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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67) 재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09 조회수912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2월9일 재의 수요일(금식과 금육)ㅡ요엘서2,12-18;고린토2서5,20-6,2;마태오6,1-6.16-18ㅡ

           재

                이순의

우리가 과거의 문화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은 우리가 가지고 살아온 본질적인 문화의 상실을 불가피 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성지가지를 모아 태워서 이마에 바르는 재의 예식은 그리스도 수난시기를 알리고 있다. 우리가 모두 흙으로 돌아가 수난의 시기를 보내고 새로운 싹이 움트는 부활을 겸허하게 기다리자는 전례의식이다. 참으로 숭고한 교훈이다.

 

그리스도 종교가 대부분인 서양에서는 재의 수요일 이전에 카니발 축제가 한창이다. 내가 그 축제의 주역이 되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재의 수요일이 지난 사순시기는 금육은 물론 단식과 극기를 함으로서 모든 생활에서 자중하고 숙고해야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고통과 부활을 잘 마련하기 위한 인간들의 축제가 카니발이라고 들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가정마다 사람들마다 성대한 축제의 장식은 오늘로서 막을 내렸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의 사순시기는 그런 카니발 같은 요란한 준비도 없이 조용하게 다가온다. 그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축제의 날에 빨마가지를 대신한 전나무 가지를 흔들어보지도 못하고 그냥들고 서있다가 가지고 가서 십자가에 걸어두라 했으니 걸어두었다가 마른가지 내려서 반품(?) 하는 의식이 카니발의 전부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이렇듯이 그리스도 종교에도 이스라엘과 로마를 거쳐서 많은 세계인의 종교가 되어 이방인들과 만나고 공의회를 거치는 동안 문화적 특성이 인간 속에 녹았을 것이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대대로 몸에 밴 토속적 민간신앙의 습관이 배어있듯이 그리스도 종교를 떠나버린 서양인들에게도 그리스도 전례가 몸에 배어있다는 소식을 접한적이 있다. 그래서 열심하는 동양의 그리스도인 보다 냉담하는 서양의 그리스도인이 더 자연스럽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이마에 재를 받고 각자가 신앙의 결심 한가지씩을 가슴에 담으며 부활을 기대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민족의 재를 생각했다. 우리에게 정말로 소중했던 재! 그 재를 지금 우리 생활에서 완전하게 망각하고 사는 부분을 기억한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라도 써 두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소명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재! 재! 요즘은 다이옥신이 배출된다는 오염물질의 재! 그러나 재는 우리민족의 소중한 약재였다.

 

나 어렸을 적에는 농경사회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나와 함께 태어난 세대들이 산업으로 전환되었던 세대일 것이다. 농경사회의 부엌에는 아궁이가 이 방 저 방의 구들과 연결되어있었고, 매 끼니때 마다 불을 지펴서 밥을 하거나 조리를 했다. 그러므로 엄청난 양의 땔감을 집집마다 필요로 했고, 틈이 날때마다 땔감을 마련하는 일이 주요 일감이었다. 겨울 한철을 따뜻한 구들에서 살려면 더욱 부지런 해야만 했다.

 

땔감은 주로 자연에서 나는 재료들이었다. 볏짚에서 부터 콩대는 물론 깨를 털고 남은 깻대를 비롯해서 말라서 뻐석거리는 모든 농산물의 줄기는 땔감이 되었다. 굵은 장작은 물론 솔 가지 친 것을 비롯하여 벼 껍질인 맷재(=왕겨의 남도 사투리), 심지어 갈쿠를 들고 가서 소나무에서 떨어진 마른 솔잎을 모아 드럼통 모양의 동치(드럼통의 두 배크기였음)를 만들어(일명 갈쿠나무라고 했음) 산에서 이고 내려오는 괴력을 동원 하면서까지 땔감으로 썼다. 

 

자연이 제공한 탈 수 있는 모든 것은 땔감으로 저장 되었다. 자연을 태우며 그 아궁이 앞에 앉아서 찜질을 하고, 그 구둘에 누워서 잠을 자며, 다이옥신에 오염될 일이라고는 전혀 없는 안전한 굴뚝냄새를 마시며 살았다. 그야말로 요즘에 유행하는 웰빙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땔감에는 반드시 부산물이 있었다. <재!> 아궁이 안에는 항상 재가 있었다. 마당 가에도 재가 있는데 그 재는 온갖 생물들을 썪혀 발효시킨 두엄 재를 말하고, 아궁이 안에는 자연이 타고 남은 재가 있었다.

 

저녁을 짖고 먹고 치우고 나서도 아궁이 안에는 시뻘건 불기운이 버티고 앉아 있었다. 겨울에는 저녁내내 구들을 데우면서 홀로 식어갔을 것이다. 방안에서는 그 뜨신기운에 곤한 피로를 풀고 누웠을 것이고! 아침에 밥을 지으려면 아궁이의 재를 퍼 내야 불을 지필 수 있다. 아궁이에 재가 가득하면 불기운이 제 실력 발휘를 못하고 땔감만 축을 낸다. 아궁이의 불꽃도 높이가 맞아야 밥도 잘 되고 구들도 잘 달구어진다.

 

볏짚으로 만들어 한쪽은 막혀있고 한쪽은 터져있는 재송쿠리와 당굴게를 가지고 부뚜막에 앉아 아궁이를 들여다 본다. 쌓인 재의 표면은 하얀 가루가 점쟎을 부리며 다소곳이 앉아있다. 재송쿠리를 아궁이 입구에 바짝대고 당글게를 아궁이 깊숙히 넣어 쌓인 재를 당긴다. 재들의 반항은 일제히 먼지로 일어난다. 그래도 달래고 또작거려서 재송쿠리에 눌러 담는다. 그런다고 가만히 숨 죽을 재들이 아니다. 

 

재송쿠리를 들고 재간에 까지 가는 것이 문제다. 바람부는 날에는 날아서 흩어지는 재가 반이었다. 그래도 퍼내야 한다. 아궁이에서 타고 남은 재는 그렇게 날아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특별히 지붕이 있는 변소 옆이나 헛간에 마련한 재간에 모았다. 그 재는 소중히 소중히 모아진다. 어쩌다가 간혹은 그 재의 불기운을 끄지 않고 재간에 뿌려놓았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어린 기억이 있다. 또 재를 바로 재간에 비우지 않고 송쿠리에 담아둔 채 게으름을 피웠다가 짚으로 만든 재송쿠리에 불이 붙어서 불구멍이 뽕 나있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는 송쿠리와 아궁이 깊숙이 들어가서 재를 긁어 내오는 당글게는 짝궁이다. 부엌살림살이 중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되는 가재도구였다. 여름에는 구들에 불기운이 계속있지 않게 하기위해서 시뻘건 불이 이글이글 타는 재를 당글게는 아궁이 속까지 들어가서 긁어내야 했다. 재송쿠리는 뜨거운 불덩어리를 받아야만 했다. 그럴 때면 바가지가 물을 담고와서 즉시 뿌려 주었고 뜨거운 재먼지는 사방으로 흩어져 피식피식 소리를 내며 기가 죽었다.

 

그렇게 모은 재는 완전한 순도의 깨끗 자체였다. 숯가루나 다름 없었으므로 소독은 100%였고, 땅의 독성을 제거해 주는데는 특효약이었다.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는 가끔 아궁이 속의 벽에 붙어 검게 굳은 재를 긁어서 물에 타서 마시기도 했다. 독한 약에 시달리는 뱃속을 깨끗하게 정화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요즘 사람들이 웰빙이라며 숯가루를 타 먹는다고 했을 때 우리집 안방의 아궁이 속에서 굳은 재 보다 더 좋은 약을 구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재간에 모아진 재는 요산과 만난다. 변 덩어리가 훤히 보이는 똥통을 바라보며 소피를 보기 싫은 사내들이 가는 입자의 재 위에 줄 그림을 그려 놓는다. 그래서 재는 늘 촉촉해 있었고 특수 조제약이 되어 1년에 두세 번씩 귀한 몸으로 논이랑 밭에 뿌려졌다. 과학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모르나 아버지는 특수 작물을 하시거나 땅에 기운이 없는 논이나 밭에 아궁이에서 나온 부엌재를 뿌리게 하셨다.

 

우리민족이 일구고 살아온 농경사회에서의 재는 이렇게 소중하고 아낌을 받았었다. 요즘은 재도 믿을 수가 없다. 그 재 속에 무엇을 태워서 남긴 재인지를 못 믿기 때문이다. 페인트 칠이 덕지덕지 붙은 가구의 잔해인 목재를 태웠는지 어쨌는지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재는 그냥 흙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흙을 소독해 주고, 치료해 주고, 보약까지 되어주며 흙으로 돌아갔다. 그런 재가 되어야 하는! 아니 그런 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 재의 예식이 오늘 있었다.

 

오늘 내 머리에 얹어진 재를 받고 나는 소독이 되고, 치료가 되며, 보약이 되었을까? 그렇게 드넓은 땅에 그렇게 조금 뿐인 재를 받은 땅은 주인의 처방에 약효를 발휘했을 것이다. 그래서 농군들은 실망시키지 않는 땅이 아프면 그렇게 조금인 약가루를 뿌려주었을 것이다. 오늘 내 이마에 재를 받으며 예수라는 농군이 뿌려주시는 재로 약발이 설지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아프다. 너무 많이 아프다. 재처럼 흙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재는 소용없고 돈이나 좀 많이 벌어서 살고 싶다고 기도했다.

 

재의 수요일에 겹쳐 정월 초하루를 맞았으니 흙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던 사순절의 맹세보다 한 해의 운수대통을 청하고 말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많이 아프다. 흙으로 돌아가기는 싫고, 로또복권에 당첨되어 금방석에 앉고 싶다고 빌었으니 이놈의 병이 언제나 나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약효를 원하므로 재는 꼭 받았다. 주님의 십자가에 아껴붙여 둔 땔감을 태워서 재를 꼭 받았으니 올 해는 좀 철도 나고 약발도 서기를 바랄 뿐이다.

농사꾼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ㅡ주님께서 당신의 땅 생각에 가슴이 타고, 당신의 백성 불쌍한 생각이 드시었다. 요엘2,12-1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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