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65) 혼자만 속 못 차린 신부님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06 조회수1,176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2월6일 연중 제5주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 기념 없음 ㅡ이사야58,7-10;고린토1서2,1-5;마태오5,13-16ㅡ

 

              혼자만 속 못 차린 신부님

                                             이순의

 

 

언젠가 작은 소모임에서 말씀 나누기 7단계 묵상시간이었다. 복음을 읽고 자신에게 해당되는 귀절이나 단어를 골라서 세 번 낭독한 뒤에 체험을 말하는 말씀 나누기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거의 모든 신자가 실행하고 있는 소공동체 지침이자 실천사항이다. 그날도 역시 자신이 원하는 말씀을 봉독하고 돌아 가면서 신앙체험을 이야기 하기로 했었다. 젊고 여리신 초보 신부님은 사제라는 이유로 당연히 맨 마지막에 하시기로 인도되었다.

 

각자가 선택한 단어나 귀절이 무엇인지는 자신만이 집중하여 기억했을 것이고, 교우들은 자신이 어떤 묵상을 발설해야 할지 떨리는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들 근사한 묵상을 하고 있었다. 하느님이 보이지를 않아서 실감이 안난다든지, 생활에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신앙인으로서의 모범이 실천되지 않는다든지, 기도생활을 열심히 해야 되는데 기도를 게을리 하고 있다든지....

 

나름대로 신앙에 관한 묵상들을 잘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젊고 싱싱 그 자체이신 신부님 차례가 되었다. 모두들 지금까지의 묵상을 종합해서 훈화 겸 개별묵상이 첨가 되리라고 일반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신부님이나 수녀님의 마무리는 전반적인 정리 차원에서 결실을 맺어주시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에 교우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부님께서 선택한 복음은 물이었다. 물이라는 단어가 주는 성서적 상징성은 실로 엄청났으므로 그 기대감은 더욱 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는 물을 했는데요. 냉수 먹고 오늘부터 속차리자 입니다."

모임에 참석한 교우들은 웃을 수도 안 웃을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만 말동말똥 굴리느라고 얼마나 표정들이  재미있던지! 또한 서로 얼마나 난감하든지! 신부님이 속을 못 차리면 얼마나 못 차리고, 신부님이 속을 차리면 또 얼마를 차릴 것인지? 교우들은 모두 거룩이라는 복음 묵상을 했는데 신부님만 원초적 본능(?)을 간단 명료하게 묵상하신 것이다.

 

교우들이 거룩한 척 하셔서 그렇게라도 묵상의 본질을 알리고 싶으셨는지? 아니면 정말로 냉수를 마시고 속을 차리고 싶으셨는지? 신부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모임에 오신 분들이 연세로 보나 사회의 경륜으로 보나 초보 보좌신부님의 나이에서 보면 정신이 번쩍 날 분위기였을 법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금은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제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때 그 신부님의 복음 묵상은 본심이었을 것이라고 느낄 뿐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본당신부님의 강론이 시작부터 내 머리통을 <쾅!> 치고있었다. 은퇴를 목전에 두고 계신 노사제께서 강론의 초입에 걱정을 토로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려웠던 세월을 살으셨고, 강론을 그만큼 해 오신분께서 아직도 강론을 하시면서 두려움이 있으시다고 시작을 하시는 것이다. 오늘 독서인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사제로서 위로를 받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 것을 쫓아서 사는 나는 무엇을 두려워 하고 있다는 말씀인가?

 

<제가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두 가지에서 부담을 주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하나는 나도 지지 못할 멍애를 신자들에게 지우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주님의 목적을 갖지 못한 사적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합니다. 나는 하지 않으면서 교우들에게는 하라고 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내 행실은 본 받지 말되 내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은 따라 주십시요. 그런면에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큰 위로가 됩니다.

 

ㅡ나는 유식한 말이나 지혜를 가지고 하느님의 그 심오한 진리를 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 약하였고 두려워서 몹시 떨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말을 하거나 설교를 할 때에도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을 쓰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성령과 그의 능력만을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느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고린토1서2,2-5ㅡ

오늘의 세상은 말이 부족하지 않으나 실천이 부족합니다. 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행동이 부족합니다. 좋은 말은 넘쳐나는데 선한 행동은 부족합니다. ㅡ후략ㅡ>

 

오늘 우리 본당신부님의 강론은 신앙인의 착한 행실이 빛이 되어 등경 위에 올려지는 신앙생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누군가 나서야 할 일을 아무도 하지 않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아무도 하지 않는 세상에서 "네가 바로 빛이다. 너도 할 수 있다. 네가 나서야 한다."고 하셨다. 신앙인은 신앙인 답게 주님의 계명을 비추면서 힘껏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신앙하는 나는  등경 위의 등불이 되고, 꼭 필요한데 맛을 내는 소금이 되며, 계명을 비추려고 노력할 것인가?

 

깊이깊이 묵상해 보면서 신부님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알려드리고 싶다.

<신부님! 신부님도 지지 않으신 멍애를 우리에게 지우신 적이 없구요. 주님의 목적을 떠난 사적을 요구하신 적은 더욱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의 모습이신  신부님의 강론말씀이 등경 위의 빛이 되어 저를 비추시고요. 신부님의 그림자가 우리 가운데 맛을 내는 소금이니까요. 건강하게만 살으세요. 신부님! 설 명절 잘 지내십시요.>

 

냉수를 드시고 속을 차리겠다고 하신 그 신부님께서는 지금 열심히 왕성한 성무에 열중하고 계신다. 그 젊은 신부님께서 일생을 사제로 살으신 노 신부님의 오늘의 강론을 듣는다면 어떤 복음묵상을 하실지 미사 중에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때 냉수 마시고 속을 차렸다고 하실까? 아니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냉수를 마셨는데 속이 아직도 안차려지더라고 하실까? 아니면 벌써 老신부님처럼 사도 바오로의 말씀으로 위로를 삼으실까? 히~!

 

ㅡ너희도 이와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오5,16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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