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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75) 코다리 세 마리가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20 조회수841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5년2월20일 사순 제2주일ㅡ창세기12,1-4ㄱ;디모테오2서1,8ㄴ-10;마태오17,1-9ㅡ

 

 

         

             코다리 세 마리가

                                       이순의

 

 

골목의 어느 집!  재건축으로 말쑥한 단독주택 베란다 스텐 난간에 명태 코다리 세 마리가 달려있다. 생물이 질질 나지 않아서 꼬독꼬독하고, 꽝꽝 마른 북어는 아니라서 촉촉한 명태 코다리 세 마리가 추위에 떠는 발길을 붙든다. 오늘 더욱 차거운 겨울 콘크리트 벽에서 연한 햇빛을 받으며 얼었다가 녹았다가 제 몸 쫄여서 밥상에 오를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발코니 형태의 내 집에는 가끔 쥐도 올라오시고 고양이도 올라오셔서 비린 것을 놓지 못하는데 나이론 줄로 묶인 그 명태 코다리는 깍이지른 베란다 난간에 달려서 안전하다. 공연히 미사 중에 눈물 닦다가 어서어서 집에 가고싶은 마음을 재촉했는데 골목 어느 집의 높은 절벽을 바라보며 잠시 멈추어 하늘을 보았다. 추위는 오늘 더욱 깊은데 햇살은 밝아 봄을 재촉하시는 것 같다.

 

저 코다리 세 마리도 엄마가 있었고, 아빠도 있었고, 일가 친척과 떼거지로 몰려 다니던 친구가 있었겠구나. 저 코다리 세 마리도 간 떨리는 위험이 있었고, 행복한 만남이 있었고, 야릇한 사랑도 있었겠구나. 저 코다리 세 마리도 풍경 좋은 산호초에서 멋진 여행을 할 때도 있었고, 사노라고 치열한 다툼도 있었겠구나. 저 코다리 세 마리도 사연이 깊었것구나. 저 코다리 세 마리도 살아온 일생이 장구하것구나. 저 코다리 세 마리도 소설이것구나. 그런데 저 코다리 세 마리는 아직도 여정이 남아 저기에 매달려 있구나.

 

어부의 그물에 걸려들 때는 죽음을 예견했을 것이고, 상자에 담길 때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유언했을 것이고, 죽은 몸뎅이마저 덕장에 걸려 바람에게 두둘겨 맞았을 것이고, 얼었다가 녹았다가 살을 짜서 말라야 했을 것이고. 저렇게 높은 난간에 매달려 있을 때는 고통일텐데! 명태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큰 고통일텐데..... 어부는 즐거웠을 것이고, 덕장 주인은 흐뭇한 부지런을 떨었을 것이고, 상인은 남은 이익에 배불렀을 것이고, 저 난간 주인은 맛난 양념 준비를 할 것이고.

 

명태의 죽음은 사람의 기쁨이었는데.....

사람인 나는 무얼하며 사는거지?

 

강론 말씀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신 음성을 들으신 주님처럼 우리도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데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 두려워 떨지도 않는 것인가? 그 목소리를 들어야 두려워 떨 것이고, 주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어루만져 주실 것이고, 일어나라고 하실텐데.....

사순 시기가 고단하기만 하다.

 

ㅡ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 오시는 길에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마태오17,9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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