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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성서를 집어 던졌던 이유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8 조회수794 추천수9 반대(0) 신고


사순 제1주간 토요일(2/19)






    독서 : 신명 26,16-19 복음 : 마태 5,43-48 내가 성서를 집어던진 이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그 옛날,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현현하시어 법을 주셨던 야훼 하느님처럼 예수님도 산에서 신적 권위를 가지시고 법을 선포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완전하게 되라고 하신다. 어쩌란 말인가.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고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잊으셨다는 말인가. 산상설교(5-7장)의 강의록을 준비하다가 너무도 화가 나서 강의록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인간이 지키지도 못할 크나큰 명제를 주어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분. 도저히 살 수 없는 계명을 주어 죄책감만 쌓이게 하는 분. 한없이 모자라기만 한 자신을 들여다보고 환멸과 자괴감만 들게 하는 분. 도대체 누가 당신 눈에 들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니, 다른 사람은 그만두고 나만 생각해본다. 완덕의 그림자도 못 쫓아가며 매번 다람쥐 채바퀴도는 나에게는 하늘나라는 어림도 없는 거리이며 그림의 떡이다. 산상설교의 거대한 이상(理想)을 마주 대하고 있으면 인간은 너무나 왜소하고 무능하기만 하다. "누가 그런 완전을 이야기하시겠냐? 완전하려고 노력하라는 말이겠지."라고 위안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틀린 말이다. 말 그대로의 완전이다. 완전하다는 말은 바늘 한틈의 불완전도 있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렇지않다면 그것은 벌써 완전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해결하기 이전에는 강의를 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완전히 수긍하고 실천한 것만 나가서 떠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록 나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말한 적은 있다. 그것은 적어도 신앙인이란 모름지기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믿었고.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다짐 하에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산상설교처럼 인간이 도저히 그렇게는 살 수 없다고 믿는 말씀은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이 화두를 들고 몇 주간을 배회한 끝에, 나는 주님 앞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 그분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아신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의 나약성을 무시하고 모른척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이 하느님 대전에서 우리의 실체를 똑바로 보기를 원하고 계신다.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과 무력함, 그 나약함을 똑똑히 깨닫고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깊이 깨달은 자만이 절대자이신 주님의 권능을 참으로 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 안에서만이 당신의 능력과 힘을 마음껏 발휘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의지로, 능력으로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지와 능력으로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상설교에서 제시하는 대 법령들은 자신의 힘으로 도달하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힘을 빼어버리는 것으로 실현되는 역설적 이상(理想)인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산상설교는 "영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음을 선포하고 있다. 가난함 나의 힘과 능력과 지혜와 가진 모든 것을 텅텅 비워내고 툭툭 털어버리면 버릴수록 그분의 것들이 그 안에서 활발하게 작용할 수 있게 되어 그분의 나라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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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그분은 왜 우리가 완전하기를 바라실까?' '그분은 왜 그런 하늘나라를 우리 안에 만들어주시려고 그처럼 갈구하실까?' 당신이 가지신 완전함이, 그 하늘나라가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하기에 우리도 그 행복을 그 자유를 맛보게 하고 싶으시구나! '그렇다면 주님은 과연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계실까?' 주님은 실없는 소리를 할 분이 아니시다. 그렇다면 그분은 모자라기만 한 인간을, 나를 당신 아버지만큼이나 믿어주고 사랑하시는구나! 누구도 믿지않는, 나 자신도 내가 그렇게 되리라고 믿지 않는 이야기를 그분만이, 오로지 그분만이 나를 그렇게 믿고 계시는구나! 몸서리쳐지는 믿음이다. 도망갈 구석이 없다. 그 믿음이 때로 무거운 중압감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원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별 수가 없다. 믿을 만한 건더기 하나도 없는 를 사랑한다고 당신이 뽑으셨으므로. 예수는 그 사랑, 그 믿음에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그리고 세상 모든 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나는 를 믿는다. 세상에서 밖에 믿을 놈이 없다" . . .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 기도 안에서 들려주시던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그리고 지금의 하나도 변하지 않은 나를 돌아보며 눈물이 쏟아진다. 그러나 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나의 무능을 내어놓는 동시에 그분이 무한히 채워주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동안 또 잊어버리고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는 헛된 것들을 다 쏟아놓음으로써, 다음 단계의 완전함으로 그분은 이끌어 가시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산상설교의 말씀은 중압감으로 죄책감으로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또한 언제 도달할 것인지를 조급해하지도 않는다. 내가 자식을 믿는 그 믿음에 아이가 부합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 짝이 없었다. 나의 아버지이신 주님도 내가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당신 말씀을 따라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시고 흡족해하실 줄 믿는다. 주님, 당신이 제게 주시고자 하시는 그 최고의 이상으로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당신이 주시고자 하시는 그 행복, 그 자유를 맘껏 누리게해주십시오. 그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당신 안에서 작고, 낮은 자로 자신을 비워 나갈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 Jesus Joy of Mans Desiring-The St Philips Boy’s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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