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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68) 장례식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1 조회수1,157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5년2월11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세계 병자의 날)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허용ㅡ이사야58,1-9ㄱ;마태오9,14-15ㅡ

 

         장례식

                   이순의

 

 

정초인 초이틀과 초사흩 날에 문상을 다니느라고 바빴다. 한 분은 정월 초하루 날에 세상을 하직 하시느라고 바쁘셨을 것이고, 한 분은 정월 초이튿 날에 세상을 등지시느라고 분주하셨을 것이다. 초하루의 상가는 천주교인이었고, 초이틀의 상가는 개신교인이었다. 두 분께서 그리스도를 믿으시는 신앙인이셨다. 천주교인은 따님이 수녀님이시고, 개신교은 교회장을 하실만큼 신앙이 돈독하신 장로님이셨다.

 

정초부터 장례미사에 갈때 입으려고 장만해 둔 장례용 검은 옷을 꺼내 놓았다. 내가 매일미사를 다닐 적에는 어느 날에 본당에서 장례미사가 있는지 쫙 꿰고 있었으므로 싼거라도 장례미사용 의복을 장만해서 입었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평일미사를 궐하고 있었으니 옷들도 깊은 장농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오랜만에 너무나 오랜만에 참례하는 장례식이었다.

 

마음으로 경건한 침묵을 준비하며 어제 초이튿 날의 상가에 갔다. 연도를 받치고 향으로 분향을 하고 절을 올리고 물러났는데 희희낙락은 아니지만 상가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눈치였다. 눈물이 많은 나는 남들 앞에서는 잘 울지 않지만 혼자 앉으면 한없이 한없이 그치지 못하고 우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남의 서러움을 보고 돌아서면 그 서러움이 내것이 되어 복받쳐 오를 판인데 분위기가 평온해서 위로차 들렸던 내가 오히려 평화로울 수 있었다.

 

오늘 초사흗 날의 장례는 개신교회에서 하는 교회장이었는데 흰국화 한 송이를 분향하고 돌아서니 너무나 간단하였다. 절도 없고 연도도 없고 그저 주님께 고인의 영면을 위한 묵념이면 만족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상가도 너무나 소박하리만치 평화로웠다. 눈물 많은 내가 참고와서 울어드려야 할만큼 비통한 상가가 아니었다. 정초부터 혼자 앉아 인생무상이라는 제 설음에 얼마나 얼마나 울어야 할지를 걱정했는데 울지 않아도 된 것이다.

 

두 분의 가족들은 맹인(=망인)께서 복이 있었다. 라고 하셨다. 정초였으니 임종은 제대로 받으신 복이 있으셨던 어른들이라고 하셨다. 늦게까지 책임을 져야할 자식도 없었고, 너무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신 안타까움은 더욱 없었다. 천수를 다 하셨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이 나서 살다가 가야 할 곳을 제 때에 잘 찾아가신 호상가였던 것이다. 어린자식들을 두고 가버린 한 많은 상가도 아니었고, 명절에 재산싸움으로 총질을 난사한 가족의 합동 장례식을 해야하는 비통의 원한은 더욱 없었다.   

 

말하자면 죽음이 기쁨인 상가! 조용하고 편안하고 안심이며 두렵지 않은 죽음을 이별하고 올 수 있었다. 예전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곡을 요구했었다. 일정한 소리와 음폭이 강한 음정을 담아 <어이~ 어이~ 에고~ 에고~! 어이~ 어이~ 에고~ 에고~!> 라는 곡소리를 잘해야 상가의 위신이 선다고 했다. 곡을 잘하지 못하면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슬픔이 없는 후레자식들으라고 지천을 들어야만 했다. 그만큼 상가의 곡소리는 상주들에게 많은 시름을 더해주었다.

 

맹인께서 임종하시는 마음의 고통은 그 충격이 크든지 작든지 상주들에게 시름이 컸을 것이다. 장례절차와 오시는 문상객들에 대한 예의를 비롯하여 시시때때로 곡을 해야만 하는..... 그것도 남들이 들어서 슬픔이 느껴질 정도로 운율과 서러움이 밴 곡을 해야 했었다. 그런데 올해 정초에 다녀온 상가에서는 나에게 그런 슬픔을 주지 않아서 오히려 내가 맹인들께 감사의 묵념을 드리고 돌아왔다. 

 

나는 노모께서 양쪽에 계신다. 친정어머니는 큰오라버니께서 든든하시니 걱정을 끄고 살아버리지만 시모님은 내 도리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어머님께서 나에게 하신 오류에 분노를 했었다. 그런데 나의 분노가 식기도 전에 어머니는 그런 잘못들을 망각해버리신 것이다. 맛난 것을 해다 드리면 좋아하시고, 얼굴보면 반가워 하시고, 돈 드리면 힘이 나시고, 오시라고 하면 생기가 날고..... 내 기억의 분노만이 허공에 머물뿐이었다.

 

아직은 젊은 나의 기운이 원망을 한다. 원망보다 더한 미움도 들어서 찍어놓은 사진보다 더 선명한 치를 떨다가 메아리도 없는 허망이라는 구렁창에 빨려들어간다. 사람이 저렇게! 사람이 저렇게 쉽게! 사람이 저렇게 쉽게 희미해지는 것을!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가 되면 세상사 잘잘못이 무엇인지 더욱 분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저 사람이 내 큰자식이란 끈만 꼭 잡고 놓지 않을 뿐! 당신 몸 담을 그릇으로 나를 점지하시는 바가 뚜렸할 뿐! 만사가 덧 없고 황망하다.

 

어머니께서 눈 감고 누우시면 마음 속으로 해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어머니 아들 따라 사느라고 너무 힘들었어요. 어머니가 이 못난 며느리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나도 우리 어머니 장례식에는 편안하고 싶은데 불효자라서 그러지 못할 것 같다. 

 

ㅡ잔치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마태오9,15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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