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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64) 빚진 사람의 상념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05 조회수93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5년2월5일 토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ㅡ히브리서13,15-17.20-21;마르코6,30-34ㅡ

 

          빚진 사람의 상념

                               이순의

 

 

제목을 쓰려고 하면서 <빚진 죄인의 슬픔>이라고 했다가 지웠다. 묵상의 내용을 생각해 볼 수록 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죄를 지으려고 했던 적은 없었지만 죄인같은 심정에 놓여있기 때문에 죄를 거론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죄는 아니었다. 분명히 빚을 지고 있지만 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꼭 그만큼의 빚을 갚을 수도 없었다. 갚을 수도 없는 빚을지고 사는 사람의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밤잠을 설치며 산다는 것에 대하여 사람이 산다는 것에 대하여 또 비우느라고 상념이 깊었다.

 

나는 태어나서 얼마되지 않은 때 부터 아팠다고한다. 아기순이가 아기를 잘 못 보아서 물에 빠뜨리고 혼날까봐 말하지 못하고 숨겨버린 것이 내 운명을 결정지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때에 치료를 하지 못한 결과는 연속적인 병의 진행으로 이어졌다. 그런 질병의 진행은 아픈 나보다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짐이 되었을 것이다. 누구도 고의성은 없었지만 한 사람은 신세를 져야만 하는 쪽이었고, 나머지는 그 신세를 감당하여야 했을 것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 아픈 나를 업어 주느라고 큰언니의 키가 자라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큰언니는 유년의 추억 대부분을 나를 업고 큰오빠랑 같이 읍내 의원에 가서 매일 주사를 맞혀오는 것이었다고 한다.  잘 얼러서 업고 가지만 의원의 간판만 보여도 어린큰언니의 등에서 발버둥을 쳤다고 하니..... 내아이를 내가 업어 키우면서도 얼마나 힘들었을 큰언니의 작은 등판을 생각 했었다. 다행히 큰언니는 고등학교를 도시로 갔고 나는 중학교까지는 엄마 곁에서 살았으니 크게 형제들을 힘들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서는 작은언니랑 살면서도 통증을 이기지 못해서 참으로 작은언니를 힘들게 했었다. 작은언니는 그리 오래 내곁에 있지 않고 출가를 해 버렸고, 결혼한 새언니가 바톤을 받았다. 나의 고의성은 없었지만 참으로 긴 민폐였을 것이다. 다행히 스물두 살이 되던해에 나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긴 병고로인한 골병은 들어있었지만 분명히 완치 판정을 받았고, 지금 이렇게 건강한 아들도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늘 가족들에게 빚진 마음을 지니며 살고있다. 가족 중에 누구도 이렇게 짐스러운 나의 마음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부모가 아닌 형제들에게 짐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마음의 크나 큰 짐이었다. 철이들어갈 수록 그 비중은 깊어졌다. 왜냐하면 모두에게 유년의 추억이 있었으나 그 추억이라는 영상에 나는 항상 짐이되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막내였고 누구의 짐을 져줄 만큼 그들보다 성숙하지 않았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그만큼 어린 위치가 정해진 운명의 질서를 따르고 있어야만 했다. 그것은 지금이라고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형제도 가지가지다. 고의성이 있든지 없든지 입으로 더 나불거리는 형제가 있고, 마음이 다칠까봐 좀 참아주는 형제도 있고 그렇다.

 

그래서 나름대로는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노력을 하려고 했었다. 내 능력껏 도울 수 있다면, 진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내가 받은 것만 기억되기 보다 그들도 나에게 받은 것이 있다는 기억을 돌려주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이었을까? 언제나 나는 그들보다 여유롭지 못한 운명이었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 표시를 하지만 금새 그들은 저만큼 달아나 내 정성의 저 끝에서 티끌처럼 보고 있었다. 그래서 터득한 것이 내가 내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다. 그냥 그대로를 인정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을 먹을 때까지 상당한 고뇌를 격어야만 했다. 나에게도 욕심은 있었으니까!

 

내 작은언니는 성품이 나랑은 극과극의 소유다. 느리고, 세상사에 별 관심도 없고, 있는둥 마는둥, 그래도 아닌 것은 절대로 아닌 나의 성향에 비해 작은언니는 결벽증이 있다고 할만큼 부지런하고, 급하며, 욕심도 많고, 이치에 능한 성격이지만 앞선 박력에 비해 뒤가 무른 사람이다. 그 성격은 다른 형제들이 모두 아버지께 회초리를 맞아도 미리 꼬리를 내리고 설치기 때문에 혼자만 맞지 않아도 된다. 이 나라 마지막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수석을 했을만큼 공부를 잘했었던....... 어른이 되어서는 유일하게 나랑 가까이 살았다. 극과극의 자매끼리!

 

끊임없이 진취적인 작은언니와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나의 성격은 클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없다. 나는 나 죽었소 하고 사는 훈련을 하며 살았고 이룬 것도 별로 없다. 작은언니는 항상 뭔가를 이루려고 살아 있었고, 역시 이룬 것도 그만큼이다. 나는 결혼을 해서도 타고나지 못한 건강과 씨름하며 살았고, 작은언니는 그러는 나에게 정신력의 부재라고 했다. 그래도 결혼을 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사는 나보다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은 작은언니의 복잡한 상황에 늘 불림을 받았다. 그럴 때면 빚을 갚는 마음으로, 그렇게라도 받은 것이 있었다는 기억을 심어주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었다. 

 

그런데 몇 해 전에 나는 작은언니에게 금을 그어 버렸다. 작은언니가 나를 위해 봉사해준 게 겨우 1년 3,4개월이다고. 나 결혼해서 작은언니 성깔 받아주며 살기가 너무 지치고 힘들었으니 이제 더 갚을 것도 없고, 갚고 싶지도 않으니 그만하라고. 나보다 설흔 배도 더 잘사는 작은언니가 전화를 해서 휴대전화기라서 통화료가 많이 나오니까 나에게 집전화로 전화를 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올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조카가 그 해에 떨어져서 고통스러운 마음의 우울증을 피를 토하고 누워있는 나에게 풀려고 했던 것이다. 당연히 다음에 또 시험이 있으니 마음을 비우고 다음 기회에 잘 보면 되는걸 가지고, 피 토하는 동생에게 그렇게 호강스런 고통을 고통이라 하고 싶으냐고 윽박질러 버렸다.

 

결국은 나 때문에 못산다고 온 가족들에게 짖어버렸고, 그게 어째서 내 탓이냐고? 작은 언니 딸이 사법시험을 못 보아서 못 사는 거지 왜 나 때문에 못 사느냐고....? 그리고 나는 내 심사가 편하지 않은데 더 이상 얽히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기운도 없어서 친가쪽을 차단해 버렸다. 지금은 나도 치료가 다 되었고 작은언니 딸은 사법시험에 합격을 했고, 자랑도 할 만큼 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아주 갑자기 무쇠돌이 작은 언니가 오른쪽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다시 빚진 자의 위치로 복귀되고 있었다. 다행히 악성이 아니라서 깨끗하다고 했지만 병실에 누운 작은언니를 보고 온 나는 잠들지 못했다.

 

나는 내가 신세를 진 가족들이 아플때면 빚진 사람의 상념으로 잠들기가 어렵다는 것을 저녁 내내 밤 내내 곱씹어야 했다. 하늘이 원망스러울 수 밖에! 

 

ㅡ좋은 일을 하고 서로 사귀고 돕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요. 하느님께서는 이런 것을 제물로서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 히브리서13,16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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