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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에 꿰뚫린 영혼!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02 조회수898 추천수4 반대(0) 신고


주님 봉헌 축일(봉헌 생활의날)(2/2)






    독서 : 말라 3,1-4<또는 히브 2,14-18> 복음 : 루가 2,22-32 주님 봉헌 축일! 맏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라는 율법에 따라 요셉, 마리아도 맏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러 예루살렘에 갔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맏아들이라는 의미는 여러 아들들 중에 첫번째 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외아들도 '맏아들'이고, 서열상 첫번째 아들도 '맏아들'이다. '맏아들', '맏배', '맏물'은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소유라는 의미로 각인되어있기에 맏아들은 동생이 있건말건 맏아들이다. 그럼 맏아들, 맏배만 하느님의 소유인가? 그렇진 않다. 세상 모든 만물이 하느님의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모태를 가르고 나온 첫 출생, 첫 수확은 하느님께 도로 돌려드리는 것이 그분의 축복에 대한 감사며 찬미며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맏아들을 바치는 것은 출애굽의 구원업적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집트의 모든 맏이를 치시며, 이스라엘을 빼내주신 그 마지막 재앙을 기념하고 그때의 구원을 현재에 재현하는 것이다. 성전이나 회당에서 맏아들을 봉헌하는 예식을 치르고 나면, 다시 아기 부모는 그에 맞는 돈을 조금 내고 아기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러니까 이 예식으로써 봉헌의 의미를 살리면서 실제로는 아기는 부모밑에서 안전하게 기르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부모도 율법에 따라 맏아들을 성전에 봉헌한다. 그러나 아기 예수를 봉헌하는 자리에서 시므온은 불길한 말을 한다. "당신의 영혼을 칼이 꿰뚫을 것입니다."(새번역) 그렇다. 아기 예수의 봉헌은 단순히 맏이를 바치는 유대교의 속량법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모두가 형식적으로 봉헌하는 이 봉헌예식의 의미가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게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말이다. 맏아들을 봉헌한다는 것은 그 한 존재를 봉헌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 어머니의 전존재, 아니 온 가족 모두를 봉헌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있어 맏아들을 봉헌한다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어떤 부분을 떼내어 드린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맏아들은 그 가족의 봉헌과 희생을 대신하는 대속물이며 제물이다. 제물은 그래서 온전한 모습으로 바치는 법이 없다. 떼어내고, 도려내고, 잘라내서 바치는 법이다. 하물며 농경민족의 젯상에 올려놓는 과일조차도 늘 위, 아래를 잘라낸다. 그런데 예수는 시므온의 말처럼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 즉 자기 백성을 대신하는 제물로, 대속물로 봉헌될 것임을 갓난 아기 때부터 벌써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머니, 마리아도 맏아들 아기 예수로 인해 자기 목숨과 같은 어떤 부분이 잘라내질 것이다. 새번역엔 그것이 그 어머니의 영혼이라고 직역되어있다. 당신의 영혼을 칼이 꿰뚫을 것이라는 새번역! 마음이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이라는 공동번역!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가?) . . . '칼'.... '맏아들' ... 이런 단어를 마주하니 맏아들을 잃은 기억이 난다. 첫아기를 낳아서 한달 조금 지나 잃었다. 그 아기를 가졌을 때의 태몽이 아주 불길했다. 열달 내내 불안하고 무서웠기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일이 기어코 벌어지고 나니, 억눌르고 가라앉혔던 그 꿈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태몽은 커다란 토마토를 밭에서 따왔는데 집에 와보니 1/4쪽이 칼로 잘라져있었다. 아기 어머니, 마리아는 시므온의 말을 듣고 아기가 장성하는 동안 얼마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마음을 숨기며 살아갔을까 혼자 있을 때조차 행여 떠오를까 무서웠던 그 말. 그 일이 기어코 벌어지던 날,
    아기의 손과 발, 옆구리가 꿰뚫리던 날,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는 영혼이 꿰뚫렸다! 아기만 희생되고 봉헌된 것이 아니다. 어머니도 희생되고 봉헌된 것이다.
    .
            주님을 따라 살겠다고 서약한 우리 그리스도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십자가를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 몸에 긋는 가톨릭 신자인 우리도]*
            주님과 어머니의 뒤를 따라 남을 위해 희생되고 봉헌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주님 봉헌 축일! 제단에 바치는 초 한자루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는 하루였다.
              ps. [ ]*안에 있는 표현은 冊 우리가 예수를 찾는 이유는? 중에 나오는 이제민 신부님의 표현을 인용했습니다.그 표현을 읽을 때, 저는
              마치 내 몸에 스스로 칼자욱을 내는 희생의 결심을 해야된다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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