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월30일) 연중 4주일 :복된 이들이 되는 길 (베네딕도수도원 허 로무알도 신부님 강론)
작성자김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30 조회수1,228 추천수2 반대(0) 신고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홈피  http://osb.or.kr/ 에서 퍼옴

    (허 로무알도 수사신부님 강론)

 

 

연중 제4주일(가해) 강론(05.1.30)
제1독서: 스바 2,3; 3,12-13
제2독서: 1고린 1,26-31
복  음: 마태 5,1-12

 


                                    “복된 이들이 되는 길”



  우리는 방금 복음서에서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내용 중 하나를 들었습니다.

소위 행복선언 또는 산상수훈이라고도 하는 이 내용은 기쁜 소식의 핵심과도 같습니다.  위로와 희망의 말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서 복된 사람들이 누구인지 제시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과 상식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슬퍼하고 박해받는 사람들, 마음이 온유하고 순수한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이들은 세속적인 견지에서 볼 때 복되기는커녕 불행하고 딱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모두가 밑지는 장사를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비추어 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이렇게 살았다가는 인생 낙오자가 된다는 생각마저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로가 말하는 세상의 바보들입니다.

행복선언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떤 자세로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전례 말씀들, 특히 행복선언을 중심으로 복된 이들이 되는 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너희는 주님을 찾아라.”(스바 2.3) 

  복된 이들이 되기 위한 첫 단계는 회개입니다.

행복선언은 오직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들였거나 그런 마음의 준비를 갖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회개 없이 이 메시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회개는 우리의 마음과 관심을 주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스바니아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주님을 찾아.”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회개하라는 권고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진 이스라엘에게 다시 그분께로 돌아오라는 간절한 초대입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자주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평화도 기쁨도 잃게 되곤 합니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으로부터 도망칩니다.  주님을 찾는 것, 이것은 우리의 목표입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찾을 때, 스바니아 예언자의 말대로 하느님의 진노를 면하게 되고 새로운 백성의 대열에 들게 될 것입니다.

  그럼 주님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어찌 보면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을 찾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예언자의 이어지는 권고들에서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2. “바로 살도록 힘써라.”(스바 2,3)

  스바니아 예언자는 “바로 살도록 힘써라.” 하고 권고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찾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구체적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올바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실제적인 내용은 오늘 복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옳은 일을 하고 평화를 추구하며,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참된 행복을 약속하십니다.

정의와 평화, 그리고 사랑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 안에 깊이 스며들어야 하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과연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고 자비를 실천하고 있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애써라.”(스바 2,3)

  스바니아 예언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애써라.”

이 권고는 주님을 찾는 우리의 내적의 자세를 말해줍니다. 

겸손이란 자기 존재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바탕을 둡니다.

즉, 자기 존재의 기원과 부르심 받았을 때의 처지를 아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1고린 1,26)

하느님의 선택은 분명 역설입니다.

그분은 가난하고 겸손한 이들,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인간의 오만과 자만심을 꺾으시고자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결코 우리가 잘 나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대로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은덕입니다.

래서 사도는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1고린 5,31)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점을 늘 염두에 둔다면 교만해 질 수 없을 것입니다. 

  겸손은 주님을 찾기 위한 내적인 자세입니다.

다시 말해 복된 이들이 되기 위한 중요한 자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복되도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마태 5,3)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 첫 번째 행복선언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루가 복음 6장에도 오늘 복음과 유사한 내용이 나오지만,

루가는 그냥 ‘가난한 사람들’이라고만 말합니다.  루가는 가난의 사회적 의미를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 마태오는 여기에 ‘영으로’란 말을 덧붙임으로써 가난을 영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사실 물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영으로 가난해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물질적 가난 자체는 결코 축복이 아닙니다.

물질적 빈궁은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악입니다.       재물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재물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더 중요합니다. 

  성서적 의미로 ‘가난한 사람’이란 모든 것,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끊고 겸손한 자세로 오로지 하느님만을 의탁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계획이 자신에게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겸손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가난하다’는 개념은 ‘겸손하다’란 개념과 의미상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겸손이란, 영적인 가난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져 오로지 하느님만을 희망하고 그분의 섭리에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는 충만한 부, 곧 하늘나라를 소유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대를 초월하여 바로 이런 ‘가난한 사람’의 모델이십니다.   그분의 가난과 겸손을 닮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을 찾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 안에 담긴 메시지가 아닌가 합니다. 예수님은 몸소 이 길을 걸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모범을 따라 이 길을 충실히 걸을 때 우리 역시 복된 이들의 대열에 들게 될 것입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