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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66) 참깨 볶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07 조회수1,18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5년2월7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ㅡ창세1,1-19;마르6,53-56ㅡ

 

        참깨 볶기

                    이순의

 

 

명절이라서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다듬고 씼고 만지고.... 해도해도 남아있는 일거리는 명절이 지나야 가닥이 서고 끝이 보인다. 어제도 늦도록 준비만 하였다. 그런데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양념이 들어가야 하는데 깨를 볶아 놓지 않은 것이다. 그냥 자고 내일 볶을까 하는 게으름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아침에 조금이라도 늦잠을 자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간밤에 자정을 넘어서 자루에 담긴 깨를 덜어왔다.

 

그런데 또 새댁시절에 집 주인 생각이 났다. 나는 부엌도 없는 베란다방에서 베란다를 부엌삼아서 살았지만 살림 살구는 내막은 내가 선생님 수준이었다. 늘 그것이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약이 오른 눈치였다. 그래도 살림 살구는 솜씨라는 게 하루 이틀에 배워질 일이 아니질 않는가?! 그렇다고 어린 나에게 물어보시면 되는데 그런 자존심은 또 여의치가 않으신 눈치였다.

 

나는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라서 일이 잘 못 되더라도 그 사람의 자존심이 개입이 될것 같으면 그냥 입을 봉하고 참는 스타인이다. 그때도 그랬다. 주인아주머니는 참깨가 필요할 때 마다 가게에 가서 작은 비닐에 담긴 볶은 깨를 사다가 드셨었다. 반면에 나는 참깨를 볶아 먹느라고 볶을 때마다 구수한 냄새를 진동하며 살았다. 그것이 주인아주머니의 마음을 쑤석거리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새댁 왜 이렇게 깨가 볶아지지 않는 거야? 좀 나와볼래?"

그래서 나가 보았다.

"아이구 이 일을 우짜노?"

아주머니는 깨를 식용유에 볶고 계셨다. 깨는 그냥 씼어서 깨만 볶는 것이다고 알려드렸다. 아주머니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셨는지 방에 들어 가지 말고 시범을 좀 보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남아있는 깨를 씼기 시작했다.

 

아뿔싸!

한 조롱박도 되지 않는 참깨를 씻으면서 조리질을 하고 계셨다. 그러니 아까운 참깨가 자꾸만 수체구멍으로 흘러들어갔다. 아주머니는 참깨를 씼는 법 부터 배워야 하는 분이셨다. 참깨를 씼으려면 <체>가 있어야한다. 그것도 발이 드문 어리체가 아니라 발이 촘촘한 세발체가 있어야한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무조건 깨만 사 오신 것이었다. 급하게 내가 쓰던 <체>를 가지고 나와서 곡식을 일어서 돌맹이는 물론 작은 모래나 미세한 흙가루까지 걸러내는 법을 가르쳐 드렸다.

 

<체>에 걸러진 깨는 물이 빠지도록 두었다가 헌냄비에 볶아내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 드렸다. 볶음질은 조리가 아니기 때문에 냄비가 쉽게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작업은 아주머니의 실패로 나의 작업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일상적으로 늘 해 오던 일이었으므로 나에게는 힘들거나 귀찮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잘 볶은 깨를 그릇에 담아드리고 나서 <체>를 들고 내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아주머니는 혼잣말을 하셨다.

 

"아이구 힘들어! 그냥 사다 먹는게 싸다 싶어! <체>도 사야지 흙가루까지 걸러내려면 힘들지 볶아보니까 계속 저어야 타지를 않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그냥 볶은깨로 사다 먹는 게 나을 것 같아!"

그후로 주인집에서는 구수한 참깨 볶는 냄새를 맡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더한 세상이 되었다. 작은 비닐봉지에 담긴 참깨가 아니라 커다란 패트병에 담겨 원산지 <중국>이라는 명찰을 달고 엄청난 분량의 볶은 깨가 대형마트에서 구멍 가게에 까지 진열되어있다.

 

그걸보면 요즘의 새댁들은 정말로 참깨 볶기 체험을 못할 것 같다. 참깨를 볶을 때 비릿한 풋냄새에서 고소하게 볶아지며 변화되는 향기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퉁퉁 불은 참깨가 톡톡 볶아지면서 기생오래비 처럼 탱글탱글하게  잘 생겨지는 외모는 더욱 못 볼 것이고, 볶아진 깨를 절구질로 빠수는 맛은 더욱 모를 것이다. 참깨건 들깨건 촘촘한 <체>에 받쳐서 씻어 건져야하고, 볶을 때는 절대로 식용유를 비롯하여 어떠한 이물질도 넣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싶다. 너무 볶아서 태우게 되면 맛이 써진다는 것도 알려드리고, 덜 볶아지면 비린 맛 때문에도 먹기가 사납다고 알려드린다.

 

냄새가 고소해지고 빛깔이 누루스름 해지며 모양이 또릿또릿 해지면 잘 볶아진 것이다. 또 깨를 볶을 때 부지런히 저어주지 않으면 깨알이 워낙 작아서 금방 타버리므로 결국에는 탄 것은 까맣게 되고, 덜 볶아진 것은 비릿해서 먹기가 역겨웁게 된다. 그러므로 잘 볶아지도록, 고루고루 볶아지도록, 부지런히 부지런히 나무나 대나무 주걱으로 잘 저어야만 한다. 가스 불을 끄고도 잠깐 계속 저어야한다. 냄비에 남은 열로 바닥에 깔린 깨만 까맣게 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간밤에 늦은 밤까지 참깨를 볶아놓고 잠들었다. 고단하여서 좀 늦은 아침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구수한 참깨 빠수어지는 냄새가 코끝에 진동을 했다. 짝궁이 먼저 일어나서 자는 각시를 깨우지 않고 볶아 놓은 깨에 절구질을 하고 있었다. 새해에도 우리 부부의 금실은 이렇게 고소할 것이다. 오늘은 종일 지짐이만 해야한다. 넉넉히 볶아놓은 참깨 양념을 잘 해서 구수하게 맛을 낼 것이다. 맛있것지롱?!

 

예수님도 성모님도 성 요셉님도 세배 받으세요. 행복한 성가정을 이루는 한해가 되시기를 빕니다. ㅡ아멘ㅡ 

 

ㅡ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기1,1ㅡ

 

<어려서 자랄 적에 친정 아버지께서는 정월 초하루에 먹은 맘을 섣달 그믐까지 변하지 말아야한다고 이르고 또 이르셨습니다. 그 말씀의 뜻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결심하신 모든 소망들이 섣달 그믐에 후회 없도록 잘 이루시기 바랍니다. 福 많이 많이 받으세요. 모든 벗님들께 사랑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ㅡ내일 묵상은 쉽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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