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고해를 하라고?(하혈병여자의 입장에서..)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31 조회수1,344 추천수12 반대(0) 신고



연중 제4주간 화요일(2/1)






    독서 : 히브 12,1-4 복음 : 마르 5,21-43 죽어가는 야이로의 딸을 살리려 급한 발걸음을 걸어야하는 순간에 하혈병 여자가 옷자락을 만져 시간을 지체하고 있다. 시간을 지체시킨 사람은 솔직히 그 여인이 아니라 예수시다. 그 여자는 이미 나았고, 예수께서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냥 당신의 갈길을 가셨으면 되었을 것이다. 만일 그분이 사람들의 육신을 치유시키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그 다급한 순간에 걸음을 멈춰, 이미 치유가 끝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그많은 사람들 모두 그분의 옷자락이라도 만져 병을 고칠 수 있도록 내버려두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분은 그런 식의 육신의 치유가 목적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부끄러워 숨기고 싶은 병에 걸린 여자의 심정은 아랑곳없이 군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묻고 계신다. 여자와 인격적으로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의 주술적인 믿음을 바로 잡아주고 싶기 때문이다. 여자가 병을 낫게 된 것은 옷자락을 만졌기 때문이 아니라 간절한 믿음 때문이며 그 믿음을 이미 그분이 알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자와의 대화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군중들에게 교육이 되기도 한다. 이 여자와의 대화에서 또 한가지 생각해볼 일이 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그 여자의 상황. 그러나 그것을 스스로 입밖으로 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다른 곳에서 만난 병자들에게도, 예수의 제자들에게도 비슷한 대화를 청하시는 예수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무엇을 찾느냐?" 다 아시면서도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처지를, 원하는 바를 입밖에 소리내시길 원하실까? 나는 이런 것들을 고해성사와 연관지어 생각해본다. 정신과 의사, 심리 치료사는 환자의,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다. 돈을 내고 그들을 만났으면 속시원한 소리를 해줄 줄 알지만, 예상외로 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들어주는 것이 주된 일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말인가? 내담자들은 자기의 머리 속에 머무는 생각으로가 아니라, 그 생각들, 기억들을 입밖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과정에서 이미 치유받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 그분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우리의 실수. 잘못. 우리가 이미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죄. 허물. 그러나 그것을 입밖으로 내는 과정에서 이미 그분으로부터 치유를 받고 있는 것이며, 고해하고 있는 과정에서 응어리를 녹여내고 감정의 홍수가 빠지고나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해결책까지 얻어지게 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 상담자 앞에서도 치유가 가능한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느님 앞이라는 그 믿음 아래서 행해지는 고해라면 보다 근원적인 영혼의 씻김과 평안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옛날 개신교에서 주님께 직접 고해하는 통회와 스스로 만든 여러가지 보속(?)도 해봤다. 가톨릭처럼 대리인(?) 앞에서 자신의 쑥스러운 죄를 알려야하는 번거로움과 민망함이 없어 편리한 잇점은 분명 있다. 아무도 없는 성전으로 주님께 홀로 찾아가 혼자 통회하고 혼자 자선이나 선행을 하리라고 결심하고 혼자 죄를 사함 받았다고 믿고 나오는 것은 과연 주님과 더욱 빨리 가깝게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여러번 그러다보니, 한편 마음 안에 의심이 쌓여갔다. 아무리 잘하려해도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었고, 그러한 무수한 죄를 매번 염치없이 찾아가 혼자 울고 혼자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오면 그만인 것인가? 뒤가 찜찜한 일이 쌓여갔다. 어떻든 그런 방식에도 분명 석연치않은 한계가 있었다. 물론 형식적인 절차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때문에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 결국엔 떨어져나가는 신앙인이 되게 하는 것도 문제가 되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발걸음을 떼어 고해실로 찾아가는 그 행위에서 벌써 치유와 용서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부끄러워하는 여자의 입을 굳이 열어 사람들에게 드러내놓으시는 그분의 마음이 바로 그런 것일 게다. 이제 그 여자는 더이상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다. 정결법에서 말하는 부정한 여인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여자는 치유 능력을 훔쳤다는 또 다른 죄의식에서도 해방될 것이다.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여인에게 주고 싶었던 주님의 선물이 아니었까? 우리도 입 밖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때, 뜻밖의 소득이 있는 것을 경험한다. 자신만의 옹졸함과 편견에 사로잡혀있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특하고 대견스러운 말에 자신도 놀랄 때가 있다. 난마같이 얽혀있는 복잡한 생각들이 입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차분하게 정리되고 뜻밖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던 경험도 많다. 바로 그래서 입밖으로 나의 생각, 실수, 결심들을 내놓는 것은 그 자체로써 화해와 용서와 희망이 되는 것이다. 잡다하게 얽혀있는 난장판같은 의식 속에서 속속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심리적, 영혼의 이득 외에도 고해성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것은 또한 신앙인의 기본 자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들을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겸손이다. 나만 잘못한 게 아니라고 분노하지 않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변명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든 해결하겠다고 자만하지않는 낮아짐, 순종, 비움. 그렇다. 고해성사를 통해 그러한 신앙인의 기본 자세를 갖추고 텅 비워진 이들에게 주님은 해방, 자유, 평화, 기쁨을 가득 담아주시려는 것이다. '영이 가난한 사람들은 복되다!' 하신 주님이시기에... ps. 이 글은 성탄 시기 마지막 때 조영숙님이 올린 confession에 덧댄 글입니다.
    미리 올려주었으면, 판공시기에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피력해주셨는데 마침 다음 주에 사순시기가 시작될 것이라..
    오늘 복음과 연관된 부분을 다시 손질하여 올려봅니다.
    이미 읽으신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 Ombra mai fu-Handel(오페라중 Largo.오보에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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