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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58) 고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30 조회수1,522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5년1월30일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ㅡ스바니아2,3;3,12-13;고린토1서1,26-31;마태오5,1-12ㄱㅡ

 

              고뇌

                        이순의

 

 

사람이 살면서 슬픈 날은 몇 이고 기쁜 날은 몇 이나 될까? 그저그런 반복의 일상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며 잘 살아간다. 기쁘거나 행복하다고 몫을 짖지도 않고, 슬프거나 귀찮다고 몫을 짖지도 않으면서 그냥 살아 간다. 매일이 별 다름 없이 흐르고 있지만 분명히 매일은 별다르게 장식하고 있다. 쓰던 비누도 분명히 그 만큼은 줄었을 것이고, 먹던 쌀도 그 만큼은 축났을 것이고, 크는 아가는 그 만큼은 자랐을 것이고, 인연의 세월도 그 만큼은 깊어졌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들뜨게 기쁜 날도 드물고 비통하게 슬픈 날도 드물다. 많으면 많은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자기의 일상과 분복에 맞춰서 살게 되어있는 것이 사람인 것 같다. 너무 갑자기 기뻐도 사람은 벅차 오르고, 너무 별안간에 비통하여도 사람은 좌절하고 만다. 인생은 그 기쁨과 비통함이 일상이라는 무덤덤함 속에 양념처럼 박혀있을 때 살았다는 맛을 느껴가지 않을까 싶으다.

 

행복이 오시면 그렇게 소중한 행복도 사흘이 가시기 전에 일상이 된다. 또한 지겨운 고통도 사흘이 가시기 전에 일상이 되어 견디며 살려고 몸부림하는 것이 사람이다. 행복이 일상이 되면 더 행복하지 못해서 좌절한다. 그것은 곧 행복이 비탄으로 전환되는 사소한 순간이 된다. 고통의 끝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은 아주 작은 너무나 작은 소망을 갖는다. 그렇게 형편없이 사소한 소망은 곧 행복으로 전환되는 거대한 순간이 된다.

 

사람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영역은 누리는 자의 것이다. 아무리 큰 것을 가졌어도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비통함의 극치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넘친다고 생각하면 만족의 환희일 것이다. 그것이 모두 타인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이 보아서 부러운 사람도 속이 썩어문드러 질 수 있고, 남이 눈 내리깔고 보아도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도 가슴은 넘실거리는 잔물결일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면 고뇌이다.

만족을 하자니 세상이 별천지고, 불평을 하자니 이만큼도 감사로다. 그래서 인생이 고뇌다. 어린 아가는 주는 젖만 먹으면 될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서 소리를 하는가? 늙은 할배는 평생하신 말씀이 아직도 어디에 남아서 소리를 하시는가? 강보의 아가는 주는 젖이나 먹고 있으면 될거 같고, 치매기 할배는 주는 밥이나 드시고 가만히 계시면 될거 같은데 인생이 그렇지가 못하다.

 

하늘은 오늘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 한 가지도 아니고 여덟 가지씩이나 주셨다. 인생이 죽는 날까지 살다보면 그 여덟 가지 복 중에서 한 가지 복도 못 받을 인생이 몇 이나 있을까? 그만큼 인생은 미완성의 나약한 고뇌덩어리이다. 일반적인 신심은 그 여덟 가지 복 중에서 타인을 제외한 나만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거나 아니면 남은 다 해당되는데 나만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겸손주의도 있을 것이다. 하느님이 왜 아버지이며, 주님께서 왜 죽으시고, 성령께서는 어찌하여 다시 오셔야 했을까?

 

여덟 가지 복을 주실라고!

인생이 고뇌라서 그토록 사랑하는 모두에게 한가지의 복은 주시려는 것이다. 주어진 인생을 다 살고도 여덟 개나 되는 복 중에서 한 개도 받을 수 없을 만큼 고뇌를 격지 못한 사람은 지옥으로 직행을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일생동안 한 가지의 분복도 느끼지 못 할 만큼 고뇌하지 못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래서 나는 복음의 진복팔단을 보면 희망이 보인다. 그토록 사람을 사랑하셔서 이토록 많은 복을 주시다니! 

 

미사중에 초로의 노인께서 손수건을 간혹 눈에 대시며 눈물을 찍고 계셨다. 세상을 헤치고 남았을 노인께서 아직도 찍어내셔야할 눈물이 있으셨으니 오늘의 복음은 은총중의 은총이었다. 미사 내내 그분을 위해서 지향을 드렸다. 그 눈물의 의미를 나는 모른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감사인지? 은혜인지? 근심인지? 걱정인지? 행복인지? 영광인지? 그러나 초로의 연세에 찍어내는 눈물의 의미가 어떠하시든지 값싼 눈물은 결코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내 주님께 여덟 가지의 복 중에서 맞는 복을 주시라고 청을 드렸다.

 

ㅡ교회가 꼭 가난을 지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떤형태나 경우에도

   하느님을 생각하는 가난이 중요합니다.

   오직 하느님께 맏기고 당당하게 살아갈 때

   없어도 부자 된 사람이 됩니다.

   정말로 하느님만을 붙잡고 살아갈 때

   이것이 참된 행복이 됩니다.

   본당 신부님의 미사강론 끝 부분ㅡ

 

ㅡ기뻐하고 즐거워 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있다. 마태오5,12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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