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9) 바람은 불어도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22 조회수956 추천수9 반대(0) 신고

 

아침에 국거리가 없어 언제적에 사 온 무우로 국을 끓이려고 껍질을 벗겼는데 썰으려고 자르니 완전히 바람이 들었다. 겉보기엔 멀쩡한데 온통 다 연근 뿌리처럼 아니면 골다공에 걸린 뼈처럼 숭숭 구멍이 보인다. 이런 무로 국을 끓여봤자 맛이 없어 괜히 아까운 양념과 연료만 없앨게 뻔해 버리기로 했다.

바람들어 영양분이 다 소진되기까지 몇날 몇일을 싱크대 위에 내박친대로 있었던가?

 

바람 든 무우를 버리며 문득 바람에 대해서 생각한다.

요즘 내마음에 바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내가 알기로는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올 때도 있다.

사람의 마음에 불어닥치는 바람은 풍향계가 없다.

그리고 바람은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속성이 있다.

사랑이든 도박이든 일이든 공부든  예술이든 그 모든 것에 바람이 들면 빠지게 되고 빠져들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어려은 속성 또한 가지고 있다.

 

내 경험으로 보건대 신앙의 경우도 그러했다.

내가 오랜 냉담 끝에 다시 하느님 앞으로 돌아 왔을 때였다.

여전히 주일미사도 결하면서 그다지 열심이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미사에 가는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면서 한번도 빠지지 않고 열정적으로 미사에 가고 교회일에 빠져드는 자신을 느꼈다. 신앙의 바람에 마음이 당겨진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일에는  빠져들게 하는 열정이 에너지가 되고 원동력이 되어 무언가를 추진시킨다. 그 열정은 물론 실패의 핵이 될 수도 있고 성공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에너지다.

 

그런데 일단 바람이 들면 제어하기가 어려워지는 속성 또한 바람은 가지고 있다.

도박에 빠진 사람이 누가 말린다고 여간해서는 듣지 않는다.

잃을만큼 잃고 나서야 손을 털게 되어있다. 이럴때 바람은 아주 불행한 존재이다.

공부에 빠져 미친듯이 파고들때 그 사람의 성취도는 죽죽 올라갈 것이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열정을 기지고 임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 이럴때 바람은 엄청난 에너지로 작용할 것이다.

이미 마음에 당겨진 바람은 하늘을 향해 당겨진 연줄처럼 팽팽하여 끊어지지 않는한 내려오지 않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언가 결말이 있어야 끝이 난다.

 

바로 요즘 내가 그렇다.

수개월전부터 정식으로 글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저 심상하게 생각했었다. 나이도 있고 자신도 없었고 그냥 아마추어로서 사는데 만족하고 있었는데 근래 들어 또 다른 분의 권유를 받으면서 내마음에 드디어 바람의 도화선이 당겨진 것이다.

그래서 3월부터 정식으로 공부해 볼 참으로 수필교실에 등록을 했다.

그런 한편으론 갈등도 심해졌다.

게시판에 글을 맘대로 쓸 수 없는 말하자면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이다.

이제 목표를 가지고 글을 써야한다 생각하니 전처럼 자유롭게 내 마음속에 있는 모든걸 다 털어내 보일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분은 내 글에서 신앙적인 것들을 빼버리고 내용도 문장도 다듬으면 좋은 수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순수한 수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요즘 난 나들이 왔던 묵상방에 눌러앉아 서투른 묵상글을 쓰고 있다.

보통 산문이나 수필류의 글을 쓸 수 없으니까 더 그러하다.

이제 그런 류의 글들은 어쨋거나 습작을 하여 수필가에게 보이고 지도를 받아야하므로  내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글을 쓸 때가 편했다는 느낌이다. 아무 것에도 욕심없이 그냥 쓴다는 자체가 행복했던 시간들이.....

더 넓은 세상에 나가보라는 권유와 갈고 닦으면 충분히 빛을 볼 수 있다는 격려가 촉매제로 작용하여 내 잠자고 있던 꿈에 불을 당겨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자신없던 마음에 드디어 바람이 들었다.

아무 욕심없이 살았는데, 끝까지 그렇게 살다 갈 줄 알았는데, 무슨 욕심이 아직도 남아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이미 바람이 든 것을 어찌하랴! 

한번 든 바람은 그 에너지를 다 소진하지 않고는 자신도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다정한 눈길로 마음에 불을 당겨놓고 상대방이 떠났다고 해서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닌것처럼, 사랑의 열병을 잃을만큼 앓고나야 그제서야 공중에 떠있던 마음이 땅바닥에 발을 딛고 설 수 있는것처럼, 그 결과가 실패든 성공이든 끝을 보아야 할 일이다. 그것이 이미 바람 든 내마음이 감당해야할 내 몫인 것이다.

어느 개그맨이 말한것처럼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

 

어느 자매님이 그런 말을 했다.

신앙이 우선이고 세속적인 욕심은 그 다음이라고.....

나역시 같은 마음이다.

어떻게 다시 찾은 신앙인가!

공부하러 다닌다는 빌미로 신앙적인 일들에 태만하지 않을 것이고 믿음이 우선인 울타리 안에서 끝까지 믿음의 끈을 의지하며 사는 삶을 살며 부족한 묵상글이나마 가끔은 올리면서 그렇게 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