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5) 묵상의 공간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6 조회수951 추천수5 반대(0) 신고

 

내가 글을 쓰는 주무대는 여기가 아니었다.

(따뜻한 이야기)방이었다.

그런 내가 이 묵상방에 나들이를 왔다. 묵상방에 왠지 머무르고 싶은 마음때문이다.

성서도 제대로 모르는 무식쟁이에다 신심도 투철하지 못한 내가 굳이 여기에 온 이유는 이렇다. 사람이 사노라면 밝고 화기가 넘치는 장소에서 웃고도 싶고 때로는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곳에서 생각에 잠겨보고도 싶은 마음, 화사하고 예쁜 옷을 입고 싶을 때가 있는가하면 점잖고 고상한 옷을 입고 싶을 때가 있는 것과 같은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서에 약하고 신심도 깊지못한 자신이 묵상방에 머무르므로써 조금이라도 그런 비슷한 쪽으로 자신을 끌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묵상방에 오랜만에 나들이 와서 몇개의 글을 올리며 또한 몇가지 일을 겪으며 새삼 느낀게 있다.

그야말로 묵상방이 내게 묵상을 할 수 있는 단초가 된 셈이다.

내가 아는 사람중에 정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

노래방에 가면 그 사람의 노래에 모두들 취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사람은 노래할때 한가지 버릇이 있었다.

일종의 쪼를 뺀다고 할까? 정석대로 부르지 않고 한소절이 끝날때마다 그런 식으로 부르는걸 들으면서 문득 이사람은 노래자랑 같은데 나가면 입상은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전문가는 그 버릇을 금방 잡아낼터이므로....

 

나도 글을 쓸때 한가지 버릇이 있는데 바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버릇이다.

노래부를때 쪼를 빼는것처럼 나역시 글을 쓸 때 나만의 투가 있는 것이다.

내가 읽은게 성서가 아니고 소설이 많으므로 늘 글속에 소설에서 읽은 것을 삽입하는 버릇이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잡다한 것들도 즐겨 삽입시킨다. 그것은 일종의 비교수법으로서 표현하려고 하는 주제를 극대화시키려는 의도이기도 하고 글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보이려는 기교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앎을 내보이려는 얄팍한 계산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며칠전 그러한 비교수법으로 표현하려는 내용을 더 선명하게 하려고 한 내 의도가 그만 덫(?)에 걸리고 말았다.

글을 올리고 나서 오자 수정을 하려고 글을 읽어보는 중에 쪽지가 떴다.

글의 일부분에 대해서 좀 비난섞인 말로 게시물을 삭제해줄 것을 청하는 쪽지였다. 처음엔 기분이 상하기도 했으나 내가 표현한 것이 그런 의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읽는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 즉시 마우스에 글을 집어넣고 삭제를 했다. 그리고 본당게시판에 붙여넣기 한 다음 대폭적인 수정과 상당부분을 삭제한 다음 하룻밤을 재우고 나서 다음날에 다시 올렸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오히려 고마운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과 군더더기를 다 빼버리고 나니 마음도 편하고 글이 먼저보다 오히려 깔끔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이 참 덤덤한 성격이라고 전엔 생각했는데 굿뉴스 게시판에 들어와서 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그게 아니라는걸 자주 느낀다. 뜻밖에도 아주 다혈질이다.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이 나와 같은 성향인 사람의 글을 헐뜯으면 톡 튀어나가 반론을 펴고 싶은 마음에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부글부글 속을 끓인다. 그러나 차마 튀어나가진 못한다. 걸리는게 하도 많고 용기가 없으므로.... 이게 또 참는 연습을 시킨다.

이 부분이 자신을 중도파로써의 중용을 갖도록 훈련시켜야할 점이고 또 마땅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하면 이 게시판은 많은 깨달음과 수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오늘 복음인 요나의 이야기에서 진정한 기적은 외적인 기적이 아니라 바로 나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글을 읽고 거듭되는 반성과 수양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실은 작은 소동(?)이 있었다.

내 꼬리글이 내가 의도한건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한 것이었다. 사십여일 전에도 그런 일이 있어 남의 글에 대한 꼬리글을 한동안 쓰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 딱 걸렸다. 꼬리글로 인한 게시판 밖에서의 소위 물밑소동이라고나 할까 쪽지로 주고 받는 해명 끝에 오해는 풀렸지만 깨달은게 또 있다.

내가 며칠전 항의성 쪽지를 받았을때 일순간 기분이 안좋았던 것처럼 내가 전에 보낸 항의성 쪽지를 받은 그 사람은 그순간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 하는 거였다.

오해했던걸 사과하는 쪽지를 여러장 보냈을 때 그 사과하는 첫번째 쪽지를 받고 눈물을 흘렸다는 답신을 읽으며 나역시 눈물이 쏟아져 성모상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때문이었다.

오늘 역시 해명과 사과에 오해가 풀리면서 느낀것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이해는 상대방과의 감정을 한결 부드럽게 해주며 마음속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되어 이전에 느끼던 감정보다 훨씬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얼굴을 볼 수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생각의 차이때문에 때로는 감정의 불꽃이 튀기도 하지만 이렇게 이해를 통해서 좋은 감정으로 얼마든지 선회할 수 있다는걸 깨달으며 게시판이란 공간이 또한 묵상할 수 있는 공간을 베풀어준다는걸 느낀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굿뉴스 게시판의 모든 공간을 다 사랑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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