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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9]]연중 제3주 토요일 : 주님과 함께면! (수원교구 조욱현신부님 강론)
작성자김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28 조회수906 추천수4 반대(0) 신고
성 바오로 수도회 홈피 선교네트 http://www.paolo.net/catholic/

     --성서의 세계--말씀 묵상 방에서 퍼옴

      (수원교구 조욱현신부님 강론)

 

 

연중 제3주 토요일


 


복음: 마르 4,35-41: 풍랑을 가라앉히시다

 

 

35 그 날 저녁이 되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

 

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채 예수께서 타고 계신 배를 저어가자 다른 배

 

들도 함께 따라갔다. 37 그런데 마침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뱃고물을 베개 삼아 주무

 

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선생님, 저희가 죽게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

 

습니까?" 하고 부르짖었다. 39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40 그렇게 하시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

 

음이 없느냐?" 하고 책망하셨다. 41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 분이 누구

 

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할까?"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 묵 상 -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풍랑을 가라앉히신다.

 

이 기적은 죽음-부활의 상징을 드러내고 있다.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35절).

 

여기서 ‘저편’, ‘건너편’이라는 말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인간의 믿음은 단번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차원을

 

바꾸어가며 성장하는 것이다.

 

씨를 뿌리고, 싹이 트고, 잎이 돋고, 줄기가 서고, 꽃이 피고, 결실을 맺는 과정이다.

 

‘이편’, ‘저편’의 의미는 신앙이 성장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편에서 저편으로 저편에서 이편으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신앙을 성숙시키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치게 하시는 장면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장면을 통해 신앙이 한층 더 성숙된다.

 

그 가운데 먼저 제자들은 ‘죽음의 위협’을 느낀다.

 

 “마침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

 

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예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할까?’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37-41).

 

이 이야기는 요나의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

 

야훼께서 바다에 바람을 일으키셨다...뱃사공들은 겁에 질려 저마다 저희의 신에게

 

부르짖었다...요나는 배 밑창에 내려가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선장이 요나를 깨우며 ‘이런 판국에 잠을 자느냐? 일어나 너의 신에게 부르짖어

 

보아라!’하였다...성난 바다는 잔잔해졌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몹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요나 1,4-10).

 

물은 인간을 심연에 빠뜨리는 위험과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고요하고 잠잠해져라!”고 명령하신다.

 

예수께서 가지신 능력은 하느님의 능력이라는 말이다.

 

그러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39절).

 

이렇게 하느님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 누구신지를 제자들은 이 풍랑의 기적에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을 죽음의 위협에서 구출해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고물에

 

서 베개를 베고 주무신다. 함께 희생될 것같이 보인다.

 

그러니 그분은 “죽은 것”같이 보인다.  그  모습은 아무 힘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 분을 연상케 한다.

 

무덤에 묻히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시리라고 제자들이 믿기는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모습과 아우성을 치는 제자들의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아직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교회와 신앙인은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 존재이다.

 

하느님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삶의 모든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그분의 현존과 그 분의 능력을 읽을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조그만 풍랑에도 절망을 하며, 원망하고 그분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세가 아니라, 주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고 그분을 의지하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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