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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식의 虛와 實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1 조회수1,202 추천수6 반대(0) 신고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세계 병자의 날)(2/11)






    독서 : 이사 58,1-9ㄱ 복음 : 마태 9,14-15 단식의 허와 실 1. 구약에서는 무엇 때문에 단식을 했는가? 2. 예수께서는 왜 단식하지 않으셨는가? 3. 예수께서도 하지 않으신 단식을 우리는 왜 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들을 수 있는 독서와 복음 말씀이다. 1.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의무적으로 일년에 한번 단식을 해야하는 날이 있었다. (레위 16,29-30;23,27-32) "죄를 벗는 날"인 속죄의 날에는 전 국민이(종들도 포함) 단식해야 하고, 어떠한 일을 해서도 안되는 날이었다. 그날은 모든 죄를 벗겨 주는 은총의 날이었므로 오로지 주님 앞에서 참회하고 회개하는 일에만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죄지은 사람이 밥을 꼬박꼬박 찾아 먹는다는 것이 어느 나라 사람의 정서에도 어긋나나보다. 더구나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는 자리에서는 더구나 말할 것이 없다. 이렇게 참다운 회개를 겉으로 표현하던 단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질되어갔다. 독서에서 이사야는 "속죄의 날"조차도 돈벌이에 눈을 밝히고(原-제 일만 찾고) 일꾼들에게 마구 일을 시키며, 시비와 싸움질, 폭력조차 서슴지 않는 이스라엘의 죄상과 악행을 고발하고 있다. 이것은 단식의 정신은 훼손되었고 단지 외적인 행사의 하나로 변질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도 마찬가지로 속죄의 날, 의무적으로 단식을 해야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매주 두 번씩 단식함으로써 율법이 정한 것보다 백 배의 열심을 드러냈다. 하느님께 더 기쁨을 드리고 싶다는 애초의 생각은 점차로 다른 사람들보다 백 배로 열심한 사람들이라는 자만심을 쌓게 되었고, 다른 이들과는 구별된, 분리된 者(바리사이의 뜻)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과 그의 제자들도 회개했다는 표시로 자주 단식을 했고 사막에서 극기와 금욕적인 생활을 자청했다. 소위 하느님과 가깝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단식과 고행과 같은 엄격한 계율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은 먹고 마시고 단식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요한의 제자들이 찾아와 그 이유에 대해 묻는다. 예수께서는 "잔치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하고 대답하신다. 무슨 말씀인가? 유다인들은 종말에 이루어질 구원을 "잔치", "혼인잔치"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사 61,10; 62,5) 죄를 벗기 위해 참회의 표현으로 단식을 하기도 했으나, 종말에 있을 최종적인 구원(잔치)을 기다리며 단식을 행하기도 했다. 최종적인 심판의 날을 기다리던 세례자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행했던 단식은 주로 두 번째의 의미에 해당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종말에나 이루어질 구원의 잔치가 지금 당신과 함께 왔고, 당신이 주최자인 신랑이며 제자들은 신랑의 친구들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기쁜 잔치에 어떻게 단식을 하고 있겠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고 계시는 동안은 혼인 잔치와 같은 기쁨의 때이므로 마음껏 그 기쁨을 누려야 한다. 3.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그들 곁을 떠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때가 곧 올 것이며 그 때에는 또 다른 의미의 단식을 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신다. 즉 예수님의 죽음을 기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시기를(재림) 애타게 기다리는 의미에서의 단식,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단식을 말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단식을 엄격하게 지켜서 저녁 한끼만 먹되 채소, 생선, 계란에 한해서 먹을 수 있었으나, 그것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차로 완화되어 갔다고 한다. 이처럼 간단하게나마(?) 단식에 대한 변천사와 의미를 살펴보았다. 비만이나 건강관리를 위한 소식(小食)과 다이어트가 유행하는 요즈음, 그리스도인의 단식은 음식을 절제하고 굶는 단식 자체보다도 오늘 독서에서 이야기하듯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단식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것은 곧 독서가 말하고 있는,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 주고 멍에를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즉 이사야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는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주님은 더욱 기뻐하신단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내적인 충실성과 정신을 강조하다보니 외적인 것이 오히려 소홀한 것은 아닌지도 반성해본다. 어떤 때는 외적인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핑계를 대면서 외적인 것도 행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같은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면 주님은 다시 말씀하실 것같다. 단식 그 자체의 외적인 중요성에 대해서도... 떼제- Wait for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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