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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73) 본심이 뭘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9 조회수87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5년2월19일 토요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ㅡ신명기 26,16-19;마태오5,43-48ㅡ

 

              본심이 뭘까?

                                 이순의

 

 

늦은 저녁에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이사는 못 가도 교적이라도 타본당으로 옮겨서 성당을 그쪽으로 좀 다녀볼까?"

아들의 대답은 학교 근처의 어느 본당을 지목하더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고민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고민이 되어 잠을 못 잔다. 인간이 고민하기 때문에 동물과 다르다고 한다.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고민한다. 고민하지 말자고 말자고 하면 할 수록 더욱 선명하게 고민이 된다.

 

사촌 누나에게 자신은 사제의 길을 갈 것이라고 했단다. 그런데 엄마에게는 아니라고 한다. 더 이상 묻지도 못 하는데 사촌 누나에게는 자신의 진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는 눈치다. 그러니 어미의 생각은 복잡해진다. 엄마가 불편해하는 본당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자식이라면 자식의 진로를 어미가 막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사를 못 가줘서 자식의 진로를 막는 어미가 되고, 사고처서 자식의 진로를 막는 어미가 되었다. 

 

주보에는 새학기 예신 모임을 알리고 있다. 입학을 희망하는 사람은 1년 이상 예신모임에 참석해야 한다고! 예신에 가려면 본당 신부님의 추천서가 있어야하고, 만약에라도 신학교를 가게 되면 본당의 성소후원회의 지원을 받게 되고, 가족이 본당의 모든 활동에 원상 복귀해야 한다. 계신 신부님의 추천서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당연히 받아서 보내고 싶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의 본당에서는 가족 모두가 어떠한 활동도 예전처럼 원상 복귀를 하고 싶지가 않다는 점이다. 

 

생각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을 잊고 용서 청하고 용서 받고, 용서 해주고 화해하면  간단하다. 그래서 사순절의 목표를 세웠는데 마음이 정말로 싫다한다. 그런 내 마음을 편들어 주고 싶었는지 초상이 나고, 언니가 아프고, 명절이 끼고, 나도 아팠고..... 얼씨구나 좋아서 밖으로 돌아다녀버렸다. 한편으로는 그것을 이기고 사순절의 지향을 지켜야 의미가 있다고 내 자신에게 호된 꾸지람을 해 보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펴지지 않으니 자식도 그것을 느낄 것이다.

 

설령 내가 마음을 억지로라도 펴고 원상복귀 한다해도 자식의 마음이 예전으로 돌아가 예신을 가겠다고 엄마에게 본심을 펴줄지도 모르겠다. 너무 답답하여 그냥 주마다 다른 번호를 써서 복권을 사던 일을 아예 번호를 정해서 매 주 똑 같은 번호를 쓰고 있다. 성서와 교회 전례 안에서 번호를 골라서 복권이 나를 맞춰야 한다고 생 고집을 부리고 있다. 내가 복권을 맞출 것이 아니라 복권이 언젠가는 내 번호를 맞춰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자식의 본심이 나에게 한 말이 진짜인지 아니면 사촌 누나들에게 한 말이 진짜인지를 몰라서 잠이 오지 않는다. 과연 나는 자식의 길을 가로 막아버린 엄마일 것인가? 본당의 노신부님을 찾아가 이 동네에 살아도 교적을 옮기고 다른 본당의 신자로 살아보고 싶다고 상담을 해 볼까도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그런 요청을 드릴 만큼 내 자신이 정당한지를 생각하다가 용기가 상실 된다. <그래>라는 글을 쓰려고 했을 무렵 자식의 가슴을 접은 엄마가 되었다는 자책감으로 밥을 못 먹을 만큼 마음 고생을 했다.

 

그런데 자식이 사촌누나들에게 하고있는 말들을 전해 들으며, 아직도 그런 본심을 상실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면 신부님의 너그러움을 구하고 싶었다. 그게 본당신부님의 허락을 구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사를 가지 않고 자식을 빌미로 타본당의 신부님께 사고뭉치인 내 자신을 자리이동 시킬 만큼 뻔뻔한 입장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든지 말든지 자식의 본심을 안다면, 자식이 엄마에게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해 주세요 라고 운을 뗀다면 용기도 생기고 방법도 강구해 볼텐데....

 

이사도 안가고 오로지 예신을 위해 성당만 옮겼다가 사람의 마음이 변하게 된다면 그때 받을 면목을 감당할 자신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아들의 본심을 모르는데 엄마라고 해서 경솔하게 휘휘 저어서 이렇게 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제 우리 내외 인생이 각자 꽃피우고 살자고 설칠 나이는 지나버렸다.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자식의 길을 열어 줘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으니 죽고 싶은 심정이다. 자식이 나를 닮지 않아야 할텐데... 엄마 생각을 하느라고 아무 것도 못 하고 방황만 해버린 그런 자식이 되면 안되는데....

 

다 자란 자식도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을 것 같다. 못난 어미를 지켜보느라고 고단했을 생각을 하니 살아온 세월이 후회다. 좀 아부도 하고, 좀 비위도 맞추고, 좀 나긋나긋 했더라면 내 자식이 저렇게 고민에 빠지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모두가 못난 어미를 두어서 격지 않아도 될 일을 격는 것이다. 신앙 없는 어미의 뱃 속에서 났더라면 십자가를 배우지 않았을텐데. 오로지 명문 대학만을 향해 살아도 되었을텐데. 그저 평범하게 아빠되고 자식 낳아 재미나게 살을 생각만 하면 되었을텐데.

 

나는 자식의 본심을 모른다. 그것이 문제다. 아니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어미인 내가 자식의 길에 걸림돌이 되고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주님!

이사 갈 돈을 주시지 않을 요량이셨다면

이런 꼴이나 만들지 말으시지 그러셨어요?

저는 이 사순시기에 당신을 원망합니다.

당신 곁을 떠나지도 못 하면서

당신 가슴에 망치질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잠도 안자고 열심히 열심히 못질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이번 사순절은 이렇게 잠도 자지말라고 하시나이까?

자식의 본심이 무엇입니까?

주님!

 

늦은 저녁에 분위기를 봐서 무심결 같은 말을 흘려 보았다. 가끔은 내 자식이 아빠랑 엄마랑을 어떻게 기억하며 사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고. 자식은 단호한 대답을 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지구가 폭발을 해도,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반듯하게 꿋꿋이 서서 절대로 꺽이지 않을 엄마와 그런 엄마의 뿌리가 되어주는 태산 같은 아빠를 두었다고 생각하지. 아빠는 태산보다 더 큰 태산이야. 그래서 엄마를 지켜주는 것이고. 나를 지켜주는 것이고!"

 

"이놈아! 아빠는 잘 보았는데 엄마는 잘 못 보았어. 이놈아! 엄마는 한 번도 꿋꿋이 서 본적이 없었다. 항상 일어나느라고 너무 힘들어. 지금도 일어나고 싶은데 못 일어나겠어. 엄마 좀 네가 일으켜 줘봐. 이놈아!" 목에 잠긴 이 말을 하지 못했다. 자리를 피했다. 자식이 마음에 담고 있는 어미가 못 되어 너무나 아픈 밤이다. 너무나 부끄러운 밤이다. 너무나 황망한 밤이다. 너무나 죄스러운 밤이다.

 

벌써 새벽이 온다. 

찬 겨울의 햇님도 뚜벅뚜벅 구두소리를 내며 오시려는가?  

 

ㅡ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마태오5,45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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