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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2 ) 성지에서 만난 수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3 조회수942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 글은 작년 5월 저희 본당 게시판에 썼던 글인데 묵상방에 올립니다.

 

   ( 성지에서 만난 수녀님 )

 

며칠전 나는 세번째로 갈매못 성지를 찾게 되었다.

아들 아이 복무지가 갈매못 성지 더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되어 새로 이사한 관사도 볼겸 보령에 내려갔다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수는 없는일, 다시 성지를 찾게된 것이었다.

언제나처럼 고즈넉한 성지는 너무도 정갈한 모습 그대로였다.

어머니 품안처럼 포근하고 정겨운 성지였다.

 

단풍나무는 자주색 잎이 전날 내린 비에 씻겨서인가 먼지 하나없이 윤이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등나무밑 마루에 앉아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취해 있는데 수녀님 한분이 사제관 쪽에서 나와 본당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화장실에 가던 길에 수녀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친절하고 고운 모습으로 반겨주시는 수녀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근소근 속삭이듯 나즈막한 음성으로 이야기하는 수녀님의 모습이 어쩌면 그리도 성지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고결해보이던지 새삼 세속의 때에 절은 자신의 모습과 말투가 너무도 거칠게 들어나는듯 싶어 면구스러워지는 것이었다.

 

오전에 오십여명의 순례자가 다녀갔다고 하는데도 성지는 티끌하나 없이 깨끗했다.

일손이 없어 수녀님이 풀을 뽑고 청소도 하시는것 같았다.

그래도 병원에 줄곧 계시다가 이곳 성지에 와서 순교성인들과 함께 거하게 되어 그렇게 평안하고 기쁠수가 없다는 수념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진정한 한 수도자의 모습을 보는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짐을 느꼈다.

 

수녀님께선 본명도 묻고 본당도 묻고 가족들의 신앙에 대해서도 아들아이 여자친구가 있는지도 자상하게 관심을 가지고 물으시며 결혼하기 전에 영세받고 혼배성사도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는데 그때서야 난 깨달은게 있었다.

그때까지 난 단 한번도 아들에게 신앙을 권유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오랜 냉담끝에 다시 믿음을 찾게된 것이 아들때문이었고 아들을 살려주신게 주님과 성모님께 매달린 기도덕이었다고 믿으면서도 왜 단 한번도 그런 권유를 하지 않았을까?

 

믿음을 갖기까지가 너무나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는 것만 의식하고 그 어려운 과정을 자식에게까지 겪게하고 싶지 않았던건 아니었을까? 나 혼자만 믿고 기도하는 것으로 가족들의 안위만을 바랐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보니 수년동안 기도하면서 늘 가족, 특히 아들아이에 대한 보호와 은총만을 염원했지 단 한 번도 내 아이가 주님안에 인도되어 신앙인으로서 살아주기를 기도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도가 지극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아들을 위한 기도를 이제 수정해야할 것 같다.

늘 하던 기도, 교통사고를 비롯한 모든 위험한 것, 어찌보면 세속적인 것들로부터의 안위만을 보호받기 바랐던 기도에서 진일보하여 영혼을 인도받는 어떤 신앙적인 것으로의 기도를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꾸준히 바쳐야겠다는 생각이다.

지금 당장은 신앙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듯 하지만 언제나 사람은 변하는 것이란걸 나 스스로의 체험으로 알고 있으므로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아들아이가 성지근처로 오게 된것도 예사롭지 않고 가끔 시간이 나면 주위 명소들을 둘러보는 중에 갈매못성지에도 몇번 왔었다는 얘길 듣고 어쩌면 어떤 끌림이 있었던게 아닐까 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보기도 한다.

 

차있는 곳까지 오시어 작별인사를 해주시는 수녀님이 너무나 감사하다.

아들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수녀님이, 내가 잊고 있었던 중요한 무언가를 깨우치게 해주신 성지의 수녀님이 너무나 감사하다.

그동안 객지에 나와 외따로 떨어진 관사에서 혼자 기거하는 것도 너무 걱정되고 주말마다 장거리를 오가는 주행도 걱정되고 했는데 이번엔 집들과 가게들이 즐비한 길가에 관사가 있고 무엇보다 바로 등뒤에 파출소가 있어 오랜만에 마음이 탁 놓이는 느낌이었다. 가까운 곳에 성지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라 여겨졌다.

환히 웃는 얼굴로 수녀님께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아들을 보면서 누구에게랄것도 없이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해옴을 느꼈다.

 

                       (2004년 5월 23일 작성)

 

이 글을 쓴지도 거의 일년이 가까워 옵니다.

기도중에 아들의 신앙을 위해 기도했지만 아직 입교시키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가 영세받은 신자라는걸 작년 가을에 알았습니다. 그 어머니도 열심히 성서공부하러 다니는 신자라고 하더군요. 만일에 그 여자친구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머지않은 훗날 입교가 가능하지 않을까도 생각됩니다. 요즘 젊은 남자들 대개 아내가 하자는 대로 이끌려간다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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