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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57) 아궁이가 그리운 날에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29 조회수986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4년1월29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 ㅡ히브리서11,1-2.8-19;마르코4,35-41ㅡ

 

     아궁이가 그리운 날에

                                  이순의

 

 

가을이면 어머니는 겨울 한철에 쓰실 땔감들을 장만하셨다.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땔감을 넉넉히 장만하지 않으면 겨울 한철을 나기가 힘이 들었다. 뒤안의 담장 밑에는 생 솔가지 배눌(=가리의 전라도 사투리)이 눌러져 있고, 허드레 창고에는 헌 가마니에서 부터 도막난 새끼줄 도막과 짚뭇들이 꼭꼭 눌려져 있었다. 땔감은 내 어린시절의 중대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작은 손풍고에 대롱을 달아서 바람을 불면 벼에서 벗겨진 왕겨도 아궁이 속의 황홀한 잔치였다. 한 주먹씩 집어서 아궁이 속에 뿌려 넣으면 그 화력이 너무 고왔다. 가루부스러기 같은 쌀껍질인 왕겨가 탈성 싶으지만 손풍고의 바람은 왕겨를 태워 밥도 익히고, 찌게도 익히고, 방까지 따숩게 했다. 그래도 무엇보다 좋은 땔감은 가을에 비축해둔 마른 솔가지였다.

 

아마도 솔가지는 차로 몇 차씩 들여왔던 것으로 보아 돈을 주고 샀던 땔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른 솔가지에서 떨어진 솔잎을 모아 불쏘시게를 마련하고, 한 줌의 쏠잎을 아궁이 입구에 모아 성냥을 그으면 마른 솔잎이 솔향기를 뿜으며 불꽃이 생긴다. 가는 잔가지들을 올리고 다시 제법 굵은 가지들을 올려서 화력에 기운이 돋으면 솔가지 다듬어 만든 비땅(=부지깽이의 남도 사투리)으로 살짝 불더미를 들어 아궁이 깊숙히 집어 넣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가지를 꺽어가며 불을 땐다(=태운다) 딱딱 손으로 꺽어서 대부분의 가지가 절단이 되지만 제법 영글은 놈들은 무릎에 걸쳐서 양손으로 당기면 "똑!" 하고 부러진다. 그러다가 더 굵은 녀석이 걸리면 움푹 파인 아궁이 둔덕에 솔가지를 걸쳐놓고 발로 탁 내려치면 "짝!" 하면서 도막이난다. 아궁이 속의 불(火)은 바로 위에 놓인 솥에 열을 올려서 쌀을 익히고, 저쪽 깊숙히 방고래 구멍으로 헤엄을 치며 들어간다. 가서 두터운 아랫목의 구들을 지글지글 달구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화력은 아궁이 밖으로 기어 나왔다가 기어 들어갔다가 혀를 날름날름 하면서 겨울에는 재롱둥이가 되고, 한여름에는 심술쟁이가 된다. 겨울에는 불(火)만 때라고 하면 좋것고, 여름에는 불(火)만 때지말라고 하면 좋것다. 그래도 불(火)은 사시사철 때야 산다. 여름에는 장독대 옆에 화덕을 걸고라도 불(火)을 때야한다. 겨울에는 불(火) 앞에 앉아서 비땅으로 부뚜막에 장단 맞추며 흥얼흥얼 동요라도 불러서 불(火)에게 기쁨을 준다.

 

불(火)도 신명이 나고 불(火) 앞에 앉은 순이는 얼굴이 볼그작작 해지며 홍조가 오른다. 따수운 기운이 벌리고 앉은 허벅지를 데우고 솥에서는 밥물이 넘으면서 불(火)을 그만 때라고 신호를 한다. "아! 일어나기 싫다." 솔가지는 긁어서 나무청에 정리하고 추운겨울의 미련은 다시 부뚜막에 있다. 쭈그려 앉아 아궁이 속에서 도란거리는 불(火)동무들에게 비땅질을 한다. 다시 벌겋게 달은 열기가 잡았던 어깨동무를 풀었다가 이내 재 속으로 숨는다. 또 한번 비땅질을 하고 다시 재 속으로 숨는 불꽃!

 

올 겨울의 서울은 눈이 없었다. 마른 강추위 때문에 겨울이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 건조한 먼지 속의 탁한 공기는 하얀 눈이 오셔야 숨구멍을 보드랍게 해 주실텐데..... 그런데 낮에 잠깐 귀한 함박눈을 보았다. 갑자기 오시는 손님을 맞으려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집안의 온기가 눈을 만나러 버선발로 뛰어나갔다. 밖에 있던 찬기가 허겁지겁 오카발로 들어섰다. "아이 추워!"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이 났을까?

<나 불(火) 때고 싶어! 나는 아궁이에 불(火) 때고 싶어! 비땅들고 불(火) 때고 싶어!>

 

아녀자들이 아궁이에 불(火)을 때느라고 허벅지 벌려 앉아 있을 때 그 불(火)은 여자의 몸을 소독하고 있었단다. 그것이 소독인 줄도 모르고 불(火) 곁에서 솔가지 꺽으며 여자들은 앉아 있었단다. 그 소독약을 태우면서 둘째도 낳고 셋째도 낳고, 일곱째도 낳고 아홉째도 낳았단다. 그런데 그 소독약이 없어서 아니지 그 소독약을 없애서 아홉째도 못 낳고 일곱째도 못 낳고, 셋째도 못 낳고, 둘째도 못 낳고, 첫째도 생각해 보아야 한단다. 문명을 따라서 아궁이는 없어지고 진짜로 큰 아궁이를 만들어 산단다. <찜질방!>

 

아! 불(火) 때고 싶은 날이다. 그런데 짝궁은 찜질방을 싫어한다. 소독은 커녕......!

그렇다. 요즘의 불(火)은 한가지 밖에 못한다. 가스렌지의 불(火)은 음식 밖에 못하고, 보일러의 불은 물만 데우고......! 불(火)들도 사람을 닮아서 이기심으로 꽉꽉 차 있나보다.

나는 오늘 아궁이 속의 불(火)이 너무 그립다.

나는 지금 불(火) 때고 싶다.

따끈따끈한 아궁이 앞에 앉아서 불(火) 때고 싶다.

 

ㅡ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마르코4,39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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