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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느 사제의 피정 하루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29 조회수1,418 추천수15 반대(0) 신고
 

                      어느 사제의 피정 하루

      

 십자가를 안테나로!  

 새벽 수녀원 미사에 연이어 할머니들이 계시는 요양원 미사를 다녀왔습니다. 미사갈 때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숙소로 돌아올 때는 어느새 하얀 눈이 되어 땅에 쌓이기 시작하는군요. 그 하얀 눈을 바라보니 해마다 이맘 때 가졌던 연피정이 생각납니다. 마침 어느 새하얀 눈과 같은 친구가 보내준 구 정모신부님의 피정에 관한 글이 있어 그 글을 읽으면서 하루 공짜? 피정을 해봅니다. ^^* 가브리엘통신     

          


                                         <피정 중에... >


  저는 지금 고라에서 연피정을 하고 있습니다. 연피정이란 수도자들이 연례적으로 하는 특별기도기간입니다. 작년에도 이곳에서 하였는데 수녀님들의 음식솜씨가 좋고 온천목욕 시설이 있어서 심신이 쉴 수 있습니다. 피정을 시작하면 일상의 공부나 업무는 일체 접어놓습니다. 모든 스케줄은 천천히 돌아가게 됩니다. 식사도 천천히 하고 호흡도 천천히 합니다. 피정중 일과를 대략 설명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침에 기상하여 첫째 묵상과 미사봉헌 ,아침식사와 점심식사 사이에 오전묵상, 그리고 점심식사 후에는 가벼운 등산을 합니다. 등산에서 돌아와서는 곧바로 온천물에 목욕을 합니다. 운동과 더불어 목욕은 긴장을 이완 시켜 줍니다. 목욕 후에 조금 눈을 붙이고, 3시 반경부터는 오후의 긴 묵상이 시작됩니다. 보통의 묵상은 한 시간 반 정도 인데, 오후의 묵상은 두 시간을 넘습니다. 매일의 피정 일과 중 제일 정신이 모아지는 시간 이라 하겠습니다. 방에 들어와서 바닥에 엎드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마치 마라톤을 종주한 선수가 운동장에 눕듯이 그렇게 엎드려서는 눈을 감습니다.


  묵상 중에서 받은 하느님의 은총이 생명의 곳곳에 고루 퍼져 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저녁식사 후의 일정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유동적입니다. 대체로 가벼운 산보를 하고 나서 다음날 기도와 미사준비를 하고, 일기를 쓰고, 취침 전에 가벼운 묵상을 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하루의 일과는 침묵으로 일관하는데, 이는 내면이 고요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피정기간동안에는 신체적 건강도 회복됩니다. 매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하고 식사량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좋은 식사습관을 들입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식사를 하는 모양이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피정전의 식사 습관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얼마나 정신없고 질서없이 생활하고 있었는가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밥을 천천히 꼭꼭 씹어서 삼키는 동안 마음의 정리도 조금씩 됩니다.  서두름에서 벗어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사물이 있는 그대로 다가옵니다.


  피정 중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영적인 훈련입니다. 영적훈련에는 명상적 방법으로 하는 묵상이나 관상, 만트라식의 염경기도, 영혼의 내면을 살피는 성찰 등이 있습니다. 영적인 훈련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인간의 영혼 안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사나운 들소가 들어있기 때문 입니다.들소는 그동안의 무질서한 욕구들을 먹고 자라났습니다.


  영적 훈련의 첫째 단계는 이러한 무질서를 자각하고 여기에서 자유로워지는 일인데, 그러려면 호흡과 자세를 통하여 생각, 상념, 느낌 등이 정화되어야합니다. 정화를 거치면서 영혼은 서서히 자신이 진정으로 염원하는 본질에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는 잠심의 의식에 들게 됩니다. 잠심으로 평정된 영혼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느님의 현존의식으로 초대되어 나갑니다.


  묵상을 통해서는 성서의 구절을 깊이 새겨보고 맛보고 그 구절이 영혼에 던져주는 빛을 체험합니다. 묵상을 통한 내적 인식은 생명을 살리는 살아있는 말씀 안에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피정을 도와주는 피정지도자들은 피정자의 체험이 인간의 이해에서 온 것 인지 ,아니면 성령께서 내리신 인식인지를 분간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만트라식 염경기도는 짧은 기도 구절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기도입니다. 기도구절은 규칙적이고 고른 호흡 속에서 나옵니다. 그리하여 신체와 정신은 서서히 그 기도 구절을 통하여 일치되게 됩니다. 신체와 정신이 일치된 피정자는 마치 고요한 창공을 유유히 나는 독수리처럼 자신의 전 존재를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는 감각을 터득합니다.


  피정자는 기도 중이나 피정 중에 일어나는 영혼의 체험 들을 끊임없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에 의하면 인간의 내면은 선한 영과 악한 영의 싸움터라고 합니다. 선한 영은 겸손 ,가난 ,자기를 아낌없이 내주는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악한 영은 부귀, 영예, 허영심, 권력욕 등을 부추깁니다.


  저의 피정은 이제 종반에 접어들고 있읍니다 . 매일 운동도 하고 목욕도 하고, 은총이 가득한 기쁨의 순간과 어둠의 깊은 골짜기를 방황하던 순간들을 번갈아 가면 서 기도를 거듭하여 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지난 20년동안 계속하여 똑같은 수련을 반복하여 온 셈 입니다... 그동안에 기도하는 감각도 익혔고 , 기도는 삶을 풍요롭게 해 주었고 제 살이 되었고 피가 되어왔습니다.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듯이 그렇게 기도 속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오늘은 

새벽부터 시작하여

하루종일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인적은 없고 창문 너머의 정원에는

눈을 받아내는 나무들만 많이 서 있습니다.

나도 

나무처럼 

서 있습니다.

하늘의 은총을 받아내면서...


 (일본상지대 신학부교수/구정모신부님의 글-착한이웃/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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