들 시간에 아들의 방으로 건너갔다. 아들이 가슴을 열고 엄마를 품었다.

"이놈아 너 신학교 안간다고 하기를 잘 했다 이놈아. 꼭 너 같은 놈 낳아서 효도 받고 살아라 이놈아. 엄마는 한 마리에 7000원씩이나 하는 대구 못 산다 이놈아. 아빠가 너랑 같이 드시려고 샀으니까 맛있게 먹어주면 어디가 덧나냐? 너는 너 같은 아들 낳아서 매 끼니마다 햄버거랑 피자만 사 줘라 이놈아. 아빠가 너 때려놓고 죽것는 갑다 이놈아."

 

자식이란 또 그렇다. 남 같으면 먹든지 말든지, 젓가락질을 잘 하든지 말든지 간섭이 없을텐데 내 자식이라서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거 때리고도 그거 맞고도 정이 아깝디 아까운게 자식과 부모다.

"엄마. 우리 엄마! 나는 나같은 아들 낳기가 싫어서 장가 안갈거야."

그래도 그런 소리는 듣기가 싫었다.

"내 아들이 워째서? 다음에 너 같은 아들만 낳아도 너는 자식 잘 둔 것이다 이놈아!"

양치질을 마치고 좁은 방에 누운 아빠 품을 비집고 아들이 들어가 누운다. 아빠는 팔 하나를 내어주고 소만큼 자란 자식을 품는다. 

 

ㅡ"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았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 마르코4,26-29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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