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6) 유혹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8 조회수1,321 추천수3 반대(0) 신고

 

                   

머리 염색한지가 서너달은 된 것같았다.

양쪽 옆머리에 흰 머리칼이 드러나고 앞머리에도 몇올의 흰머리가 보였다.

흰머리칼이 더러 보여도 난 염색을 하지 않았었다.

눈이 안좋은데 염색하면 더 나빠질까봐서였다.

그런데 어느날 딸이 머리에 코팅을 해주었는데 하고보니 머리빛깔 하나가 자신의 얼굴을 다르게 한다는걸 느끼고 나서부터 코팅을 시작한지 일년이 넘는다.

그런데 게으르다보니 자주 못하고 별러서 하는게 서너달에 한번이다.

 

어제는 벼르고 별러서 코팅을 했다.

거실바닥에 수십장의 신문지를 이어 아주 넓게 넓게 깔고 (내집이 아니고 셋집이라 혹시 약물이 떨어질까 튈까 염려되는 마음에) 그 한 가운데 동그마니 앉아 비닐덮개를 어깨에 두르고 마치 전장에 임하는 사람처럼 단단히 무장을 하고 눈을 꼭 감은채 딸에게 머리를 맡긴다. 밥먹듯이 아무렇지 않게 부지런도 하게 제머리에 노란색 코팅을 제손으로 하는 딸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비닐장갑을 끼고 약물을 혼합하고 나서 미용사처럼 능숙하게 내머리를 만진다. 눈을 꼭 감은채(눈에 약물이 들어갈까봐) 난 겁먹은 소리로 살에 약 안묻게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지난 일년간 몇번의 코팅을 하면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풍경이다. 넌 머리 염색하지 말라고, 이렇게 번거로운 염색을 너는 왜 세지도 않은 머리에 하냐고, 자연머리 그냥 놔두지 머리염색 자주 하면 머리 빨리 센다는데 멀쩡한 머리에 왜 염색을 하냐고 눈을 감은채 계속 딸에게 궁시렁댔더니 코팅 안할거냐고 퉁명스럽게 한마디 한다.

 

30분 후에 머리를 수십번 감고나서 거울을 보니 까맣게 염색된 머리칼이 얼굴을 생기있게 바꾸어 주었다. 엄마! 코팅하고 나니 쌩쌩해보이네! 딸이 하는 말이다.

우리집엔 염색하는 사람이 셋이다.

아들만 빼고 다 한다.

젊을때 머리가 센 남편은 작년 9월 전근가면서 16년간 고수하던 흰머리를 염색했다.

한달에 한 번 꼴로 이발소에서 한다.  

딸은 멋내기 염색이다.

나는 왜 이 귀찮은 염색을 하는가?

생각해 보았다.

남에게 젊게 보이려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만족을 위해서인가.

남편과 딸은 또 왜 염색을 하는가?

딸의 경우는 멋내고 싶은 젊은 마음에서인것 같다.

그러나 남편은 아니다. 

젊어지고 싶어서도 아니고 멋은 더욱 아니란걸 내가 잘 알고 있다.

16년간 백발로 살았는데 새삼스럽게 그런 마음이 아니고 순전히 남을 의식해서였다.

노인틱한 모습으로 부임하면 주위사람들이 어쩌면 느끼게 될지도 모르는 그 어떤 매너리즘(?) 같은 것에 신경이 써졌기 때문이다.

70 넘은 노인같은 모습으로 책임자 자리에 앉아있으면 그 직장의 분위기가 얼마나 축 쳐질지 그걸 염려하는 마음에서였으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남을 의식하는 마음이었다. 남편은 요즘 새까만 염색머리 덕분에 장(長)이 참 젊다는 말을 자주 듣는 대신 염색을 자주 하니 아까운 머리털이 자꾸만 빠지는 대가를 치루고 있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 염색을 하는지 명확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빛깔의 유혹인가?

검은색으로 아니면 진한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에서 느껴지는 싱싱함!

빛바랜 머리로 나리지근하게 느껴지던 모습이 진한 색으로 물들이면 금방 생생해지는 이 빛깔의 유혹!

눈 앞에 머리카락, 거미줄이 보이고 파리가 날아다니는 착각에 어느날 안과병원에 갔더니 비문증이라고 했다. 무늬가 날아다닌다 해서 비문증(飛紋症)이라고, (날 비)자에 (무늬 문)자 해서 비문증이라 한다고 의사가 자상하게도 설명해 주었다. 망막에 머리카락이 매달린것 같고 거미줄이 엉킨것도 같고 검은색 파리같은 것이 두어개 눈동자가 움직일때마다 휙휙대며 왔다 갔다 한다.

얼마나 성가시고 신경이 쓰이는지 그런데 그건 고칠수가 없다 했다. 나이가 먹으면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그런데, 그런 눈이 더 나빠질지도 모르는데, 그걸 감수하고 염색을 감행하는 나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약한 사람이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유혹이 너무나 많다.

내 의지로 감당해낼 수 없는 유혹이 수시로 다가온다.

유혹은 곧 악이라는데 난 언제쯤 이 세상의 유혹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많은 유혹중의 하나를 묵상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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