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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야곱의 우물(2월 23일)--♣ 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23 조회수884 추천수9 반대(0) 신고




      ♣ 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 (마태 20,17­-28)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도중에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 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왔는데 그 어머니는 무엇인지를 청할 양으로 엎드려 절을 하였다.

      예수께서 그 부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 시자 그 부인은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하고 부탁 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형제들에게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마실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 하자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놓으셨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열 제자가 그 형제를 보고 화를 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야곱의 우물』- 《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2월 23일자 박요한 신부님의 글입니다. *^^*
      다음은 헨리 뉴엔 신부의 책 「이 잔을 들겠느냐」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을 때 그분은 나의 사제직과 인간으로서 내 삶의 핵심을 건드리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수년 전 내가 손에 아름다운 황금 성작을 들었을 때 그 질문은 대답하기가 어렵지 않을 같았다. 온갖 생각과 이상으로 가득찬 새로 서품된 신부인 나에게 삶은 온갖 약속으로 풍요롭게 보였다.

      나는 잔을 너무나 마시고 싶어했다. 오늘 장애를 지닌 이들과 그들의 협조자들이 둘러앉은 식탁에 앉아서 그들에게 포도주가 담긴 유리잔을 돌리면서 그 똑같은 질문은 영적인 도전으로 다가온다. 나는, 우리는 예수가 마셨던 잔을 마실 수 있는가? 나는 수년 전 어느날 예수의 이 질문을 성찬례 때 읽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아침 8시 30분경, 새벽공동체의 약 20명 공동체 구성원들은 지하 경당에 모여 있었다. 갑자기 “너는 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라는 말들이 사냥꾼의 날카로운 창처럼 내 마음을 꿰뚫었다.

      나는 그 순간 -영감의 섬광으로`-`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굳어진 마음을 부수고 열며 삶의 여린 부분을 드러내는 힘을 갖고 있는 질문이다. “당신은 잔을 마실 수 있는가? 그 잔을 남김없이 마시고 비울 수 있는가?

      당신은 모든 슬픔과 기쁨을 다 맛볼 수 있는가? 삶이 무엇을 가져오든지 간에 다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가” 나는 이것이 우리가 직면해야 할 질문 들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 잔을 마셔야 하는가? 그러기엔 너무나 많은 불안과 고뇌, 너무나 많은 폭력이 있는데. 왜 이 잔을 마셔야 하는가?

      최소한의 고통과 최대한의 즐거움으로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하지 않을까? 그날 복음 구절을 읽은 후 나는 내 앞 식탁 위에 놓여 있는 큰 유리잔 중의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움켜쥐고서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사람은 거의 걷지도, 말하지도, 듣거나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말했다.

      “우리는 우리 손에 삶의 잔을 들 수 있을까? 그 잔을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도록 들어올리고, 마지막 남은 것까지 다 마실 수 있을까? 잔을 마신다는 것은 빵을 굽는 것이 빵조각을 떼는 것보다 훨씬 어렵듯이 그냥 잔 안에 있는 것을 꿀꺽꿀꺽 마셔버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다.

      삶의 잔을 마신다는 것은 잔을 잡고, 들어올리며 마시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그것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 전체를 다 기념하는 것과 같다. 예수가 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잡고 들어올리며 마실 수 있겠는가? 내 주변에 앉아 있는 몇몇 사람들은 동의한다는 표시를 한다. 그러나 내 안에는 진실에 대한 깊은 깨우침이 일어났다.

      예수의 질문은 나의 삶과 내 주변 사람들의 삶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주었다. 그 아침의 간결하고도 단순한 성찬례 이후 오랫동안 나는 예수의 다음 질문을 계속 듣고 있다.“내가 마시려고 하는 잔을 너도 마실 수 있느냐?” 그 질문이 나를 편안치 않게 만든다. 지금 나는 그 질문과 함께 살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영성체 후 묵상]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각자 자기가 듣고 싶거나 필요한 얘기만을 듣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해도 당장 듣기 좋은 이야기가 아니면 부정하거나 듣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제자들과 그들의 어머니는 출세만을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목숨 바쳐 지키신 진리를 우리도 지켜야겠습니다.

      <영광송과 함께 권요셉이 인사 올립니다>

      (소스입니다) <br><UL><IMG height=372 src="http://edu.kcm. co.kr/bible_illust/rs/rs186.jpg" width=307 border=0></UL></<br> <br> <BR><BR></UL><PRE><UL><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005e77> <B>♣ 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B>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 <B> (마태 20,17­-28) </B><FONT style="FONT-SIZE: 10pt" color=red> <BR>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도중에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 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왔는데 그 어머니는 무엇인지를 청할 양으로 엎드려 절을 하였다.</BR> <BR>예수께서 그 부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 시자 그 부인은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하고 부탁 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형제들에게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U>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U>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마실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 하자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BR> <BR>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놓으셨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열 제자가 그 형제를 보고 화를 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BR> <BR>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BR> <IMG src="http://www.chosun.com/special/gallery/ 200001/flower/Images/1.jpg"> <P> <BR><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 ace="돋음체"> 『야곱의 우물』- 《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2월 23일자 박요한 신부님의 글입니다. *^^* </B>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darkviolet ace="돋음체"> <BR>다음은 헨리 뉴엔 신부의 책 「이 잔을 들겠느냐」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을 때 그분은 나의 사제직과 인간으로서 내 삶의 핵심을 건드리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BR> <BR>수년 전 내가 손에 아름다운 황금 성작을 들었을 때 그 질문은 대답하기가 어렵지 않을 같았다. 온갖 생각과 이상으로 가득찬 새로 서품된 신부인 나에게 삶은 온갖 약속으로 풍요롭게 보였다.</BR> <BR>나는 잔을 너무나 마시고 싶어했다. 오늘 장애를 지닌 이들과 그들의 협조자들이 둘러앉은 식탁에 앉아서 그들에게 포도주가 담긴 유리잔을 돌리면서 그 똑같은 질문은 영적인 도전으로 다가온다. 나는, 우리는 예수가 마셨던 잔을 마실 수 있는가? 나는 수년 전 어느날 예수의 이 질문을 성찬례 때 읽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BR> <BR>그날 아침 8시 30분경, 새벽공동체의 약 20명 공동체 구성원들은 지하 경당에 모여 있었다. 갑자기 “너는 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라는 말들이 사냥꾼의 날카로운 창처럼 내 마음을 꿰뚫었다.</BR> <BR>나는 그 순간 -영감의 섬광으로`-`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굳어진 마음을 부수고 열며 삶의 여린 부분을 드러내는 힘을 갖고 있는 질문이다. “당신은 잔을 마실 수 있는가? 그 잔을 남김없이 마시고 비울 수 있는가?</BR> <BR>당신은 모든 슬픔과 기쁨을 다 맛볼 수 있는가? 삶이 무엇을 가져오든지 간에 다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가” 나는 이것이 우리가 직면해야 할 질문 들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 잔을 마셔야 하는가? 그러기엔 너무나 많은 불안과 고뇌, 너무나 많은 폭력이 있는데. 왜 이 잔을 마셔야 하는가?</BR> <BR>최소한의 고통과 최대한의 즐거움으로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하지 않을까? 그날 복음 구절을 읽은 후 나는 내 앞 식탁 위에 놓여 있는 큰 유리잔 중의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움켜쥐고서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사람은 거의 걷지도, 말하지도, 듣거나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말했다.</BR> <BR> “우리는 우리 손에 삶의 잔을 들 수 있을까? 그 잔을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도록 들어올리고, 마지막 남은 것까지 다 마실 수 있을까? 잔을 마신다는 것은 빵을 굽는 것이 빵조각을 떼는 것보다 훨씬 어렵듯이 그냥 잔 안에 있는 것을 꿀꺽꿀꺽 마셔버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다.</BR> <BR>삶의 잔을 마신다는 것은 잔을 잡고, 들어올리며 마시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그것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 전체를 다 기념하는 것과 같다. 예수가 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잡고 들어올리며 마실 수 있겠는가? 내 주변에 앉아 있는 몇몇 사람들은 동의한다는 표시를 한다. 그러나 내 안에는 진실에 대한 깊은 깨우침이 일어났다.</BR> <BR>예수의 질문은 나의 삶과 내 주변 사람들의 삶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주었다. 그 아침의 간결하고도 단순한 성찬례 이후 오랫동안 나는 예수의 다음 질문을 계속 듣고 있다.“내가 마시려고 하는 잔을 너도 마실 수 있느냐?” 그 질문이 나를 편안치 않게 만든다. 지금 나는 그 질문과 함께 살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BR> <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음체 color=red> <IMG src="http://nami2.com.ne.kr/bg5/048.gif" border=0> <B>[영성체 후 묵상]</B><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 <BR>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각자 자기가 듣고 싶거나 필요한 얘기만을 듣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해도 당장 듣기 좋은 이야기가 아니면 부정하거나 듣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BR>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제자들과 그들의 어머니는 출세만을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목숨 바쳐 지키신 진리를 우리도 지켜야겠습니다.</BR> <bgsound src="http://www.mariasarang.net/document/ sungga/asf/1998070072.asf" loop="infinite"> <FONT style="FONT-SIZE: 10pt" color=green> <BR>&lt;영광송과 함께 권요셉이 인사 올립니다&g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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