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2제자의 말아톤 (연중 제 4주간 목요일)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02 조회수996 추천수4 반대(0) 신고
 

                   12제자의 말아톤 (연중 제 4주간 목요일)



  십자가를 안테나로!

  오늘 복음 (마르 6, 7- 12)에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둘씩 짝지어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최대한 간단한 복장(?)을 강조하시는 것을 묵상하면서 저는 며칠 전에 본 ‘말아톤’이란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그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겉보기엔 또래 아이들과 다른 것 하나 없는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초원. 어느 날 초원이는 자폐증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게 되고, 엄마 경숙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한다. 그러나 경숙은 초원이가 달리기에만큼은 정상인보다도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달릴 때만큼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아들의 모습에 희망을 갖고 꾸준히 훈련시킨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살 청년이 된 초원. 그러나 지능은 여전히 5살 수준에 머물고 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방귀를 뀌어대고, 동생에겐 마치 선생님 대하듯 깍듯이 존댓말을 쓰고, 음악만 나오면 아무데서나 특유의 막춤을 선보이기 일쑤이니, 어딜 가든 초원이가 있는 곳은 시끄러워지기 마련이다. 하는 짓이나 말투는 영락없는 5살 어린애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달리기 실력만큼은 여전히 최고인 초원. 경숙은 자신의 목표를 ‘초원의 마라톤 서브쓰리 달성’으로 정하고 아들의 훈련에만 매달린다.

  어느 날 세계대회에서 1등을 한 전력도 있는 전직 유명 마라토너 정욱이 음주운전으로 사회봉사 200시간 명령을 받고 초원의 학교로 오게 된다. 경숙은 애원하다시피해서 기어이 정욱에게 아들의 마라톤 코치 역할을 떠맡긴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초원을 성가시게만 생각했던 정욱. 하지만 초원과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그는 아이같이 순수하고 솔직한 초원에게 조금씩 동화되어 가고, 초원도 정욱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정욱은 매번 속도조절에 실패해 지쳐 쓰러지기는 하지만 지구력이 남다른 초원에게서 마라톤 서브쓰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간다. 한편 불성실하게만 보이는 코치 정욱이 도통 미덥지 않은 학부형 경숙은 어느 날 정욱과 심한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자식 사랑과 집착을 착각하지 말라”는 정욱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는 경숙. 경숙은 정욱의 말대로 이제껏 ’좋다’, ‘싫다’는 의사 표현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자신의 욕심 때문에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듯한 기분의 경숙. 그녀는 이제 마라톤도, 서브쓰리도 모두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또 혹시 아들 초원이 마라톤을 하다가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아들의 마라톤을 극구 말리는데 초원이는 가족몰래 춘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여 마침내 성공한다...


    아마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식량자루나 전대에 돈, 여벌 옷을 지니고 가지 말라고 하신 것은 복음선포라는 마라톤(영적 자폐증이 있는 우리는 이를 말아톤이라고 하기도 함)에 있어 그것들이 하나의 짐(집착,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노파심에서가 아닐까요? 그리고 마라톤이나 등산도 본인이 원해서 해야지 엄마가 늘 초코파이로 아이를 유혹하며 그것을 강요할 수 없듯이, 초코파이처럼 달콤한 물질주의의 유혹을 제자들이 잘 극복하게 예수님은  엄격한 코치로서 제자들에게 극기훈련을 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참고로 이에 관한 도반신부님의 강론을 퍼드립니다. 가브리엘통신


 

                                           <열두 제자의 파견>


   오늘 복음(마태 10, 5~15)에서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낯선 곳으로 떠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어떻게 보면 냉정하다싶은 말씀을 하십니다. ‘무엇인가를 챙겨가라’, ‘걱정된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가능하면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왜 이렇게 매정한 말씀을 하신 것인가?

   우리말에 응석받이란 말이 있습니다. ‘오냐오냐’ 하고 키워서 자기 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응석받이들은 여러 가지 단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가장 큰 단점은 자기 혼자서 무엇인가를 할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든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삶은 결국 자신의 내적 상태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아적인 상태에 머물게 하며 보호막이 망가졌을 경우에 피폐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불편한 삶, 어려운 삶을 살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적인 성숙함은 편안한 가운데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교육문제를 논할 때 교육 분위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주요토론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민주적인 것을 주창하는 서구사회에서도 귀족계층이 다니는 학교는 대개가 다 엄격한 규율 안에서 힘든 생활을 시킨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하고픈 대로 하게 되면 내적인 힘이 생기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런 관점에서 파견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고생할 것을 각오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산에 오르는 아이가 셋이 있습니다. 한 아이는 씩씩하게 자기 부모를 따라서 산을 오릅니다. 다른 아이는 힘들다고 울며불며 하면서도 어기적어기적 산을 오릅니다. 다른 한 아이는 자기를 업어주지 않으면 산을 오르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세 아이 중에서 어떤 아이가 제일 사랑을 많이 받을까요? 하느님이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을 사랑하실 지도 아시겠지요. 대나무는 일정한 길이마다 매듭이 있습니다. 성장의 표시란 것이지요. 사람 역시 인생의 고비마다 마음 안에 매듭이 지어집니다. 그리고 그 매듭이 그 다음 성장을 하게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몸을 튼튼하게 하는 것은 매일 뒤집어져 자는 것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힘겨움 무거운 역기를 드는 고행 길에서 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용상, 인상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살다가 힘겨움이 왔을 때 하느님이 나를 키우시려고 이렇게 힘겨움을 주시는 구나 생각하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도반신부님 강론 중에서)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