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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추상적인 글보다 더 감동적인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나의 하느님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30 조회수442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렇습니다...

어려운 시련을 신앙으로 이겨낸 체험담을 들으면 서로 힘도 받고 위로도 받습니다.

삶이 녹아있는 신앙 체험담은 한 인간의 역사 안에서 면면히 살아계신 하느님을 느낄 수 있고, 

비슷한 처지를 겪어낸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서로의 신앙을 공고히 할 수 있기에 무엇보다 좋은 영약이 됩니다.

 

솔직히 저는 이 글에 대한 반응을 보고 조금 놀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저는 제 이야기를 잘 내놓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말씀봉사를 하러 여러 본당으로 파견되어 나가다보면

같은 성서구절을 가지고도 그 본당의 분위기와 대상자에 따라 맞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도시와 농촌, 저녁반과 낮반에 맞춰, 조금씩 다른 예화와 묵상들을 나누게 되는 것이지요.

말씀의 원래의 의미와 그에 대한 이해를 도울 예화와 묵상(보조자료)은

저 나름으론 곳에 따라 70 : 30 정도나, 80 : 20 정도로 맞춰보려고 시간을 배분합니다

이것은 누가 저에게 그렇게 하라고 제시해준 원칙은 아니지만, 경험에 따른 어떤 지혜일지 모르지요.

 

전례적 시기에 따라서,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서,

어떤 날은 60 : 40 정도로 묵상이나 삶의 체험을 많이 다루게도 되지만,

될수 있으면 50%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이상한 저의 고집입니다.

 

자기가 편안한 시간에 관심있는 사람의 글을 클릭해서 볼 수 있는 인터넷은 좀 사정이 다르지만, 

제가 그동안 봉사해왔던 방식은 본당에서 지정한 시간에 지정된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사람들 앞에 서서 강의해왔기에, 저의 원칙(?)들이 통했다 싶습니다.

 

더구나 한번 시작하면 몇년동안의 진도를 떼어주어야하는 저희 말씀봉사자들의 입장에서

어떤 사람의 체험담이라야 맨날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고,

체험담이라는 것도 조심스러워, 자칫하면 그 사람의 주변의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상은 좁고, 가톨릭은 어항속이다! ..는 속담도 있지요^^*)

 

일부러 어떤 장소로 시간을 내서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인터넷의 경우와 달라,

한두번은 좋아하던 사람들도, 수강료를 내고(저희들이 가져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렵게 그 자리에 나와서 맨날 어떤 사람의 생활 이야기를 듣는 다면?

사람들이 점점 떨어져 나가서 다음 학기에는 폐강을 할 지경이 됩니다.

 

이런 경험들과, 저희를 지도하신 첫번째 수녀님께서는

자기의 묵상, 삶의 이야기들을 자제할 것을 혹독하게 지시하셨습니다.

저희가 어쩌다 자신의 묵상을 교안발표할 때 넣었다가는 무시무시한(^^) 질책이 마구 쏟아졌지요.

그런 어줍잖은 묵상보다 더 좋은 묵상을 할 수 있는 분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 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이 많을 줄 알지만,

그것은 아직 어린 봉사자일 때부터, 자기 해석을 마구 남발하지 못하게 하려는 교육이었음을 알았기에

우리 모두 인격적인 모욕을 가하는 비판을 듣고서도 순종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것을 참지 못해서 나갔습니다만, 저는 그분께 욕을 먹어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지요.

 

자기를 전하러 내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러 내보내는 것이다!

성서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교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기에

그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그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물론 성서 안에서, 삶 안에서 묵상한 것을 쓰는 場이라면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저도 여기서 저의 삶의 일부분을, 내 보일 수 있는 것들만 내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삶의 진솔한 체험이 녹아있는 글을 많이 좋아하는 것같습니다.

오늘 새삼스럽게 이곳이 좀더 자유롭게 자기 체험을 나누고 그것을 바라는 곳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봉사자로 생활했던 오랜 습관 탓에, 그리고 저의 성격 탓에, 자기 노출보다는

딱딱한 이야기들, 원론적인 이야기들을 아직은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분들은 그런 이야기보다 부드러운 이야기가 더 좋다고 솔직히 저에게 말씀해주십니다.

 

하지만, 이곳에도 다양한 분들이 계시기에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이곳 묵상방에서 예상치도 못한 메일이 날라와 저를 심심치않게 놀라게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독일, 그리고 우리나라 곳곳에서 가끔 메일을 주신 분들의 말씀이

시간이 없어서, 자료가 없어서(해외는 특히 그렇다며), 성서를 공부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었는데

성서해설이 반쯤 섞인 제 글에서 그런 욕구를 채우고 있다며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몇분의 신부님들(양승국신부님, 노우진 신부님, 상지종 신부님, 오상선 신부님)만

이곳에 묵상글을 쓰셨고, 평신도는 거의 보이지 않던 때였는데...

신부님들은 모두 편안한 삶의 이야기들을 주로 쓰셨는데,

언감생심 제가 성서를 해설했으니....무식이 용감하다고...^^*

하지만 그런 분들이 저의 용기를 부추겨주셨습니다.

 

아직도 그런 분들도 꽤 있으실 것 같아서.... 용감하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반은 집구신이라 일상사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거리도 없고,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글재주는 솔직히 없음을 고백합니다. ^^(

 

그러기에 저로서는 성서의 대목들 안에서 내 나름으로 느꼈던 것, 생각했던 것,

그리고 이제까지 배웠던 것들을 나누어보겠습니다.

간간이 어떤 구절을 붙들고 위기를 넘긴 이야기들, 묵상들이 있으면... 그것도 진솔하게 나누어보겠습니다.

다만, 예전의 우리 지도 수녀님 말씀대로...

여러 벗님들의 더 좋은 묵상들을 가로막는 짓이나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답글을 달아주셨음에도 또 이렇게 특별한 글을 주신 김기숙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도 다시 저의 경직된 자세에서 탈피하여, 좀 더 자유롭고 풀어헤쳐진 이야기들을

나누어도 좋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

 

이곳에서 서로 서로 감동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신앙을 나누어

좀 더 풍요한 말씀의 식탁에서 많은 영적 양식들을 서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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