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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62) 내공이라고 라우? 라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03 조회수88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5년2월3일 연중 제4주간 목요일 성 블라시오 주교 순교자, 또는 성 안스가리오 주교 기념ㅡ히브리12,18-19.21-24;마르코6,7-13ㅡ

 

             내공이라고 라우? 라우?

                                               이순의

 

 

내가 묵상방에서 묵상글을 쓰면서 듣게 되는 신종 언어가 있다. 처음에 한 번 들을 때는 농담으로 들었는데 그 던지는 말이 여러사람이 되고 잦아지면서 거북한 심정을 어떻게 감당하기가 힘이 들었다. 거절을 하자니 민망하고, 화를 내자니 우숩고, 그래서 그냥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달리 부정을 하자니 내 자신이 꼴통인 것도 스스로 시인이 되었다. 그래도 그 신종언어는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는 몹시 싫고 언짢은 말이다.

 

<내공이 세십니다.> <내공이 깊으십니다.> <내공이 투철하십니다.> <내공이 강하십니다.> <내공으로 똘똘 뭉치셨습니다.> <저는 님만큼 내공이 없습니다.> <님의 내공이 부럽습니다.> <내공.....> <내공.....> <내공.....> 내가 묵상방에 들어와서 나에게 인신공격을 하느라고 대자보를 써서 올렸다가 삭제한 그 묵상글보다 더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이 <내공이 어쩌고...>이다. 물론 좋으신 마음으로 해 주신 덕담인 줄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주신 덕담을 차마 거절 할 수가 없어서 받아 두기는 했지만 마실 수 없는 한 잔의 공차(空茶)임에는 분명하다. 나에게는 내공이 없다. 다만 고통이 있을 뿐이다. 나의 마음을 이겨내기 위한 고통이 있을 뿐이다. 그 고통의 무게와 슬픔은 내 자신만이 알고 있다. 그런 나에게 내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 언어를 받은 심정의 쓸쓸함이란 동토의 땅에 서서 찬 바람에도 쓰러지지 못하고 서 있는 막대기 하나의 심정이 된다.

 

어느 묵상글 보다 가장 원초적이며 너무나 사소한 묵상을 하는 내가 들어야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묵상글을 그만 써버릴까? 그런데 간밤에 전화가 왔다. 내공이 부족해서 내공을 좀 키워야 한다고!  내공을 좀 충전하고 싶다고! 그분의 전화가 진담 같기도 하고, 농담 같기도 하고, 황당하였지만 늘 그랬듯이 전화가 왔을 때는 나의 관점 보다는 정말로 그분이 내공이 필요해서 전화를 했다면 그르침이 없어야 하는 게 받아주는 나의 최선일 것이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나는 몇 일 전에 아들과 나눈 화두를 전해 드렸다.

 

환속한 신학생이 사회활동을 하는 기사를 보았다. 그냥 넘기기에는 그 기사가 주는 메세지가 엄청났으므로 그 기사를 아들에게 읽으라하고 생각을 이야기 해 보라고 했다.(이 내용은 해당되신 분을 곤경에 처할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화두를 놓고 저희 모자의 대화를 기록할 뿐입니다. 기사의 특정내용과 무관합니다.) 화두는 <신부가 되려던 사람이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을까? 그는 "이웃이 고통당할 때 아무 것도 안한 죄, 이라크 파병을 막지 못한 죄, 이웃이 굶주릴 때 흥청망청 술마신 죄....."를 열거한다.>라는 기사였다.

 

아들은 그 기사를 읽고 진지하게 답을 했다. 신부가 되려는 사람은 세상의 고통을 구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에 대하여 누구나 고민할 것이라고, 어쩌면 사제를 살고 있는 신부님들 조차도 밤에는 술자리에서 낮에는 가난한 신자들의 빈약한 헌금을 보며 그 자책감에 고민하는 고통이 클 것이라고! 제법 대견한 대답을 했다. 그것을 이해할 줄 알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화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환속한 신학생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듯이 말하는 아들에게 나는 돌맹이 하나를 던져 놓았다.

 

그렇다면 그분은 신학교에서 하지 못한 일을 환속을 해서 했는가? 세속을 살아가면서 일생동안 이웃이 고통당할 때 이웃을 구제하고, 이라크 파병을 되돌릴 것이며, 이웃이 굶주릴 때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인가? 엄마가 던져 놓은 파장에 아직은 어린 청소년의 생각은 복잡해졌다. 다시 돌을 던졌다. 그분이 했는지 안했는지를 생각한다면 답이 없다. 답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허구이다. 네가 신학교에서 그런 죄목(?)으로 환속을 했을 때 너는 세상에 나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라.

 

결국은 아직 어린 아들의 답은 길고 단순했다.

"엄마! 나는 우선 내 일자리 찾느라고 바쁘고, 이라크 파병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취직 공부해야되고, 신학생때 마신 술은 쓴 맛이었지만 단 맛으로 변했을 것 같아요. 이쁜 아가씨도 꼬셔야되고, 장가도 가야하고, 집도 사야하고, 아기도 낳아야 되고, 아이고 할 일이.... "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 신학교에 있는 신학생이, 아니면 성직을 살고있는 신부님께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이중성의 잦대를 놓아버린다면 그런 고민들이 해결되는가?

 

성서에서 과부의 헌금을 크게 여겨주시는 주님을 본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그 여인보다 가난했는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그 과부보다 가난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 과부보다 부자인 적도 없었다. 항상 그 자리에서 그만큼의 삶을 살아내신 분이며,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 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주님께서는 지금 여기 이 자리 이 상황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저기가 저래서 여기를 외면하는 이유를 단 한번도 마련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가 이래서 소중하신 분이 주님이시다.

 

나는 아들에게 이런말을 했다.

가난은 나라님도 막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려있다. 여기가 이래서 저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저기가 저래서 저기를 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된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주님의 뜻이 이것이었다 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여기에 이것이 나에게 바라시는 주님의 뜻일 것이다 라고 방향을 인도해야 할 것이다. 본당 사제는 과부의 헌금을 모아서 밤에는 비싼 술을 마셔야 한다. 왜냐하면 그 고민은 본당신부만이 감당해 줄 수 있는 고뇌이기 때문이다. 가정을 가진 가장이 과부의 헌금을 거두어서 술 마시는 고민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수도회 사제는 부지런히 강론을 써서 자신의 인생과는 아무런 해당사항도 없는 과부의 빈한한 삶을 부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것으로 구걸을 해다가 과부를 도와야만 한다. 그리고 또 좌절할 것이다. 내가 거지인가? 라고! 그런 고민은 여염집 가장이 할 수도 해서도 안되는 고민이다. 이웃이 고통당할 때 아무 것도 안한 죄를 고민해 주는 신학생이 있을 때 신자들은 열심히 삶을 살수 있고, 이라크 파병을 막지 못한 죄를 대신 가슴아파 해 주는 신학생이 있을 때 신자들은 잠시 그것을 잊고 가정에 충실 할 수 있으며, 이웃이 굶주릴 때 흥청망청 술마신 죄를 성찰하는 신학생이 있을 때 교회의 고뇌를 잊은 신자들은 교무금을 낼 의미가 깊어지는 것이다.

 

간밤에 전화를 주셔서 내공을 얻고 싶으신 분께 왜 이런 이야기를 해 드렸는지 모른다. 또 성령의 인도가 그렇게 입시울을 열었을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ㅡ있지도 않은 내공을 있는 척 하지 말읍시다. 자기 혼자만 내공이 튼튼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남들은 몽땅 골빈 강정 쯤으로 보다가 자기 풀에 힘없이 넘어가는거 아닌가요? 진정한 내공이란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에게 바라는 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시련이 와도 신앙을 놓지 않는 것이고, 성직자는 어떠한 유혹이 와도 성직의 직분을 지키는 것이고, 가정의 가장은 세상이 지옥으로 변한다고 해도 가족을 지킬 줄 알아야하고..... 그리하다보면 진정으로 큰 업적은 주님께서 인도할 것이며 사람은 단지 뜻에 따를 뿐입니다. 사람에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또 나에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끼리 무슨 내공을 바라고 얻습니까? 내공이란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이 내공입니다.ㅡ

 

내공을 얻고자 전화를 하신 분도 번지 수를 잘 못 찾으셔서 내공을 얻기는 틀리신 것 같고,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버리는 연습만 하는 내 자신은 내공의 근처에도 가본적이 없으며, 취직도 해야하고 돈도 벌어야하고 장가도 가야하는 내 어린 아들은 내공이라는 뜻도 모르고 키득거릴 것이고, 죄가 많아서 신부가 되려다 말으신 분께서도 세상을 초연해야만 하는 그 내공의 벽을 얼마나 험난하게 격으실지? 우연히 읽은 신문의 내용으로 엄마는 심각하게 화두를 삼았고, 아들은 강동거리며 복잡해라했다. 그런데 엉뚱한 전화 한 통화가 그 마무리를 장식했다. 

 

내공이라고라우? 라우?

나는 내공이 없으니께 내공있는데 가서 찾아 보시시요? 잉!

나는 내 자신도 감당하지 못 해서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모래도 내 자신과 싸우는 어리섞은 중생인디 내공이라고라우? 라우?  

알고보면 패랭이꽃보다 더 연약한 여자인데 왜들 그러신당가요? 으흐흐흑!

 

ㅡ그리고 여행하는 데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시며 먹을 것이나 자루도 가지지 말고 전대에 돈도 지니지 말며 신발은 신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신고 속옷은 두 벌씩 껴입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마르코6,8-9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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