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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슬라이딩 도어즈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0 조회수888 추천수8 반대(0) 신고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2/10)






    독서: 신명30,15-20 복음: 루가 9,22-25 슬라이딩 도어즈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는 예기치 않은 일로 일찍 퇴근하게 된 여자가 지하철을 탔을 때의 상황과 못 탔을 때의 상황이 서로 엇갈려 나오는 이야기이다. 지하철 문(sliding door) 하나 차이로 -이런걸 우리말로는 간발의 차이라고 하지만- 여자의 인생이 백팔십도 달라지게 되어있기에 흥미가 있다. 여자의 집에서는 그시간 동거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수상한 짓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찍 도착해 그 광경을 목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녀의 인생이 갈라지게 된다. 우리 삶도 이런 엇갈림이 없었으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아도 저절로 닫혀진 슬라이딩 도어즈 말고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던 도어즈에 따라 우리 삶은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켰을까? 되돌아보면, '아!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더라면....'하는 후회와 '그래, 그러길 잘했어.'라는 안도가 과거의 순간들을 회상할 때마다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안도감과 후회감의 비중에 따라서 지금의 상태가 '행복하다' 또는 '불행하다'고 갈라지는 것은 아닌지... 신명기의 저자들 역시 자기 백성의 쓰라린 역사적 비극을 돌이켜보니, 하느님 말씀과 계명을 따르지 못했다는 후회가 너무 컸다. 비극의 원인은 오직 말씀을 거스른 자신들의 탓인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을 수백년 거슬러 올라가, 모세가 다시 살아나서 마치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백성들에게 하는 유언처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신명기다. 말하자면 그때 제대로 열고 들어가지 못했던 '슬라이딩 도어즈'를 새삼스럽게 열어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은 이미 놓쳐버렸지만 이 말을 듣는 후대의 사람들은 절대로 자기들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보아라. 나는 오늘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을 너희 앞에 내놓는다. 내가 오늘 내리는 너희 주 하느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너희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가 지시하신 길을 걸으며 그의 계명과 규정과 법령을 지키면 너희는 복되게 살며 번성할 것이다.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려는 땅에서 너희 주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누릴 것이다." 마치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들에게 간곡히 부탁하며 자신의 불행을 반복하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부모들처럼.. 신명기계 역사가들은 그리짐산(초록의 풀밭으로 되어 있는 산)을 가리키며 축복을 선택할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반대로 하느님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곁에 있는 에발산(돌무더기만 있는 불모의 산)처럼. 멸망만 남게 될 것이라며 백성들에게 위협도 하며 마음을 다그친다. 인생 길에서 만나는 매 순간의 갈림길.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할까? 우리 인생의 청사진도 그리짐산과 에발산처럼 그렇게 선명했으면,
    그리고 그 청사진을 미리 다 보여주면 누가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으랴. 그러나 우리 생은 마치 복잡한 사다리 게임 같아서 그 길이 이 길 같고, 저 길보다 이 길이 옳은 길 같으니 헷갈리고 헛다리를 짚는 것이겠지. 그럴 때 한가지 해답이 있다고 오늘 복음은 이야기 한다. 예수께서는 수난예고를 하실 때마다 수난의 길에는 반드시 영광의 길이 뒤따른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이 말씀은 생명, 행복, 축복의 길은 반드시 고난의 길을 통과해야만 얻어지는 길이라는 것이다. 인간을 가장 사랑하시는 분, 인간 때문에 목숨을 바치시는 분이 그분이신데, 쉽고 편한 길이 있다면 그 길로 인도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러지 않으시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 길이 돌아가는 길처럼 보여도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편하게만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살아서는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당장엔 힘들고 고단하지만 어려움을 헤쳐나가도록 자녀들에게 교육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그분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한 두 번이 아니고 매일 우리 앞에 놓여진 갈림길 마다에서 매번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란 자명하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생명의 길처럼 보이던 것이 사실은 죽음의 길이요 죽음의 길인 듯 보이던 것이 실은 생명의 길이라는 것이 아닌가. 오늘, 우리 앞에는 어떤 문들이 놓여있을까? 어디로 들어가야 생명으로, 축복으로, 행복으로 꼴인할 수 있을까? 복음에서 말씀하시듯 지금 당장 목숨을 내놓을 일은 사실은 그리 많지 않다. 기미년 삼월일일은 그렇게 흔히 오는 법이 아니다. 어떤 역사적 결단의 비중있는 순간에만 선택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일 선택하라는 것이 아니라 매일 선택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오늘 이 순간, 을지로로 갈지, 영등포로 갈지, 그런 사소한 선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매번의 사소한 선택에서 편리함, 쾌락, 안락만을 좇지 말고 조금 덜 재미있는 것, 조금 힘든 것, 조금 더 어려운 것을 선택하라는 말씀이다. 드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흥미진진한 사이트를 다 제쳐두고 지금 이렇게 딱딱하고 재미없는 사이트를 방문하신 그런 탁월한 선택을 매 순간 하시라는 말씀이시다. 매순간의 매일이 결국은 나의 일생을 선택해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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