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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30]연중 제4주일: 참된 행복(수원교구 조욱현신부님 강론)
작성자김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30 조회수981 추천수4 반대(0) 신고
성 바오로 수도회 홈피 선교네트 http://www.paolo.net/catholic/

     --성서의 세계--말씀 묵상 방에서 퍼옴

      (수원교구 조욱현신부님 강론)

 

 

연중 제 4 주일: 가해


복음: 마태 5,1-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곁으로 다가 왔다. 

 

예수께서는 비로소 입을 열어 이렇게 가르치셨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7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9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0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 묵 상 -

 



오늘 전례의 중심 주제는 산상수훈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중에서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이다

 

1-2 독서가 함께 이 행복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복음은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제1독서: 스바 2,3. 3,12-13: 가난한 사람만을 네 안에 남기리라

 


1독서는 `야훼께서 오실 날' 있을 대소동에 관한 것을 전하고 있다(1,14-18).

 

그 날 야훼께서는 야훼를 믿었던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만이 화를 면하고 모두가

 

화를 입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가난한 사람들이 바로 야훼께서 다시 `양육하실' 새 백성의 `씨'가 될 것이다.

 

"너희는 야훼를 찾아라"(2,3)는  말은  회개의 권고이다.

 

진정한 회개만이 야훼의 날에 화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훼께서는 `거만을 떨며' `흥청거리는'자들을 정의로 다스리시고,

 

그분은 오로지 가난하고 순박한 정신으로 그분께 나오는 모든 이에게 마지막 날에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다.

 

 


1독서에서는 가난의 의미가 단순한 사회학적 의미에서

 

`영적' 차원의 의미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가난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판단'에

 

신뢰심을 갖고 자신을 내맡기는 하느님 안에서의 완전한 `자기포기'를 말한다.

 

이러한 가난은 회피해야할 저주스러운 것이 아니라, 도달해야할 높은 `목표'이다.

 

바로 이 `가난'이라는 것은 항상 `정의' 즉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의무와 결합되어야

 

한다. 

 

이렇게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은`살아남게 되고',`야훼의 이름만 믿을 것이고'(3,12)  

 

또한 불의한 짓을 범하지 않고 `거짓과 사기'를 입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3,13).

 

여기서 `가난하다'는 개념과 '겸손하다'는 개념은 일치한다.

 

이 개념을 통해 예언자들은 메시아를 예고한다(즈가9,9 참조).


 

 


복음: 마태 5,1-12: 산상 수훈

 



오늘 복음의 산상수훈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고도 극적인 삶으로 사신 것들

 

이다.   산상수훈 하나 하나를 그분의 삶을 통해 입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산상수훈은 모든 윤리규범을 초월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정상적 지혜가 부서지고 만다.

 

그 지혜는 하느님 앞에서 `어리석은 것', 즉 `우리 자신이 회개할 때' 만이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산상수훈의 메시지는 `회개'에 대한 권고(마태 4,17 참조)를 받아들였거나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갖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산에 올라가셔서(1절),  산 위에서 법을 가르치는 `새' 모세처럼

 

군중들을 가르치신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바위에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1고린3,3 참조)에 새겨진

 

그리스도인의 새 `법'으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 산상수훈은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가난해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고,

 

박해를 받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위해 박해를 받기 때문에 행

 

복한 것이다(10절).

 

이 모든 것은 우리 모두가 `회개하여' 이루어야 할 최상의 목표라고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3절).

 

`예루살렘 성서'는 이 구절을 `가난한 정신을 갖고있는 사람들은...'으로 훌륭히

 

번역하고 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은 제1독서의 `가난'의 영적인 차원에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가난'의 '정신'이라는 것은 비록 우연히 소유하였을지라도 재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난한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의 지적인 능력, 사고, 계획, 우리의 성성까지도

 

포함하여 우리가 선익을 위해 소유할 수 있는 그 모든 것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하느님께 의탁함으로써 그분을 통해 자신을 무한히 부요하게 하고,

 

또 그분이 베풀어주시는 모든 선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가난하건 부요하건 상관없이 다른 모든 행복을 함축적으로 내포

 

하고 있는 첫 번째 행복의 정신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고있는가 하는 것은

 

집착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해방되어 있느냐, 그리고 그럼으로써 하느님을 통해

 

부요해지고 그분께 받은 선물을 나눌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근본적인 `회개'가 있어야 한다.

 

"회개가 있는 곳에서는 현세 생활의 물질적 선에 대한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이러한 변화가 그리스도교 사상의 특성이다" (1978. 1.11. 수요담화문)

 

라고 바오로 6세 교황은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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