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조영남의 걸림돌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4 조회수1,157 추천수8 반대(0) 신고


사순 제1주간 월요일(2/14)






    독서 : 레위 19,1-2.11-18 복음 : 마태 25,31-46 조영남의 걸림돌 우리 집에는 십 오년을 함께 동거동락한 개가 살고 있다. 혈통이 내로랄 것은 없는데 그래도 무척 영리하다. 큰애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에 온 녀석은 아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헌데 그애가 올해 대학을 졸업하니, 벌써 오래 전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하루종일 저 혼자 빈집을 지키고 있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다가 주인이 돌아오면 얼마나 기뻐하는지 거의 숨이 막히는 듯, 짖지도 못하고 꼬리만 치면서 배를 보이며 드러눕는다. 어느 날인가 당연히 반갑다고 마중나와야 할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이 방 저 방 찾아다니다, 식탁 밑에서 간신히 찾아냈는데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팔을 내밀어 끌어내려는 순간, 양말이 젖었다. 노란 물! 결국 그것 때문에 어두운 곳에 숨어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빈집에 혼자 있으면 평소에 하지 않던 못된 짓을 가끔 했고, 그때마다 녀석은 스스로 자신의 '죄악'(^^)을 잘 알고서 숨어있었다. 나는 마태오의 최후의 심판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바로 녀석의 행동이 생각난다. 최후의 심판은 주님이 "너는 이쪽, 너는 저쪽"하고 호명하기도 전에, 기쁘게 주인을 맞이하느냐? 스스로 어둠 속에서 나오지 못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주님이 양과 염소의 편으로 가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따지고보면 그동안의 자신들의 행적으로써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심판의 열쇠는 이미 자기 손에 들고 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오른편, 왼편으로 갈라지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웃-그것도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이웃이라고 여겼던-에 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을 어떻게 실천했는가에 따라 갈라진다는 것이다. 독서 역시 이웃에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결론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유명한 구절이 관건이다. 언젠가 TV에 조영남씨가 나와서 이 세상에 훌륭한 성인들이 많지만 대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상한선을 정해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마라." "네가 받고 싶은 것만큼 남에게 먼저 해주어라." 소위 어느 종교에도 있는 말이기에 황금률이라고 부르는 이런 말들은 이성적으로 이해가 가고 실천할 수도 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네가 남에게서 받고 싶은 것은 하고, 받고 싶지 않은 것은 안하면 그만인데..." 즉 주고 받고(give & take)의 원리가 적용되는데, 문제는 예수씨!란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사랑하라" 아니, 이웃은 그만두고 원수까지 사랑하라!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내주어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까지 내어주라! ?????? (말이 안나온다는 조영남씨. 고개를 흔들며 어깨짓만 했다.) 한마디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자기 아내들도 자기 몸처럼 사랑하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진실일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그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님을 존경은 하지만, 그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는 있지만, 그의 뒤를 따르지는 못하겠다는 것이 조영남씨의 말이다. 그가 존경한다는, 그와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김용옥 교수도 예수가 존경받아야 마땅한 위대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여기까지가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위대한 성인으로서의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목격하기 전의 제자들의 모습 역시 그러했다. 부활을 수없이(40일간) 되풀이 목격한 증인들은 비로소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의 뒤를 진정으로 따르게 되었으며 그분이 이야기했던 불가능한 계명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승천 후, 성령께서는 지나간 수십 세기 동안에 많고 많은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의 삶 안에서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이끄셨다. 지나간 세기는 그만두고라도 우리의 눈으로 그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던 마더 데레사와 같은 위대한 여인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와 동시대를 살면서, 음지에서 자신을 버리고, 이웃을 위해 살고 있는 수많은 숨어있는 성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이 아니라, 자기 몸보다 더 사랑하며 살고 있다. 조영남씨가 이야기하는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믿어지는 그 계명들은 정말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이(바로 마태오의 신학) 이끌어주시는 힘에 의해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일반인이 볼 때 불가능하다고, 말도 안된다고 하는 생활을 신앙인은 해내고 있다. 아니, 그 신앙인과 함께 하시는 주님이 해내시고 있다.
    하느님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 하느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이 불가능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오로지 하느님을 체험한 당사자만이 알 것이지만 그들의 살아온 흔적이 그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마태 11,19) 실은 당신이 하시면서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주님의 의도는 우리가 그 사랑을 배워, 사랑의 사람들이 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사랑의 사람들이 열어가는 사랑의 세계를 만들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결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는 주님. 결코 크고 놀라운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는 주님. 매일 만나는 나의 옆에 있는, 나의 눈에 띄는 사람들 하나 하나를 내 몸처럼, 당신처럼 여기며 보살피라는 오늘의 가르침이다. 주님, 오늘 저와 함께 하셔서 저도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소서. ♬ 시편 제1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