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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69) 명절 후유증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5 조회수1,104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5년2월15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ㅡ이사야55,10-11;마태오6,7-15ㅡ

 

            명절 후유증

                            이순의

 

 

한 수사님께

수사님! 좀 편안해 지셨는지요?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기를 빕니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맏이인 저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생각만 있고 현실은 미지수인 짐을 지고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수사님의 메일과 전화는 반가움 보다는 슬픔이었습니다.

 

명절에 집에 다녀오신 수사님의 마음을 전해 들으면서 사람의 삶에 대하여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곳에 사시는 수사님께서는 그런 아픔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 아픔은 여염의 생활을 하는 세속의 사람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지어미로 사시는 수도자도 그런 안타까움이 있기에 얼마나 더 가슴이 아프던지요. 메일을 읽으며, 전화를 끊고 나서, 가슴을 쥐어 짜며 얼마나 얼마나 울었습니다.

 

수사님! 고백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럽지만 저는 친가든 시가든 관계를 차단한지가 여러해 되었습니다. 모두가 부족해서 발생되는 사건이었고 제 서러움에서 비롯 되었지요. 시모님을 집으로 오시게 하고 반찬을 해 드리고 생활비를 드리면서도 이번 명절에도 어머니 집에를 가지 않았습니다. 지짐이를 지지고 나물을 무치고 식혜를 만들고.... 제수 준비는 해서 보내드리기는 했지만 가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가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저년에게 영금을 보여줘라!(=혼내주라는 남도 사투리)" 

그날밤에 어머니는 어머니께서 쓰시는 거의 모든 집기를 부수었고, 막내시동생은 부수어진 상 다리를 들어서 때렸고, 목을 짚어서 제가 혼절을 해 버리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파편들을 밟고 내 발로 걸어서 어머니의 방을 나왔습니다. 그것이 시댁과의 단절이었습니다. 꼬박꼬박 준비는 해서 들려 보냈지만 결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요. 수사님! 정지 되어버린 기억은 그대로인데 세월은 흐르데요. 

 

참으로 묘한 사람의 심성이 큰오빠 생각을 참으로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짝궁이 같은 큰자식의 입장이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큰오빠 생각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떨쳐버리려고 해도 떨쳐지지 않고 큰오빠 생각을 너무나 많이 했습니다. 한참 번성한 아버지를 두고 대학을 다녔던 큰오빠와 몰락해 가는 홀어머니를 둔 막내 신세를 비교해 보느라고, 시골에서 서울까지 왕림하면서 혼사준비를 하던 호사스런 큰오빠의 혼례식을 떠 올리며, 결혼 초입의 기반이 나약했던 형제들이 어렵게 어렵게 모아준 돈이 훨씬 수년 전에 치른 호사스런 혼례식의 예물 값도 되지 않았던 빈곤감이란.....

 

그런데 시댁이라는데는 그만큼도 없어서 너무나 요긴하게 결혼비용이 되고도 남았던! 그렇게 결혼비용으로 써버린 탓에 세간살이를 장만하지 못하고 싸디싼 장농 하나 달랑 놓고 살았습니다. 정말로 가난한 사람의 짝이 되어 살면서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의 큰형수가 되어산다는 것은 정말로 많이 큰오빠를 생각하며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야속했고, 때로는 든든했고, 때로는 오빠가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으며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런 세월이 벌써 19년이 흘렀습니다. 아버지의 유업은 어머니께서 그토록 몸부림 하셨지만 먼지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탕자인 작은 오빠는 큰오빠의 크나큰 짐이되어 남았습니다. 나만이라도 큰오빠의 짐이 되지 말고 살자는 결심의 결과라는 사실에 제 스스로 감동하였습니다. 중요할 때에는 큰언니가 큰 도움이 되었지만 작은 오빠처럼 짐스러운 존재는 아닌 동생이라는 사실에 제 자신에게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수사님!

 

명절에 시가에 참여하지도 않은 제 마음은 큰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나에게 돈이 있어서 어머니도 잘 모실 수 있고, 동생들에게도 주라는 대로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명절이 즐거울런지요? 제 집에 제사상이라도 차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또 얼마나 좋을런지요? 그렇게 하지 못할거라면 이대로 나가자는게 제 심정입니다. 단칸 어머니 방에서는 누구도 바램이 없으니까요. 그냥 그대로 늙은 어머니 하시는 대로 잘하든지 못하든지 수용을 하니까요.

 

그러나 제가 감당할 때는 경우가 달라집니다. 모든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 세월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이 모아준 돈으로 마련한 혼인반지까지 팔아야 했어도, 내 자식의 돌반지 까지 팔아야 했어도, 빚더미에 앉아 숨을 못 쉬어도, 큰아들은 큰아들이어야 하고, 큰형은 큰형이어야 합니다. 어머님께서는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되었던 행실들 조차도 망각하시고 있습니다. 때로는 어쩌면 당신의 처지가 초라하셔서 잊어버린척 하시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활비를 타러 오시거나 반찬을 가지러 오셨을 때 가끔은 어머니의 속이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로 잊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안면 몰수 하신 것인지를? 큰며느리에게 그런 고통을 주셨을 때는 당연히 그 자식들한테 대우를 받고 살으셔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한 것이 어머니의 삶입니다. 어머니집에서의 명절 풍경을 제 아들을 통해서 듣습니다. 큰자식인 제가 나서지 않는 어머니의 명절풍경은 좋을 것이 없습니다. 다른자식들 중에 누구도 적극 나서지 않는 그 싸늘한 풍경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한 분을 집으로 오시게 한 것도 제게는 너무나 큰 고통을 동원해야 했습니다. 좀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전에는 누군가 나를 비난할까봐서도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것 조차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지 그 사람이 나의 처지를 살아주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으니까요. 한 수사님! 이번 명절에 작은언니를 병문안하러 오셨다가 들리신 큰오빠는 두둑한 세배돈을 놓고 가셨습니다. 그런데요. 수사님! 사람 마음이 얼마나 우수운지 알으세요?!

 

그 세배돈을 받아서 좋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그 세배돈을 놓고 가실 수 있는 새언니의 모습이 얼마나 대단해 보이든지요.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가난한 나는 내 범위에서는 최선을 다 해서 주는데도 항상 적다고 어떻게든지 한 푼이라도 더 얻어내려는 우리 시댁과 비교되어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저는 오빠한테 얻어내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오빠는 두둑한 뭉치를 놓고 가시고, 저는 시댁식구들에게 형편을 다 해서 주었는데도 적다고 어떻게든지 얻어내려고 하는......

 

마치 재벌집의 귀한 음식은 남아서 서로 나누는데 각설이 들의 바가지에 담긴 밥은 모자라서 수저 긁는 소리만 요란한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수 년만에 큰오빠가 내 집에 오셨는데도 달라진 것도 없이 궁색해서 면목도 서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처럼 해바라기처럼 마음의 중심이셨던 큰오빠가 오셔서 눈물나게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오빠를 대하면서 짝궁이 큰오빠처럼 잘 살아서 시동생들이 주라는 대로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명확히 따진다면 항상 가난해서 항상 부족해서 안타까운 짝궁이 동생들에게 하는 것에 비하면 그래도 넉넉한 오빠는 짝궁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여유로움이 너무나 너무나 부럽다는 말이지요. 그 여유로움이 부러워서 짝궁도 나도 그런모습을 원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근원은 돈이지요. 돈이 너무 없는 우리와 돈이 많지는 않아도 살기에 곤곤하지는 않게 살으시는 오빠의 차이입니다. 모두가 못 배우고 가난해서 가난하디 가난한 형한테 붙어서 사는 시댁과 그래도 형편껏 각자 알아서 형제들의 짐이 되지 않고 사는 친정의 차이이지요.

 

한수사님! 용돈이야 수도회에서 받아서 명절에 집에 다녀오셨겠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을 뵙고 수도자로서 용돈 한 번 넉넉히 드리지 못하고 돌아서는 자신의 가난한 모습이 처음으로 비통했노라는 마음을 전해 듣고 정말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부모님의 모습은 더 연로해지실 것이고, 수사님의 초라함은 더 깊어지실텐데 어찌해야합니까? 수사님과 전화를 끊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수도자나 수도회 소속 성직자를 자식으로 둔 어미의 입장에서 훗날의 내 자식이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한수사님! '어미 아비 걱정말고 아들 인생이나 잘 살으시게.'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 자식이 하느님의 종으로 살으시는데 세속을 사는 어미 때문에 눈물을 흐른다면 못 견디게 아플 것 같습니다. 교구 사제들이야 수도회보다 여유로와서 모시고도 살 수 있고, 용돈도 조금은 드릴 수 있다지만 수도회쪽은 수도회는 잘 살아도 수도자는 가난한 현실에서 부모님께 마저도 가난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어찌한다는 말입니까? 

 

혹여 부모님을 너무 안타까워하신 나머지 형님이나 동생들에게 싫은 소리나 하시지 않았는지 더 걱정이 됩니다. 절대로 그러지 말으세요. 왜냐하면 수사님께서 수도자의 삶을 살지 않고 혼인을 하셨더라도 그들보다 더 부모님께 잘 하실 수는 없습니다. 수사님께도 가족이 있으실 것이고, 가족을 부양하는 의무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자녀들을 거느리게 된다는 것은 모든 우선이 자녀에게 쏠리게 되실 테니까요. 수사님께서 세속을 살아서 남은 형제들 보다 더 부모님께 잘해 드린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저희 시어머니께서 어렵게 어렵게 사는 큰며느리를 다독이지 못하시고 막내 아들에게 영금을 보이라고 했으면 지금쯤은 그 아들에게 호강을 받고 살아야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시거든요. 그래도 제가 반지 팔고 빚을 내서라도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소사의 사건들을 처리하고 다녔지요. 동생들은 형이 죽는다고 해도 자기가 가진 것을 팔기는 커녕 돌아도 보지 않습니다. 솔직히 제 속마음은 그렇습니다. 

"그런 너희들은 왜 너네 엄마를 방치하는데?"

 

수사님!

산다는 것은 모두가 애환이 있습니다. 애환이 없다면 무생물일까요? 신께서도 애환이 있으셨습니다. 부모님은 남은 형제들에게 맡기시고 기도만 열심히 하세요. 부모님 앞에서 형제들에게 건강이 함께 하기를 청하시고, 우애하시기를 청하시고, 부자되기를 청하시고, 마음이 너그러워지기를 청하시고, 서로 화해 하기를 청하시고.... 수사님께서도 책임져 드릴 수 없는 부모님을 잘 모시라고 형제들에게 가슴에 못 박는 일일랑은 하지 않기를 빕니다. 부모님께도 불평보다는 주어진 형편에 감사하시라고 청하시고, 바람보다는 너그러움을 청하시고.... 수사님! 그러다 보면 극복되는 날이 있겠지요.

 

한수사님!

제가요. 로또복권이 되면 5천만원은 떼어 드릴께요.ㅎㅎ 부모님께 잘해드리세요. 수도회에 내지 말으시고요.ㅎㅎ 제가 큰오빠가 주고 가신 세배돈이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다고, 없는대로 만족하고 사는데 너무 부담스럽다고 큰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큰언니가 뭐라고 하신줄 알으세요?

"우리 막내가 큰오빠 만큼 살았으면 그보다 더 많이 주고 나누고 썼을 사람이야. 네가 그만큼 살아서 오빠에게 드렸을 때 너처럼 부담스러워 한다면 준 네 마음이 어떻겠니? 네가 오빠를 드렸다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고 감사히 받아쓰는거야."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큰언니의 말이 명언이었습니다.

"하느님도 재산을 지킬 사람에게 주지 너처럼 다 퍼줄 사람에게는 못 지키실 줄을 너보다 더 잘알으시니까 안 주시는거야."

수사님!

부모님께도 잘 할 사람이 있습니다. 수사님께서 세속에 남아 부모님께 잘 하실 것 같았으면 수도자를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수사님이나 잘 살으세요.

 

명절이 지났으니 시어머니를 오시라고 해야하는데 용서되지 않은 제 깊은 골이 제 스스로 뒤집어져서 아직도 어머니께 전화를 못 드렸습니다. '명절이라고 해도 큰며느리 없는 빈 자리를 누구도 채우려하지 않았는데 꼴 좋으시다.' 뭐 이런 꼴통스런 마음이 어머니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드릴려고 뼈국을 울궈놓았는데도 아직도 전화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때는 형수를 상다리로 때리라고 한 자식을 따라서 살줄 알았나보지?' 이런 오기스런 마음을 다스리는데는 저도 인간이며 죄인임을 고통하고 있습니다.

 

한수사님!

명절의 후유증은 저 같은 무지랭이 인생들만 하고 살아야지요. 수사님 같으신 분은 명절 후유증 같은 것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속의 일은 세속의 사람들에게 맡기시고 하느님 종의 삶이나 잘 살으세요. 그것이 효도입니다. 형제들에게 맡기세요. 수사님께서 부모님의 복잡한 세상 일을 해 드리지 못합니다. 빈털털이 수사님께서 할 수 있는 일은 수사님의 삶을 잘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험한 결혼생활 동안에 갈라지지 않고 자식 하나 지키자고 살아 온 세월이 친정엄마와 큰오빠께 효도가 되었더이다. 물론 시어머니께도 결국 언덕이 되고 의지가 되는 자식은 제가 분명합니다. 돌아보니!

 

수사님! 다 그러면서 세월 가는거예요.

 

ㅡ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오6,7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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