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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71) 귀신밥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7 조회수1,580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5년2월17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성모의 종 수도회 설립자 7성인 기념 허용 ㅡ에스델서4,17(13).17(15)-17(17).17(25)-17(26).17(31)-17((32);마태오7,7-12ㅡ

 

         귀신밥

                이순의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데 골목 어느 집의 대문 문설주 주변에 비둘기와 까치들이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다. 나도 봄부터 가을까지 비둘기들과의 전쟁을 하며 생활하다보니 벌써 저들이 출몰을 하였다는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숫자적으로 비둘기가 많아서인지 까치들이 밀리고 있었다. 기이한 풍경이라서 왜 날짐승들이 주택가에서 세력다툼을 해야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집의 주인이 할머니셨는지 명절에 젯상에서 한 수저씩 거두어 대문간에 짚을 깔고 놓아 두었던 귀신밥이 있었다. 지푸라기를 구하지 못해서 신문지를 깔고 놓여진 채로 말라있었다.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 방침에 따라 음식물 찌꺼기가 뒹구는 풍경이 사라진지 오래되기도 했지만 요즘시대에 놓여진 귀신밥은 낯선풍경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추운 겨울의 귀하디 귀한 한줌 먹을거리를 놓고 세력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잠깐 사이에 까치들은 물러났고 비둘기들만 자리를 주거니 받거니 서로서로 쪼아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놓여진 음식이 너무 조금이었다. 여러 마리의 새들이 머리를 마주하고 나누어 먹기에는 너무 초라한 소찬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나누어 먹느라고 분주했다. 저렇게 작은 날짐승들도 이 한겨울에 산다는 것이 고행으로 보였다. 얼마나 먹을 것이 귀했으면 저집의 문설주 밑에서 여러날 동안 말라 비틀어진 음식을 발견하고 떼거지로 몰려와 세력을 장악하는 다툼을 해야 했을까?

 

나 어렸을 적에는 흙으로라도 담을 쌓고 사는 집은 그래도 먹고 살만한 집이었다. 싸리나 수수대 같은 키큰 건초를 역어서 울타리를 삼아 사는 집들이 많았다. 명절이면 그 지푸라기 너덜거리는 울타리 옆에 귀신밥이 뒹굴었고, 동네 개들도 맛난 것만 가려서 입을 조곤거릴 뿐 여러날 동안 그 소찬들은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명절이나 제사를 지낸 후에 가족이 없는 귀신에게 주는 밥이라고도 했고, 손님귀신에게 주는 밥이라고도 했다. 주님을 믿는 내가 시집을 와서도 손님 귀신의 상을 따로 차리시는 어머니를 보았고 하자시는 대로 해 드렸다.

 

어른들은 제사상을 물리기 직전이면 물그릇에 골고루 한 수저씩을 모아다가 짚 한 주먹을 쥐고 나가서 대문밖에 깔고 귀신밥을 놓았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적에 귀신밥이 놓인 집앞을 걸어가지 못했다. 마치 귀신이 그 밥에 붙어서 살아있는 나를 보며 식사중일 것 같아서 무서웠다. 한동안 외출을 금하고 있다가 어느날에 가보면 음식찌꺼기들은 없었다.정말로 귀신들이 와서 다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런생각이 들때는 더욱 무서웠다. 그 울타리 밑을 지날 때면 달려서 도망을 가는 듯이 지나야 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너무나 오랜만에 귀신밥을 먹는 비둘기들의 식사를 보게 되었다. 귀신도 찾아오지 않았는지 여러날이 지난 음식은 말라서 신문지에 붙은체로 비둘기들의 입놀림에 밀려 다니고 있었다. 그곳에는 귀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비둘기들의 소찬을 바라 보는 동안에도 귀신이 살아있는 나를 처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선조들이 마련한 귀신밥은 죽은자들의 것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날짐승의 것이었고, 기어다니는 밤짐승의 것이었다. 사람이 누리는 기일에 사람이 아닌 것들을 동참 시킬 수 없었으므로 죽은 사람의 자리를 마련하여 날고 기는 생명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리라!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골목안의 수 많은 집들 중에 귀신 밥을 놓은 집은 그 한 집 뿐인 것 같았다. 야박하기 그지 없고 빈곤하기 그지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니 까치는 세력다툼에서 밀려 쫒겨갈 수 밖에....

 

그런데 나부터 비둘기의 엄청난 번식력과 전쟁을 하고 있다. 내집의 발코니에는 유리창틀 위로 비둘기들이 알을 낳아서 키우기에는 더할수 없이 안정된 공간이 있다. 처음에는 새에 대한 반가움에 그 자리를 선뜻 허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비둘기는 TV에서 본 새들처럼 하지 않았다. 천적을 피하기 위해서 새끼의 변이나 냄새가 날 수 있는 것들을 입에 물고 가서 멀리 버리는 새가 아니었다.어미도 아비도 새끼도 창틀위에서 엉덩이만 밖으로 돌려서 찍 갈겨놓았다.

 

야~~! 그것도 똥이라고 엄청나게 쌓이는데다가 냄새가 지독하기는 인분이 따르지를 못한다. 또한 장마철에는 쌓인 분비물에서 곰팡이가 생기고 벌래까지 생긴다. 더 지독한 것은 물청소를 해도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집에 사는 동안에 나는 비둘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투명유리창에 비둘기 똥으로 그림그려지지 않기 위해서도, 여름에 유리창을 열어놓고 살기 위해서도 비둘기들이 골목에 찾아드는 것을 차단해야한다. 귀신밥을 먹느라고 정신 없는 비둘기들을 발길질로 찾다.

 

놀란 비둘기들이 순간에 공중으로 떴다가 다시 미련이 남은 귀신밥의 주변으로 앉아서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야!

너희들 석촌호수에서 살으란 말이야.

왜 여기까지 와서 나를 괴롭히느냐는 말이야? 

빨리 안가?

가!

가란 말이야." 

 

그리고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귀신 밥그릇 신문지를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어려서나 지금이나 귀신밥이 반갑지 않은 것은 매 한가지인 것 같았다. 그런데 비상하지 않고 머무는 비둘기들의 눈빛이 원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내가 놓아준 밥도 아닌데.... 예전의 어른들이 나의 이기심을 본다면 야단을 놓으셨을 것이다. 여름은 여름에게 맞기고 지금은 살아있는 짐승이 먹는 것을 뺏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죽은 사람에게 주는 귀신의 밥이 아니라 살아있는 짐승에게 준 밥이었고, 그들은 찾아와 먹을 권리가 있었다.

 

내게 그 밥을 빼앗을 권리는 없었다.

 

ㅡ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오7,11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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