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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과 한마음 되어 바치는 기도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5 조회수923 추천수9 반대(0) 신고


사순 제1주간 화요일(2/15)






    독서 : 이사 55,10-11 복음: 마태 6,7-15 예수님과 한마음 되어 바치는 기도 하루에 서너번씩은 하는 '주님의 기도’이다. 그래서 아무 감흥도 없이 '빈말을 되풀이하기’딱 좋은 기도이다. 너무 가까운 것은 아무렇게나 생각하듯이 '주님의 기도’야 말로 신자들에게 가장 푸대접받고 있는 기도는 아닐까?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진심에서 나오는 기도여야 빈말이 안될텐데... 누군가 가르쳐주는 기도를 따라 하면서도 빈말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려면 가르쳐주는 이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과 합치해야 할 것같다. 그러므로 이 기도를 가르쳐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오늘은 새삼 조금이나마 헤아려보고 싶다.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은 '초월적인’, '거룩한’분이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의 첫부분에 해당하는 세 개의 청원기도는 그러니까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극히 높으신, 차원을 달리 하는 분에 대한 청원인 셈이다. 어떤 의미론 우리와, 또는 이 세상과는 무관한 분, 초월적인 분에 대해 무언가를 청원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그런데 그 다음의 말이 이 분을 우리와 절대로 무관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의 보호자임을 명백히 하며 그래서 마땅히 우리가 무언가를 청원할 수 있도록 연관지어 주신다. 바로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 그 높으신 분, 거룩하신 분이 내 '아버지'시다. 그분은 내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아버지시다.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고..." 이렇게 예수께서는 온 세상이 그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느님으로 받들게 되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셨다. 예수님의 두 번째 소원은 이제 더이상 그분의 나라와 세상이 서로 구분되지 않고 하나가 되는, 그것도 먼 미래에 어떤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 일을 위해 당신께서 오셨으며 그래서 첫 복음의 선포도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의 세 번째 소원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온 세상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되면 아버지의 뜻은 자동적으로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세가지 청원기도는 우리가 그렇게 바라고 기도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무엇보다 먼저 명심하라는 주의 사항이 앞에 달려 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그렇다.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멀고, 우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초월적인 그분이 이미 당신의 신분을 비우고 그렇게 해주기로 작정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가지의 청원이 이루어질 때, 이 세상은 그야말로 '천국’이 될 것이다. 그러니 또 무엇을 바랄 것인가? 주님은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것이다. 천국을 이제 가져가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두 번째 부분의 네가지 청원기도가 아직 남아있다. 왜인가? 온 세상에 가득한 천국을 "네가" 가져가는 데에 필요한 몇 가지 기술적 방법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내일, 모레 두고두고 필요한 양식을 청원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야 천국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매일매일의 육적인 영적인 양식을 매일 아버지에게 청원한다는 것은 그만큼 아버지를 신뢰하고 의탁한다는 것이며 아버지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탁하는 자녀의 삶은 아버지가 보장해주신다는 말이 되겠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가 천국을 살지 못하는 또 하나의 커다란 이유를 서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고 보신 예수님.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이 잘못을 빌었는가 아닌가의 이야기는 묻지도 않는다. 결국 그들을 용서하는가 용서하지 못하는가는 전적으로 내게 달려있다는 말씀이다. 즉 나의 선택에 따라 내가 천국을 가져갈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용서에 대한 필요성을 재삼 재사 다시 강조하시는 것(14-15절)을 보면, 용서가 쉽지 않음을 주님이 먼저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에 대해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래야 우리가 진정한 천국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우 어렵지만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은 더 큰 잘못, 더 큰 죄악을 용서하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앞 부분에서 절대 못한다고 꼭 쥐었던 주먹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에서 슬그머니 풀어지게 만드는 주님이시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얼마나 희망적인 말씀인지 모른다. 그 높으신 분이, 전능하신 분이 당신과는 전혀 다른 허약한 인간의 약점과 한계를 먼저 이해하고 계시다는 것이.... 우리에게 오는 모든 유혹들은 사실 우리가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먼저 알고 계시는 전능하신 분께 요청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아버지와 함께 하지 않고 혼자 해결해 보겠다는 데에서 미혹에 빠지게 되지 않는가. "악에서 구하소서" 주님이 마련하신 천국을 '내가’ 살게 하는 몇가지의 방법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힘을 능가하는 불가항력의 세력, 모든 방해요소들에서 구하여 달라는 마지막 기도이다. 인간이 자기 힘만으로, 자기의 노력만으로 안되는 여러 가지 사회적, 구조적인 힘도 분명히 있음을 아시는 주님은 그것에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내려 오셨다. 이렇게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주님은 먼 하늘에 계시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수수방관하시는 주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고 염려하시고 보호하시며 기도하시는 분이심을 가르쳐준다. 이제 우리가 더이상 염려할 것이 무엇이며, 더이상 아버지 앞에 나아가지 못할 것이 무엇이며, 더이상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나와 함께 기도해 주시겠다는 데.... 지금 여기서 내가 천국을 살기를 바라는 주님의 마음이 듬뿍 담겨있는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나와 함께 몸소 바치겠다며 가르쳐주신 주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 내 발을 씻기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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