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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나마 그대가 곁에 있어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01 조회수1,264 추천수16 반대(0) 신고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루가 2장 22-32절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나마 그대가 곁에 있어>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을 앞두고 있지만, 위축된 경기가 되살아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자영업자들이나 서민들의 몇 안 되는 낙(樂)이었던 설대목도 별로 기대할 수 없다고 하니 큰일입니다.


계속되는 불황의 여파로 손님이 떨어져 거의 공치다시피하는 자영업자들의 한숨소리가 점점 커져만 갑니다. 후원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는 사회복지시설 운영자들 역시 속수무책입니다. 귀향마저 포기한 많은 사람들, 어떻게 해서든 이번 겨울을 넘기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아침 체감온도 20도가 넘는 강추위가 계속되면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는 저희 집에는 그나마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한 가지 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가 계속되면서, 가출했던 아이들이 한명 한명씩 제 발로, 또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속속 다시 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녀석들, 영하 20도가 넘는 강추위에 아무데서나 웅크리고 자다가 얼어 죽지나 않는지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살아서 돌아온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뛸 듯이 기뻤고, 얼마나 하느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따뜻한 둥지가 그리워서, 따뜻한 수사님들의 품이 그리워서 다시 돌아온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 시대 우리 교회와 수도회의 역할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그리스도를 따라 축성된 모든 사제나 수도자, 봉헌생활자들의 삶이 바로 이래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따뜻한 벽난로와 같은 존재! 세상의 추위로 꽁꽁 몸이 얼어붙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몸을 녹일 수 있는 훈훈한 벽난로 같은 존재. 마주 앉아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몸을 녹인 사람들이 다시금 몸의 온기를 회복하고 힘을 얻어 거친 세상을 향해 다시금 힘차게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주는 벽난로 같은 존재.


세상에는 참으로 답답한 일도 많고 딱한 일도 많습니다. 그래도 세상이 살만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픔과 시련을 이기고 힘차게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제 갈 길을 올바로 걸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옆에서 격려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그나마 세상은 살아볼만한 곳입니다. 또한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힘겹게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 그 옆으로 조용히 다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 좌절은 희망의 또 다른 모습임을, 절망도 힘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그들이 의연하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났을 때, “힘겨운 나날 이 세상에 그나마 그대가 곁에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라고 말할 수 있게 노력하는 우리이길 바랍니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이자 봉헌생활의 날입니다. 오늘 여러 수도회나 수녀회에서 서원식을 거행합니다. 많은 본당에서는 오늘 일년간 쓸 초를 축성합니다.


초는 다른 무엇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분의 생애, 그분의 말씀, 그분의 헌신, 그분의 희생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조금씩 소멸되는 자기 죽음을 통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초의 역할이 이 시대 모든 수도자들과 사제들, 봉헌생활자들, 또한 세례로 주님께 봉헌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삶의 좌우명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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