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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20]주일: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수원교구 조욱현신부님 강론)
작성자김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19 조회수1,257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 바오로 수도회 홈피 선교네트 http://www.paolo.net/catholic/

     --성서의 세계--말씀 묵상 방에서 퍼옴

      (수원교구 조욱현신부님 강론)

 

 

사순 제2주일: 가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오늘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주일이다.           교회는 회개와 뉘우침의 분위기의


이 사순절 초기에 베드로 사도가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영광스러운 변모사건을 배치한 의도는 무엇일까?    이것은 교육적인 의도가 깊다.


즉 사순절의 의미는 부활의 ‘영광’의 관점에서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참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회개와 뉘우침의


생활과 더불어 사랑의 삶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복음: 마태 17,1-9: 예수님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났다



마태오 복음은 묵시문학적 특징들이 강조되고 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그의 옷이 빛과 같이 눈부시다든지, 제자들이 두려워서 땅에 엎드린다든가,


예수께서 그들을 어루만지시며 두려워말고 일어나라고 하시는 등등의 장면이다.


이것은 다니 10,1-11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다.     이 영광스러운 모습은 ‘하느님의


나라’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나라의 특징을 말해주는 ‘표징’들에


의해 완전히 충만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모세와 엘리야까지도 그 나라의


구성원이 되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포용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하늘로부터 나오는 ‘음성’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5절).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모든 영광을 보여주시고도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함구하기를


명하신다(9절 참조). 왜 그랬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부활의 신비의 예표로서, 부활체험을 통해서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은 제자들이 만들어낸 어떤 가공적이고


환상적인 인물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가야하는 수난을 통해,  고통받는 종으로서


의 사명을 완수하는 구체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제자들은 오직


빠스카의 체험을 통해서만이 이 모든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당시에


는 제자들도 알아듣기 어려웠을 것이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 (이사 42,1; 마태 3,17 참조)


이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5절)고 하신다.



여기서 ‘듣는다’는 말은 신앙의 빛으로 그리스도를 겸손과 영광 그리고 죽기까지


당한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함께 지니고 계시는 분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분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듣는다’는 말은 ‘다시 체험하다’, ‘다시 살다’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것으로 사순절의 의미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제1독서: 창세 12,1-4: 하느님 백성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소명



1독서에서는 아브라함의 소명을 통해 같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이 이제부터 계속 넘어야 할 것들이며,


그가 이겨야 할 긴장과 고통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감쌀 수 있는 영광과 축복을


품고 있다. 그 첫째 단계는 고향과 아비의 집을 떠나는 것이었다. 당시에 자기 집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였다. 그 때문에 아브라함은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세는 하느님의 지혜와 전능하심에 의해 마련된 새로운 삶의


설계를 용감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신앙은 인간의 의지나 활력을 마비시키거나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자신을 개방시켜 강화해준다.



아브라함은 하늘로부터 오는 말씀을 ‘들을 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약속


을 믿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날 수 있었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정의가 깃들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다”(2베


드 3,13).      신앙만이 미래에 대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


 

 


제2독서: 2디모 1,8-10: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빛나게 해 주십니다

 


참된 쇄신과 변화의 힘은 ‘복음’에 있다고 사도 바오로는 가르치고 있다. 복음에는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구원의 선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바오로는


디모테오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나와 함께 고난에 참여하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과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은총은


천지창조 이전에 벌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없애버리시고 복음을 통해서 불멸의 생명을 환하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8-10절).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에서 찬란히 빛났던 그 빛이 이제는 모든 이에게


‘불멸의 생명’을 가져다주는 그분의 ‘복음’을 통하여 빛나고 있다. 이제 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신비가,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의 빛으로


끊임없이 ‘변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내가 변화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 즉 복음을


듣고 실천함으로써 이루어 가야 한다. 나 자신이 변화하려고 하는 각고의 노력이


없이는 부활의 영광을 기대할 수도 없고, 체험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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